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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반지하서 밀려나면 어디로...'남산동'에 남겨진 세입자들
[재건축 현장르포] 빽빽한 아파트촌 한 가운데 자리잡은 '양말골목'·싼 월세에 IMF 때 터 잡은 이들
이주명령 후 28집 남아 저항...빈집엔 '철거' 주홍글씨·버티는 이들엔 손배 대자보 "여기 사람이 산다"
2019년 05월 27일 (월) 11:26:54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movie@pn.or.kr

   
▲ '철거' 표식이 된 미용실과 식당 남산4-5 재건축 사업 현장(2019.5.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아파트로 둘러싸인 남산동 재건축 현장을 지나는 한 주민(2019.5.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문구점, 미용실, 양곡상회, 미술학원, 이발소, 양말집 곳곳에 '철거X' 붉은 래커가 선명하다. '그 동안 사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 인사는 보는 이가 없다. '세입자 대상 개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합니다. 6월 30일까지 이주해주시길 바랍니다' 대자보도 집마다 붙었다. 쫓겨난 이들 뒤로는 철거 완수 주홍글씨, 버티는 이들에겐 손배소송 대자보. 대구시 중구 남산4동 재건축 현장의 무정함이다. 

24일 중구 '남산4-5 주택 재건축(900여세대 아파트) 정비사업 지구'. 사방이 빽빽한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인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작은 동네. 서문시장 '양말골목' 옛 명성을 보여주는 간판만 한 때 잘나간 동네의 성격을 가늠케한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긴 타원형으로 가려진 단독주택과 노포들이 보인다. 도시가스도 들어오지 않는 동네는 IMF 때 싼 값에 밀려온 이들이 터를 잡으며 작은 공동체를 이룬 곳이다. 보증금 200~300만원 / 월20~30만원 재래식·공동 화장실이 수두룩하다. 열악했기에 삶의 터전을 쉽게 잡을 수 있었지만 또 그 가난을 이유로 '도시정비'라는 이름의 재건축 대상이 됐다.

   
▲ 세입자에게 내달까지 이주하지 않으면 소송한다는 대자보(2019.5.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노부부의 분식집에 붙은 경고문(2019.5.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018년 12월 이주 명령이 떨어진 후 5개월째 3백여세대의 공동체는 파괴됐다. 인사를 나누던 이웃들과 상인들은 하나 둘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92%가 이주해 현재 세입자 28집만 남았다. 재개발일 경우 세입자도 지원 보호 대상이지만 재건축일 경우 계약 기간이 그날로 종료됨은 물론 이주비 한 푼 지원받을 수 없는 탓이다. 세입자들은 싸울 의지를 잃고 짐을 쌌다. 모두 법의 이름으로 착실히 진행됐다.

여기 28집은 남산동에 남겨졌다. 골방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70대 노부부와 반지하에서 가요교실을 운영하는 무명가수, 수 억원 권리금을 주고 슈퍼마켓을 연 40대 가장, 한 푼이라도 벌려고 뒤늦게 꽃케익집을 연 모녀, 30년 동네 맛집으로 통하던 고기집 사장님, 70년 평생을 남산동에서 국수집을 하던 할머니, 7년차 30대 네일샵 사장님,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도 철거민 신세가 된 학원 선생님.

   
▲ "갈 때까지 가보자" 남산동 입구서 만난 세입자들(2019.5.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남산동에서 밀려나면 또 어디로 가서 자리를 잡아야할지 막막한 이들은 '남산4-5지구 철거민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리고 유령 마을처럼 텅 빈 작은 동네에서 여전히 살아가며 공동체를 지키고 있다. '갈 때까지 가보자', '죽어도 못나간다 투쟁', '죽을수 있어도 물러설 수 없다(수사불퇴.雖死不退)', '보상 없는 이주대책은 투쟁으로 항전한다', '세입자 재산권 말살하는 재건축', '세입자 무시하는 중구청장은 물러나라'. 거칠고 절실한 말들이 현수막으로 나부낀다. 세입자들은 한때 건설사와 재건축 조합에서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 100여명이 공사를 위해 동네 입구를 막고 펜스 작업을 하려하자 전쟁 같은 싸움을 치룬 뒤 자구책을 마련했다. 나름대로 조를 꾸려 새벽 5시부터 자정까지 동네 입구를 지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방범을 돈다. 세입자들은 생계와 병행하며 강제 철거에 저항 중이다. 

   
▲ 남산동 재건축 현장에서 분식집을 하는 백효순씨, 정인식씨(2019.5.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정인식(74)씨와 백효순(64)씨는 16년째 남산동에서 고향분식을 운영하고 있다. 월20만원 시멘트로 지어진 좁은 가게에서 잠도 자고 장사도 한다. 분식만 팔다가 3000원~5000원치 반찬과 국도 따로 팔고 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까 싶어 아저씨는 가게 안 골방에서 생활한다. 아주머니는 최근 암 투병을 하느라 서울을 왔다갔다 한다. 용역들이 가끔 가게에 들어와 고압적으로 계약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아저씨는 '안에 사람 살고 있습니다. 함부로 무단 침입 하지 마세요'라는 작은 경고문도 붙였다.

"여기서 나가면 내 나이에 뭐 해먹고 살겠나. 생활, 생계 다 여기에 있다. 재개발은 풀 한포기 다 보상해주고 재건축은 그냥 나가라니 있는 놈들이 법 내세워 배 채우려 하는 것 아니냐. 여기 보다 싼 곳이 어디 있다고 나가나. 비현실적인 얘기를 하니 답답하다. 소송으로 위압감 주고 젊은 것들이 욕하면서 나가라고 하고. 몇 천원 더 벌려고 골방서 자고 먹는데...쫓아내도 다시 돌아와 장사할 판이다"     

   
▲ 정인기 대책위 위원장이 철거된 빈집 앞에 서 있다(2019.5.2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2.정인기(58)씨는 나름 남산동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고기집 사장님이다. 1층은 고기집 2층은 주거지. 세입자로 있었지만 30년 가까이 동네 터주대감 역할을 하고 있다. 정씨는 사태가 벌어지고 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류규하 중구청장과 오상석 중구의회 의장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30년 터 잡고 단골도 생겼는데 1원 한 푼 없이 나가라니. 힘 없는 약자들한테 해도 해도 너무하다.  명도소송이 날아오고 하니 다 포기하고 나갔고 28집 남았다.  딸린 식구들만 60명이다. 용역들은 아시바(철골) 작업 한다고 밀고 들어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고 구청에 가니 성만 내고. 있는 자들이 밀어 붙이면 우리는 밀려나야 하냐. 어디로 또 가야하냐.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건축 세입자도 지원할 수 있도록 최근 조례를 만들었다는데 법이 잘못됐으면 고쳐야지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 가요교실을 하는 세입자 김성진씨가 자전거로 순찰 중이다(2019.5.24)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3.김성진(57)씨는 2003년 남산동에 세입자로 들어왔다. 서울에서 4장의 앨범을 낸 무명가수인 그는 반지하 건물에 가요교실을 열고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재건축 사태가 벌어진 뒤로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용역들이 밀거 들어올까바 순찰을 돌고 있다.

"업무방해 고소장을 날리고 손해배상청구소송 공문 붙이고 죽으라고만하고 솟아날 방법이 없다. 삶의 터를 일구고 살아가는 우리는 절실한데 중구청은 펜대만 굴리고 있다. 생존권을 말살하는 악법도 법이라고 지켜야 하나. 대체상가라도 마련하든가...이대로면 제2의 용산참사가 날까봐 우리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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