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숨진 타국에서 마주한 한국 이주노동자 현실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7.08.2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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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축사서 숨진 네팔 이주노동자 형, 발 바하두르 구룽(29)씨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는 인권이 없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에서 인권이 없는 것 같다. 사람이 죽은 것은 같은데 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사람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가 죽은 것처럼 (가볍게) 생각한다. 지금도 타국에서 외롭게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내 동생처럼 죽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발 바하두르 구룽(29)씨는 지난 24일 저녁 오오극장에서 열린 대구인권사무소 10주년 인권영화제 첫 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 같이 말하며 호소했다. 그는 지난 5월 경북 군위의 한 돼지 축사 분뇨 정화조를 청소하다 숨진 네팔 이주노동자 테즈 바하두르 구룽(25)씨의 형이다.

(왼쪽부터)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센터 소장, 발 바하두르 구룽씨(2017.8.24.오오극장)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왼쪽부터)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센터 소장, 발 바하두르 구룽씨(2017.8.24.오오극장) / 사진.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동생이 숨진지 한 달만인 6월 10일 입국했던 그는 다음달 4일 네팔로 돌아간다. 지난 3개월동안 동생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또 동생이 일했던 축사 사장을 만나고 법적 소송을 준비하면서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 현실을 뼈아프게 느끼게 됐다. 구룽씨를 처음 만난 사장은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지만 보름 뒤 "테즈가 동료의 군기를 잡으러 정화조에 들어갔다"며 말을 바꿨다.

고향에서 수 천km 떨어진 낯선 곳에서 쓸쓸하게 숨진 테즈씨의 시신은 한 달간 안동병원 영안실에 안치돼 있었다. 3년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되돌아온 동생을 만난 뒤 형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테즈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눈시울을 붉힌 채 "착했다"는 말만 되뇌일 뿐이다.

5남매 중 둘째인 테즈씨는 가족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그러나 네팔에서 안정된 직장을 다니며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엔 임금이 턱없이 부족했다. 몇 년만 고생하면 가족들과 잘 살 수 있을거라는 꿈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다신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열악한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에도 테즈씨는 올해 1월 작업반장을 맡았다. 월급도 1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올랐다.
 
테즈씨가 청소하다 숨진 군위 축사의 분뇨 정화장 / 사진 제공. 경산이주노동자센터
테즈씨가 청소하다 숨진 군위 축사의 분뇨 정화장 / 사진 제공. 경산이주노동자센터

테즈씨가 일했던 축사의 일은 모두 이주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이들은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일해 받는 돈은 한 달 130~150만원 남짓이다. 휴일은 한 달에 이틀뿐이며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돼지 밥을 주고 축사를 청소한다. 이들은 그만두고 싶어도 마음대로 그만 둘수 없고, 사업주가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거취를 모두 사업주가 정하는 '고용허가제' 때문이다. 테즈씨와 같은 농촌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심하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농축산·임업·어업에서는 주휴·연장·야간수당 등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 때문이다.

경찰은 테즈씨의 사망 원인을 황산수소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했다. 사고 직후 정화조는 깨끗한 상태였음에도 황산수소 기준치 이상인 25ppm이 검출됐다. 기계가 해야 하는 일임에도 사업주는 작업 전 유독가스에 대한 측정도, 보호 장구 착용도 착용시키지 않은 채 맨 몸으로 분뇨조에 들어가게 했다. 해당 축사에 대한 특별 근로감독 결과 18가지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됐다.

테즈씨의 죽음은 '업무상 재해에 의한 사망'으로 결정됐으며 근로복지공단은 유족들에게 9천6백만원의 위로금과 장의비 1천만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테즈씨와 함께 숨진 차비 랄 차우다리(23)씨는 산재 신청조차 하지 못했다. 유족들과의 연락이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테즈 바하두르 구룽(25)씨의 빈소 / 사진 제공. 경산이주노동자센터
테즈 바하두르 구룽(25)씨의 빈소 / 사진 제공. 경산이주노동자센터

김헌주 경산이주노동센터 소장은 "사업주에게 고용을 허가하는 제도인 고용허가제 아래 이주노동자는 대상이 될 뿐"이라며 "노동자 권리를 비롯해 인간으로서의 자기 결정권은 박탈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한국 사람들이 꺼리는 더럽고 어려운 일을 하는 한 명의 노동자"라며 "이주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는 24~26일 3일간 오오극장에서 인권영화제를 열고 이주노동자를 주제로 '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감독 박찬욱)', '자전거 여행(감독 이성강)', '잠수왕 무하마드(감독 정윤철)' 등 세 편을 비롯해 여성차별을 주제로 '그녀의 무게(감독 임순례)', '육다골대녀(감독 이애림)', '남자니까 아시잖아요?(감독 류승완)', 청소년을 주제로 '릴레이(감독 이현승)' '사람이 되어라(감독 박재동)' '우리에겐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등 모두 9편의 단편영화를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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