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에 해직기자가 된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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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명희 / 한신대 총장선거와 한신학보의 해고통보를 보며


사랑하는 내 딸 혜진아!
스무 살 봄을 해직기자가 될 위협에 시달리며 시작하는 너에게 엄마는 “당당하게, 물러서지 말고, 어떤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말기를 바란다.”고 했지.
미안하구나. 스무 살, 네가 맞받아가며 감당하기에 벅찬 상황임을 알면서 엄마는 고작 품위를 지키라는 주문을 했으니...

지난해 2월, 우리 가족이 함께 한신대학교에 간 날이 생각나는구나. 캠퍼스 곳곳을 돌아보며 사진도 찍고, 미리 네 생일축하파티를 하고 널 거기 두고 돌아왔지. 하지만 네가 4년을 살아낼 교정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분주히 뛰어다니며 깔깔거리는 네 모습을 상상하는 일은 참 즐거웠단다.

한신학보 기자로 최종 합격해서 수습하던 4명 중 3명이 중도에 포기해서 너 혼자 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대견했단다. 방학도 주말도 학보사에 매여 취재하고 원고 쓰고, 학보사 편집실에서 수시로 밤새고, 심지어는 취재 때문에 수업도 못  들어가면서 결석으로 인한 학점의 불이익까지 감수하며 활동했는데, 총장선거를 앞두고 발행한 ‘호외’를 빌미로 해임통보를 받았구나.
그러나 이제 자취방보다 더 익숙한 학보사 편집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신 너는 천막농성장에서 총장선거 무효를 주장하며 “한신학보 기자에 대한 해임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구나.
“민족한신!”을 입에 달고 다니며 한신인임을 자랑스러워하던 너에게 닥친 일이 부당하고 가혹하게 여겨지겠지만, 오히려 너를 성장시키는 삶의 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단다.

그런데 어찌 ‘시대를 앞서가며 세상을 이끄는 진보 대학’을 자처하는 한신대학교가 이럴 수 있는지 참으로 애통한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구나.

한신대학교 홈페이지
한신대학교 홈페이지

학내 구성원들의 총투표 결과 3순위자를 총장으로 선출한데 대해 문제제기를 하며 대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을 ‘감금폭행’ 등의 어마무시한 죄목으로 고소 고발하고, 그것도 모자라 4월 25일, 한신대 학생처장이 ‘사법처리와 학내징계’ 운운하며 협박성 통지문을 부모에게 보냈더구나.
엄마는 5월 2일, 한신대 학생처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SNS에 올렸단다.
너를 극악무도한 범죄자로 묘사한 학생처장에게 물었지.
“저의 딸 은혜진 학생을 직접 만나보셨습니까? 은혜진 학생과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해 보셨습니까? 총장 선임과정과 결과로 인해 빚어진 학내사태를 기사화하기 위해 현장을 지켜온 학생기자에게 조차 이런 유감스런 문건을 보내는 한신대학교에서 언론의 자유가 지켜진다고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또 하나 안타까운 점은 한신대학교 교수님들이다.
총장선거와 관련해 촉발된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40일이 지나도록 스승으로서 무얼 하고 있는지, 학생들이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행동하는 동안 교수님들은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정의를 부르짖는 제자들이 보이지 않는 건지 말이다.

지난 5월 9일 김복기 개방이사가 “2명의 개방이사가 투표권을 부여받지 못해 총장 선임결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강성영 신임총장에 대한 집무집행정지가처분신청서’를 수원지방법원에 제출했고, 10일 ‘신임총장 선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볼 때 총장선거 과정 자체가 절차상의 오류가 있었음이 확실한데도 한신대는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학생들만 처리하면 한신대의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는 듯이 몰아가고 있구나.

<한겨레> 2016년 4월 20일자 9면(사회)
<한겨레> 2016년 4월 20일자 9면(사회)

천막농성장에서 학교와 맞서고 있는 너와 친구들의 안위를 생각하면 어지럽구나.
부모인 우리가 대신 해결해 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한신대의 졸렬하고 비열하기까지 한 행위가 또 드러나 아찔한 현기증을 느낀다.
‘3월 31일 이사들 특수감금혐의 건’은 이사회의 고소취하로 해결되는 듯 했으나 ‘특수감금혐의’가 비친고죄라 고소취하와 상관없이 24명의 학생들은 경찰서에 불려가 12시간이 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었지.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단다. 이사회와 별도로 학교법인에서 너희들을 고소고발한 건이 두 건이 더 있었단다.
- 3월28일. 법인사무국장 특수감금혐의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으로 감금)
- 4월 4일 부터~ 현재까지. 총장실, 법인사무국실 앞 복도 점거. (업무방해혐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회에서 고소취하 한 날 학교측은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펼쳤지.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신임총장과 협력하기 바란다면서. 사악하기 그지없는 행태라고 밖에 할 수가 없구나.

이에 비해 너희 학생들은 학내문제는 학내에서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서 머리채를 휘어잡히고, 의자를 밀쳐 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치고, 폭언과 폭행으로 실신하여 엠블런스에 실려가면서까지 스승을 고소하기를 거부했지.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상황인지. 너희들을 상하게 하고 배척하는 그들이 한때는 학생운동의 선봉에 서 있던 자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구나.

지금 각계에서 한때 ‘민주의 요람’이었던 한신대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느냐며 탄식하고, 어찌된 일이냐고 걱정하는 안부전화를 거의 매일 받는데, 학교는 기어이 너희들을 경찰서에 보내고 사법처리를 받게 하려는 것인지...

사랑하는 내 딸 혜진아! 그리고 친구들아!
이번 일로 인해 많은 고통과 불이익을 당하겠지만, 부디 너희들의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손상되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내기를 부탁한다.

“하나남만 믿고 모험하여라, 꿈꾸는 자, 위대한 동경과 약속에 사는 자! 그의 이름은 크리스챤이다” -장공 김재준-

2016년 5월 13일
김명희

[첨부1] 한신대학교 학생처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첨부2] 자녀를 사랑하는 한신 학부모회의 성명서







[기고] 김명희


 [참고 기사]
<국민일보> 2016년 5월 14일자 15면(오피니언)
<국민일보> 2016년 5월 14일자 15면(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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