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10.22 목 18:31
> 뉴스 > 교육/노동
   
해 넘겨 넉달째...한파 속에서 촛불켠 경북대병원 '해고자들'
계속되는 병원의 소송·1억 벌금, 실업급여로 생계 유지하며 126일째 '복직' 싸움하는 가장들
2016년 02월 03일 (수) 17:24:15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pnnews@pn.or.kr

   
▲ "나는 정당하게 일하고 임금도 정당하게 받고 싶다" 경북대병원 주차 해고자 이흑성씨의 글귀(2016.2.2.경북대병원)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나는 정당하게 일하고 임금도 정당하게 받고 싶다'


2일 대구시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삼덕동 본원 주차장 2층. 1평 남짓한 주차유도 노동자 초소벽에 못으로 긁어 놓은 글씨가 선명하다. 좁은 초소에서 무명의 노동자가 적은 글귀에 간절함이 묻어났다. 지난해 9월 30일까지 이 곳에서 일하다 해고된 이흑성(64)씨는 "이 글자가 이렇게 가슴에 와닿을지 몰랐다"며 "나 이전에 일한 사람이 새겨 놓은 것 같다. 그 사람도 결국 해고된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 이씨가 지난 6년간 일하던 경북대병원 정문주차장(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1평 남짓한 경북대병원 주차유도 노동자들의 초소(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씨는 정년이 돼 이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 한 이후, 경북대병원 주차장에서 주차유도 노동자로 지난 6년간 일했다. 온도계 수은주가 더 이상 올라가지 않을만큼 더웠던 여름과 손발이 얼듯 추웠던 한파를 주차장 쇠판 위에서 6년간 견뎠지만 해고는 한 순간이었다. 아들과 딸이 장성해 다른 해고자들보다 금전적 어려움은 덜하지만 실업급여로만 가정을 꾸려가는게 쉽지만은 않다.

경북대병원 하청업체 비정규직 주차관리 해고자들의 '복직' 싸움이 해를 넘겨 넉달째 이어지고 있다. 체감온도 영하 15도의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폭설이 내린 길 거리에서도 촛불은 꺼지지 않고 있다.

   
▲ '해고 규탄 원직복직 촉구 125일째 촛불집회'(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0~60대 가장들은 일터를 잃은 고통뿐 아니라 쌓여가는 병원측의 고소·고발장, 벌금고지서에도 시달리고 있다. 한창 크는 자녀 양육비, 각종 대출 이자, 식료퓸, 교통비 등 생활자금은 해고 후 모두 끊겼다. 결국 해고자 26명 중 절반은 생활고로 '알바(아르바이트)라도 해야겠다'며 남은 해고자들의 등을 두드리고 씁쓸히 떠났다. 농성장 동료들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남은자들의 간절함은 배가 됐다.

전수미(가명)씨는 40대 후반 평범한 가정주부다. 2007년 경북대병원 주차장 안내도우미에 고용돼 9년 동안 일하다 지난해 9월 30일자로 해고됐다. 두 아이의 엄마로 남편과 함께 가장 역할을 해오다, 해고자 신세가 돼 차가운 길바닥에서 복직 농성을 벌이고 있다. 다른 사람의 애기인줄말 았았던 삶의 주인공으로, 결코 한 번도 원치않았던 사건의 당사자가돼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해고자 전씨와 양씨가 넉달째 병원 앞 길바닥에서 촛불을 켜고 있다(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9년간 하청업체가 변경될 때마다 전씨는 항상 고용이 승계됐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새 업체가 기존 정원에서 4명을 줄이지 않으면 나머지도 고용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조는 이 같은 새 업체의 조건이 공공기관 용역보호지침 위반이라며 국립병원인 경북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은 계약을 강행했다. 저항하던 기존의 노동자들은 자동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전씨는 그렇게 9년간의 직장을 잃게 됐다.

새 업체는 곧 신규채용에 나섰다. 전씨가 일하던 자리에는 새 유니폼을 입은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들어왔다. 전씨는 그 때부터 복직을 향한 싸움에 나섰다.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7시까지 경북대병원과 조병채 경북대병원장 집앞, 대구시청, 대구지방노동청 등에서 피켓과 촛불을 들고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고 있다. 가을에 시작된 싸움은 어느덧 한겨울로 접어들었다. 설밑에도 싸움은 이어진다.

   
▲ 해고자들 자리에 신규채용된 주차안내요원들(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너무 힘들어요. 자꾸 눈물이 나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싶어요" 전씨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가늠하지 못했다. "생활고는 실업급여로 그럭저럭 버텨요. 돈이나 추위보다 인격적 모멸감이 더 참기 힘들어요. 그래도 지난 9년간 함께 일했는데, 비정규직이라고 이렇게 쉽게 사람을 자르는 걸 보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건 아니잖아요" 전씨는 작은 목소리로 그러나 힘있게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남편과 아이들은 그녀의 싸움을 지지하면서도 그만두길 바라고 있다. 매일 아침 핫팩을 등과 허리에 붙이고 두꺼운 점퍼를 입고 나가는 '엄마', '아내'의 뒷모습에 고단함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전씨는 복직때까지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용역보호지침이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믿겨져요? 회사가 잘못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이런 게 있다는 게 몰라서 그냥 잘려요. 작은 힘이지만 정의가 있다는 걸 알리고싶어요. 어디 우리뿐이겠어요. 그 때까지 길바닥이든, 눈바닥이든 나와서 촛불 들어야죠"

   
▲ 경북대병원 로비 농성장을 지키는 한 명의 해고자(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50대 여성 양진경씨도 고용 1년 반만에 해고됐다. 지역의 A백화점 캐셔로 일하다 비정규직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나마 국립병원에서 일하면 좀 더 나은 노동여건에서 일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고에 벌금고지서, 고소장까지 경북대병원은 백화점과 다른 면에서 그녀에게 가혹했다.

복직 싸움을 벌이다 스트레스로 위 건강까지 나빠진 양씨는 약을 달고 산다. 하지만 지지하는 가족이 있어 위로를 받는다. 함께 싸우다 떠난 다른 해고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비가 내리면 우비를 입고, 눈이 오면 촛불로 몸을 녹이며 126일째 거리에서는 이유다.

"정부 지침을 어긴 건 병원이잖아요. 왜 해고자들이 가만히 당하고 있어야 돼요? 갑질이잖아요. 사람을 부품처럼 보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죠. 우리만의 싸움이 아니에요. 저기 서 있는 젊은 주차안내도우미도 2년 뒤 해고 되겠죠. 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싸워야 해요. 끝까지, 될 때까지 해봐야죠 " 경북대병원 주차 비정규직 해고자들의 복직싸움은 설 연휴 기간에도 계속된다.

   
▲ 경북대병원 삼덕동 본원(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편,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본부장 권택흥)는 3일 오후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경북대병원 비정규직 집단해고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해고자 26명 전원에 대한 원직복직"을 촉구했다. 또 같은 날 오후 민주노총 의료연대본부 대구지부(경북대병원 노조)는 해고자 원직복직 촉구 126차 촛불집회를 경북대병원 앞에서 진행했다. 노조는 오는 4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지난해 9월 30일 경북대병원은 주차장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26명을 해고했다. 해고자들은 "정부 지침을 위반한 부당해고"라며 반발해 넉달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 해고자들은 전 하청업체로부터 3억3천만원의 체불 임금도 받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경북대병원은 "해고가 아닌 계약 해지"라며 새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신규채용을 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14일에는 농성을 벌인 노조 간부와 해고자 등 3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또 병원 내 농성과 관련해 이행강제금 1억여원도 통보한 상태다.

   
▲ 진료안내 데스크에 병원측이 게시한 이행강제금 통지서(2016.2.2)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관련기사
· 법원, 경북대병원 노조에 '소리없는 집회' 결정 논란· 일반해고에 파견직 확대...거리로 내몰리는 노동자
· 대구 경찰, 체불 노동자에게 5만볼트 테이저건 사용 논란· 노조는 병원 출입도 집회도 말라?...경북대병원 '소송' 논란
· 경북대병원, 해고자들 2억여원 임금체불 드러나도 외면· 경북대병원, 비정규직 주차관리 노동자 26명 해고 논란
· 경북대병원, 노동자 집단해고도 모자라 '고소'까지

   
전체기사의견(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본 신문에 게재된 기사, 링크에 대한 모든 법적권리와 책임은 기사작성자 평화뉴스 에게 있습니다.
* 평화뉴스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신문윤리강령과 신문윤리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
* 제호 : 평화뉴스 * 편집.발행인 : 유지웅 * 창간.발행일 : 2004년 2월 28일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대구 아00010 * 정기간행물 등록 연월일 : 2007년 3월 14일
(우)41266 대구시 동구 국채보상로 155길 54 (상가동 202호) | 대표전화 053-421-6151 | 팩스 0505-421-61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유지웅
Copyright 2008 평화뉴스. All rights reserved. 전자메일 pnnews@p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