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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항쟁 바로보기...대구 역사 바로 세우는 첫 걸음"
대구지역 예술가 20여명 9.6일까지 강연·답사·문학제·토론회 등 '10월문학회' 행사
2015년 07월 28일 (화) 18:05:51 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pnnews@pn.or.kr

대구지역 예술가들이 '10월항쟁'의 정신을 이어가기 위한 '10월항쟁 바로보기' 행사를 열었다.

'10월문학회'는 지난 26일 대구 수성구 지식과세상에서 10월항쟁 바로보기 첫 번째 행사로 '역사속의 10월항쟁'을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발제는 호산고등학교 역사 교사 강태원(53)씨가, 사회는 시인 이철산씨가 맡았다. 이 자리에는 시민 20여명이 참석했으며 오후 2시부터 3시간 진행됐다.

강태원씨는 "10월항쟁은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요구와 자주독립국가에 대한 열망에 따른 민중의 저항이라는 측면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지만 그 후유증이 적지 않다"며 "대구지방은 '빨갱이가 많은 곳'이라는 인식과 함께, 보도연맹사건과 같은 무차별적 학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또 "좌, 우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는 하나의 분파로 몰아가는 과정에서 역사적 사실을 희석시켰다"면서 "좌,우 관계없이 함께 아픔을 기억하고 관계를 정립해 더 나은 역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연에 참석한 대구지역 다른 예술가들도 10월항쟁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여러 의견을 내놨다.

   
▲ 호산고 역사교사 강태원씨(2015.7.26)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사회를 맡은 시인 이철산씨는 "현재 우리 정부는 전국 곳곳에서 권력을 폭력적으로 자행하고 있다"며 "법적 근거나 타당성 없이 10월항쟁, 보도연맹, 4.3항쟁 같은 무차별적 국가 학살의 사실도 왜곡하고 있다"고 했다. 때문에 "우리지역에서는 10월항쟁을 바로 아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첫 걸음"이라며 "제대로 알지 못하면 무엇을 할지 모른다. 10월항쟁이 고민의 발판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10월문학회에 참여하는 시인 고희림씨는 "민중의 자주적 항거인 10월항쟁을 '시'라는 예술을 통해 사실에 가깝게 복원해 시민들에게 알리고 아픔에 공감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10월항쟁 유족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고, 잘못 알고 있거나 몰랐던 사실을 찾아가는 활동도 할 것"이라고 했다.

화백 정태경씨도 "4.3항쟁을 '지슬'이라는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듯 역사적 사건을 문화나 예술을 통해 표현했을 때 더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며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10월항쟁'을 예술작품을 통해 쉽게 접하고 공감할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같은 10월항쟁 바로보기 행사는 7월 26일 첫 강연을 시작으로 9월 6일까지 열린다. 8월 15일 '시민과 함께하는 10월항쟁 답사', 9월 6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을 만나다'에 이어, 대구경북작가회의 소속 10월문학제위원회의 '10월항쟁문학제', '토론회', '순례' 등도 예정돼 있다. 

10월문학회에는 시인과 화가, 무용수 등 대구지역에서 활동 중인 여러 분야의 예술가 2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문학회는 10월항쟁의 의미를 되새기고 10월항쟁의 정신을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알리고자 지난 2013년 결성됐다. 이들은 결성 후 올해로 3년째 10월항쟁 관련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 '역사속의 10월항쟁' 강연(2015.7.26) / 사진.평화뉴스 박성하 인턴기자

이날 강연에 따르면, 해방이후 1946년 당시 대구는 전쟁동안 일본 등 타국으로 나갔던 해외동포들이 한꺼번에 귀환하면서 남한 전체 인구 가운데 16.4%를 차지할 정도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군정은 '미곡수집령'을 공포하고 원가의 1/5가격으로 농민들에게서 쌀을 강제로 거둬간 뒤 차별적인 배급 정책을 실시했다.

특히 이 시기 대구․경북 일대에 콜레라 전염병이 창궐해 시 경계가 봉쇄됐고, 전라도 등 다른 지역으로부터의 농작물 공급마저 끊겨 돈이 있어도 쌀을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굶주린 농민들은 미군정청 앞에서 "쌀을 달라"며 시위를 이어갔다. 이러한 가운데 국립경찰로 채용된 과거 친일파 출신 경찰들은 항의하는 농민들에 대한 보복을 벌였고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커져갔다.

1946년 9월 23일 부산지역 철도파업을 시작으로, 9월 24일 대구지역 1천여명의 노동자가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10월항쟁이 전개됐다. 10월 1일 저녁 대구시청 앞에서 기아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시위 도중 경찰의 발포로 노동자 2명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다음날 아침 대구경찰서, 대구역, 대구시청 등 3곳에서 시위를 이어갔다. 시민과 경찰 사이의 충돌과정에서 경찰 4명과 노동자 17명이 사망했고 1천 7백여명이 체포됐다. 미군정은 10월 2일 오후7시 대구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우익단체를 동원해 시민들을 '좌익'으로 몰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후 시위가 대구 인근 지역인 경산군, 성주군, 영천군 등 경북 전지역으로 확산됐고 '전국적인 항쟁'으로 퍼져나갔다.

이에 대해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만들고 국가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을 조사했고, 과거사위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로 정권 교체 이후 과거사위 활동은 중단됐고 예산지원도 끊겨 진상규명 작업은 멈춰있는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낙연 의원이 지난 2012년 처음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지만 3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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