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철 교수 투신 이후, 대학은 부활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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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규 / "총장 직선제 폐지ㆍ역사교과서 국정화, 교육계 장악하려는 노골적 의도"


화살은 과녁에 꽂히면 한동안 좌우로 꼬리가 떨리며 진동한다. 고현철 교수의 지난 8월 17일자 죽음은 내 가슴에 아직도 진동되며 그 아픔이 울리고 있다. 시인 김지하로부터 ‘죽음의 굿판’이라 호도 당했던 분신정국 시절이 있었다. 역시 학원자유화가 화두였던 그 시대조차도 학생이 아닌 교수가 투신한 경우는 내 기억엔 없다. 그만큼 이 시대가 위중한 것일까. 하지만 더 위중한 것은 비극적 사건이 일어나도 충격조차 받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무딘 감수성 그 위중함이다. 그 시인 김지하가 어느 시기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를 어느덧 잊어버린 것일까.

고현철 교수가 목숨까지 던지며 지키려했던 것은 총장 직선제였다. 그동안 전국의 국공립대학들은 교육부가 정부의 예산 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키거나 구조조정 중점 추진 대학에 선정하는 등의 압력에 굴복해 마치 도미노가 쓰러지듯 모두 총장 직선제를 간선제로 바꾸었는데, 유일하게 끝까지 버틴 곳이 부산대였다.

대학교육연구모임 대학고발자 웹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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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직선제의 폐단을 근거로 간선제로 바꾸라는 강요에 따라 간선제로 총장을 선출한 대학들 경우에도 제18대 총장 후보 1순위 김사열 교수의 경북대를 비롯한 공주대·한국방송통신대 등은 교육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임명 제청 거부하는 바람에 1년 넘게 총장 공석 사태가 빚어지는 몸살을 앓고 있다. 결국 교육부의 목적은 직선제나 간선제가 아니라 대학 자율 옥죄기라는 것이다. 교육부는 직선제 폐지해야 예산을 주겠다고 강요한 적 없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간선제로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총장 임명 제청 거부 사태를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갈수록 드러나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국공립대학 총장을 자기 입맛에 맞는 인물을 임명하겠다는 그 의도다.

대학의 자율권을 이처럼 무리하게 침해하면서까지 대학의 숨통을 죄는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현 집권세력의 정권재창출, 더 나아가 장기집권 의도와 맞물려 있다고 본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표현대로 갈수록 보수화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이념 지형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남아있는 진보 영역인 대학사회마저 장악하려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대학은 4·19혁명, 부마항쟁, 5·18민주화운동, 6·10항쟁 등에서 나타나듯이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저항의 진지였다. 모든 민주화운동의 시작은 늘 대학이었고 대미를 장식하는 것도 대학이었다. 어쩌면 현대사는 기득권 세력과 그에 맞서는 대학사회의 투쟁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시대 상황에 따라 강온으로 전략은 오고갔지만 보수 권력이 다양한 탄압의 수단을 통한 대학사회 관리를 기득권 유지의 핵심 고리로 여겼던 이유다. 권력과 금력에 순치당한 지금의 뼈아픈 대학 현실은 오랜 기간에 걸쳐 때론 강압적으로 때론 교묘하게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펼쳐진 대학 길들이기의 결과다.

대학만이 아니다. 교육계 전반에서 그런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현 집권 세력에게 무슨 직선제 알레르기가 있는지 총장 직선제 폐지와 마찬가지로 시도교육감 직선제 폐지도 꾀하는 것도 한 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가운데 13명이 진보 성향의 교육감으로, 직선제를 통해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린 것이 보수 정권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번 조희연 교육감의 선고유예 판결에 보수적 교육단체가 반발하면서 곧장 들고 나온 것이 교육감 직선제 폐지 요구였던 것에서도 그들의 위기감이 감지된다.

'대학 자율성 수호를 위한 경북대교수모임 발족식'(2015.4.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학 자율성 수호를 위한 경북대교수모임 발족식'(2015.4.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와 역사교육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축소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미 교학사 사태를 통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에 엄정한 국민 여론의 심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국정 교과서를 무리하게 추진하려는 것 역시 국공립대학 총장과 시도교육감 직선제 폐지와 더불어 장기집권 시나리오의 한 과정이라고 여겨진다. 진보세력의 마지막 보루인 교육계를 다잡는 것을 놓쳐선 안 될 핵심 과제로 보는 것이다. 직접적인 저항세력화 될 가능성 있는 대학사회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게 그들의 이념을 주입시킬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교육계 장악에 사활을 거는 것이다.

특히 한국사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내에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명적 약점인 5.16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 관련 부분을 그들의 관점으로 기술해 명예회복 시키려는 의도에서 조급증을 내는 것 같다. 거기에다 역사교육에서 근현대사 비중을 높이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면서까지 근현대사 비중을 축소하려는 것은 친일과 독재로 얼룩진 부끄러운 현대사를 가능한 감추고 싶어서인가 하는 의혹을 낳기 충분하다.

총장이나 교육감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물을 앉히려 들고, 역사도 정권의 입맛에 맞게 왜곡 기술하려는 등 교육계를 장악하려는 모든 움직임에서 그 노골적인 의도를 어찌 읽지 못하겠는가.

고현철 교수의 희생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총장 직선제 수호만이 아닌, 대학사회는 물론 교육계 전반의 자치와 자율성 회복, 보다 근본적으로는 교육의 본령을 회복하자는 호소였음이 내 가슴에 남겨진 그의 죽음 그 떨림으로 전해져 온다.

대학 역시 대학 본연의 모습을 되찾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마침 부산대가 총장 직선제를 존치하기로 결정하자 전국 교수단체들도 결집하고 있다. 전국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등 7개 교수학술단체들은 지난 8월 21일 부산대에서 긴급 대표자회의를 갖고 전국교수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들은 △대학의 자율성과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교육부 정책 거부 및 총장 공모제 폐지를 위해 총력 투쟁할 것 △직선 총장에 대한 임명 제청 거부 또는 해당 대학에 불이익을 줄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에 나설 것 등에 결의했다.

연애·결혼·출산·주택·인간관계·꿈·희망을 포기한다는 ‘7포 세대’의 청년 학생들이 ‘헬조선’이라 부른다는 비인간적인 우리 사회에서 인간다움의 최후 보루로 대학을 지켜내야 한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는 고현철 교수의 유서처럼 대학을 지키는 것은 대학사회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켜내는 것이기도 하다. 진리와 자유와 정의와 민주주의, 대학이 지성의 전당이라는 것은 그 지성이 양심과 함께 할 때다. 죽어 가는 이 시대를 살리려면 대학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 하지만 부활은 늘 죽음 뒤에 온다. 아직도 가슴 울리는 고현철 교수의 죽음은 그런 의미일까.





[기고] 정중규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부소장.
정책네트워크 내일 장애인행복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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