먼 고향 그리움에 북적이는 설 시장의 이주민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4.01.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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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월요시장ㆍ와룡시장] 돈 벌러간 동생들, 첫 명절 맞은 새색시 가족 생각에...


설 연휴를 사흘 앞둔 27일 저녁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성서 동서화성타운 옆길. 매주 월요일 들어서는 '월요시장'이 열렸다. 아침9시~저녁10시까지 열리는 이날 장에는 명절을 앞두고 5천여명의 시민이 몰렸다. 대구 곳곳에서 온 상인들은 골목 양쪽으로 천막을 치고 전구를 밝힌 채 장사에 여념이 없다.

저녁 7시가 되자 퇴근한 직장인들이 가족과 시장을 찾아 골목길은 발디딜틈 없이 북적거렸다. 상인들과 손님들의 흥정 소리에 장은 여기저기 시끌시끌하다. 손님이 많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솜사탕, 떡볶이, 핫도그, 오뎅, 커피파는 행상에서 택시기사들까지 월요시장으로 몰려들어 500m 되는 좁은 골목길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성서경찰서에서는 교통정리를 위해 경찰까지 투입했다.

설 연휴를 앞둔 성서 월요시장, 제수용품을 사러 몰려든 사람들(201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설 연휴를 앞둔 성서 월요시장, 제수용품을 사러 몰려든 사람들(201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영주홍옥, 신고꿀배, 손두부, 강정, 뻥튀기, 바나나, 가래떡, 설탕딸기, 돌문어, 햇밤, 생닭, 조기, 오징어, 배추, 찹쌀 등, 각종 제수용품을 파는 상인들은 천막에다 "폭탄세일", "제일싼집", "맛좋아요" 같은 손글씨를 걸고 장사를 했다. 상인 대부분은 벌써 마수걸이를 끝내 텅빈 상자를 천막 옆에 쌓아놨다. 하루종일 장사를 하느라 목은 쉬어도 손님이 올때마다 박수는 커지고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설빔, 제수용품, 명절선물 등 사람들 양손에는 짐이 한가득이다. 짐을 옮기는 방법도 다양하다. 보자기를 들고 온 사람이 있는가하면 여행용 캐리어, 박스, 손수레, 자전거, 오토바이를 끌고 나온 사람들도 있다. 부모님들과 함께 나온 아이들은 사람구경에 정신이 팔렸고 간식을 사달라 조르기도 했다.  

아동복 가판대 앞에서 설빔을 고르는 베트남 여성과 딸(201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아동복 가판대 앞에서 설빔을 고르는 베트남 여성과 딸(201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골목 끝 아동복이 걸린 옷가게 가판대 앞. 노란색 옷을 입은 여자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옷을 고르고 있다. 베트남 이주노동자 낌티비(34)씨와 올해로 6살이 된 딸 팜티쭉리다. "엄마, 나 옷 사줘. 분홍색 치마. 설날 이잖아. 제발" 팜티쭉리는 엄마를 조르며 가판대 앞을 떠날 줄 모른다. 오토바이에 한 가득 제수용품을 실은 낌티비씨는 곤란한 눈빛으로 아이를 보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가격을 물어본다.

성서공단에서 일하는 낌티비씨는 7년 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팜티쭉리를 낳았다. 한국에 온지는 10년. 여동생은 부산, 남동생은 성남에서 일한다. 베트남에 있는 부모님은 못 본지 3년째다. 같은 한국에 있지만 동생들도 못 본지 한참됏다. 이번 설에는 모처럼 대구에서 동생들과 명절을 보내기로 했다. "돈 버느라 다 떨어져 살아요. 다 한국에 와 있지만 일하느라 서로 잘 못봐요. 그래도 명절이니까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도 볼 수 있고 그래서 설날이 즐거워요" 낌티비씨 얼굴에 미소가 가득이다.

계란 1판을 들고 장을 보는 중국인 이주노동자(2014.1.27.월요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계란 1판을 들고 장을 보는 중국인 이주노동자(2014.1.27.월요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배추 가판대 앞에서 계란 1판을 들고 있던 중국인 이주노동자 영리(30)씨는 이번 설을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중국 동료들과 보낸다. 중국 설 전통음식을 해먹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마친 뒤 바로 버스를 타고 이곳으로 왔다. 명절에 고향에 가지는 못하지만 모처럼 사흘간의 휴가를 얻어 중국 친구들과 두류공원에도 놀러가기로 했다. 고향에는 결혼할 여자친구가 생기면 함께 갈 예정이다.

"지난해 추석에는 중국 칭다오에 있는 부모님과 보냈어요. 즐거웠어요. 일본에서 일하는 형과는 못 본지 4년 됐어요. 둘다 휴가철이 맞지 않아 못봐요. 올해는 한국에서 설을 보내요. 7년간 대구에 있으면서 두류공원 한 번도 못 갔어요. 그래서 친구들과 갈려구요. 가족과 고향이 그립지만 어쩔 수 없어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 영리씨는 계란과 방금 산 배추를 들고 만두를 사러 골목으로 사라졌다.

와룡시장에서 파를 사는 태국 결혼이주여성(201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와룡시장에서 파를 사는 태국 결혼이주여성(2014.1.27)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앞서 오후 5시 성서 와룡시장. 설밑이지만 시장은 한산했다. 간혹 제수용품을 사러 온 손님들은 가격을 묻고는 "비싸다"며 자리를 떴다. 하루종일 장사를 하고 마수걸이도 못한 야채상인 얼굴에는 먹구름이 꼈다. 와룡시장에서 10년째 야채를 파는 이귀분(77) 할머니는 서울에 사는 자녀들을 보기 위해 처음으로 역귀성을 한다. 장사는 잘 되지 않았지만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을 볼 생각에 힘을 낸다.

"호박 속도 다 긁어서 먹기 좋으라고 봉지에 내놨는데 안팔리네. 위에 식자재마트, 이마트, 홈플러스가 생긴 뒤에는 더 장사가 안되지. 아이고 마트가 해마다 들어서니 잘 될 턱이 있나" 무심한 눈길로 손님들을 처다보는 주름진 얼굴에 근심이 가득이다. 그래도 이 할머니는 "2-3일 여유가 있으니 손님이 더 많이 오지 않겠냐"면서 "오랜만에 가족들이 다 한자리에 모이는데 좋은 얼굴로 가야지. 울상만 짓고 있으면 오려던 복도 안와. 오늘 10만원 벌었으니 그나마 얘들 새뱃돈은 챙겼네"라며 웃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반찬을 사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2014.1.27.와룡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오토바이를 타고 반찬을 사는 인도네시아 이주노동자(2014.1.27.와룡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 할머니 옆 가판대에는 그새 손님이 들었다. 할머니는 "색시 여기도 온나"하고 농담을 건넸다. 빨간 옷을 입은 태국 결혼이주여성 미란트리(41)씨는 제수용품을 사기 위해 장을 찾았다. 손에든 검은 봉지에는 조기, 문어, 사과 등 제수용품이 가득이다. 함께 온 남편은 고기를 사러 정육점에 갔다.

결혼한지 이제 석달 된 새색시는 서툰 요리실력과 한국말 때문에 일주일 동안 인터넷을 찾아보고 여러 가지를 공부하고 있다. 다만 가족과 떨어져 보내는 첫 명절에 남편 몰래 울적도 있다. "남편, 시엄마 잘해줘요. 그런데, 설날다가오니 가족, 친구 보고 싶요. 울었어요. 또 한국음식만 해서 조금 섭섭해요. 그래도 재밌어요" 미란트리씨의 말을 들은 노점상들은 "괜찮다"며 그녀를 토닥였다.

와룡시장과 월요시장은 성서공단과 가까워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민들이 많이 찾는다. 이날도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 여러나라의 이주민들이 장을 보러 나왔다. 이 가운데 설을 맞아 휴가를 받은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형제나 친구들을 보러 가지만, 대부분은 공장 기숙사나 집에서 휴가를 보낸다. 명절이 짧고 돈이 부족해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뻥튀기가 끝나자 연기가 피어오른다(2014.1.27.와룡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뻥튀기가 끝나자 연기가 피어오른다(2014.1.27.와룡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강정을 만들고 조청을 뿌리는 상인들(2014.1.27.와룡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강정을 만들고 조청을 뿌리는 상인들(2014.1.27.와룡시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와룡시장 입구. 뻥튀기 기계 앞. 파키스탄에서 온지 6개월 된 24살 자히르라쉬드씨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동료를 따라 처음으로 뻥튀기 만드는 것을 구경했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흰 연기가 나고 고소한 냄세가 나자 자히르씨의 눈이 동그래졌다. 쌀과 깨로 만든 뻥튀기를 맛보면서 "맛있어요"라고 하자 옆에서 강정을 만들던 상인들은 조청이 흐르는 따끈한 강정을 한 바가지 퍼 건냈다. 

한국에서 처음보내는 설. 자히르씨는 '가족이 보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 눈물부터 흘렸다. "외롭고 슬플때는 고국의 노래를 들으며 우울함을 달래다"는 그는 이번 설에 어떤 계획도 없다. 상사에게는 "계속 일을 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런 자히르씨가 안타까웠던 한국인 동료는 한국 설 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자히르씨를 시장으로 데리고 왔다. 자히르씨는 "엄마 병원비, 동생 학비를 벌기위해 한국에 왔다. 지금은 힘들지만 가족 위해 열심히 일하고 내년 설에는 파키스탄 내 고향에 꼭 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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