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 공소시효 끝나는 7주기...'성역없는 진상규명' 문 대통령 약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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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 / "아직도 진실 없는 세월호...공소시효 중지, 사회적참사특조위 연장과 조사권한 강화를"


수학여행을 갔던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한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저녁이 문득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손팻말을 들고 앉아 있었던 사람들. 그날 군데군데에서 들리던 나지막한 흐느낌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2014년 4월 18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 사진 제공. '세월호참사 대구시민대책위원회'(현 대구416연대)
2014년 4월 18일, 대구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 사진 제공. '세월호참사 대구시민대책위원회'(현 대구416연대)

그로부터 6년 반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내년 4월이면 세월호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된다. 이 7년은 동시에 세월호참사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의 범죄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공소시효가 끝나는 날이다. 세월호참사 유가족인 단원고 오준영 학생 어머님은 최근 한 지면을 통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참사 이후 6년 하고도 반년, 그 긴 시간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죄책감으로 채워져 있어요.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았지만 세월호 부모들은 그 어떤 때보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힘들고 두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의 시기를 영영 놓칠 수 있는 가슴 답답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라는 심경을 밝혔다.

참사 후 7년이 다 되어 가지만 아직도 제대로 밝혀진 진실이 없는 가운데,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묻고 있다.
 
기상악화로 인천항에서 출항하려고 했던 모든 배들이 출항을 취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세월호 한 대만 무리하게 출항을 했는지? 세월호가 침몰한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침몰 한 시간 동안 선원과 청해진해운은 무려 12차례나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하고, 구조에 나선 해경은 왜 선원들만 표적구조하고 승객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조 시도도 하지 않았는지? 세월호를 직접 관리하고 급변침 당시 선원과 통화한 국정원의 진실은 무엇인지? 박근혜와 황교안 등 전 정권이 박근혜7시간 기록을 30년간 봉인하면서까지 갖은 방법으로 진상규명을 방해한 이유가 무엇인지?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왜 아직도 해경123정장 단 1명뿐인지?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어디에 있는지?

416세월호참사가족협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는 지난 10월 416진실버스를 타고 전국을 돌았다. 20일간 27개 도시의 국민들을 만나 세월호참사 7주기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상규명을 이루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 호소가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성역 없는 전면 재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올해 끝나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을 연장하고 수사권을 부여하는 조치, 진상규명까지 공소시효를 중지하는 조치, 박근혜 전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하는 조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세월호참사진상규명 10만 국민동의청원이 지난 10월 31일 성사되었다. 이로써 실제 법을 만들고 진상규명을 해야 할 책임이 국회와 정부에 있다는 국민의 뚯이 분명히 전달되었다. 법 개정이 통과된다면, 사참위는 또 사력을 다해 진상규명을 해내야 할 것이다.

국회가 제 할 일을 하고, 사참위가 권한을 갖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우리 사회의 전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참사 당시부터 가족들과 함께 단식을 하며 아픔을 나누었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도, 당선된 이후에도 성역 없는 진상규명을 약속해왔다. 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진상규명의 책임을 받아안고, 집권여당으로서 해야 할 마땅한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박근혜7시간 기록물은 물론 군과 국정원 등 정부가 가지고 있는 모든 기록을 공개하고 성역 없는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

416가족협의회 부모들은 차가와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416진실버스 2번째 전국투어에 나섰다. 청와대 앞에는 단식농성을 벌이던 세월호 생존자 김성묵씨가 48일차인 어제 11월 26일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참사 당일 바로 발견되고도 헬기가 아닌 배로 4시 41분간 이송되는 과정에서 생존의 기회를 놓친 단원고 임경빈 학생의 어머니 전인숙씨는 1년 넘는 시간 동안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지속했고, 지난 11월 12일부터는 24시간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2020년 11월 25일 청와대 앞. 임경빈 학생의 어머니 전인숙씨(가장 오른쪽) / 사진 제공. 조영옥(왼쪽에서 3번째)
2020년 11월 25일 청와대 앞. 임경빈 학생의 어머니 전인숙씨(가장 오른쪽) / 사진 제공. 조영옥(왼쪽에서 3번째)

대구시민들은 2014년 5월 13일 70여 개 단체가 모여 ‘세월호참사대구시민대책위원회(현 대구416연대)’를 구성해 본격적인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북구와 달서구, 동구 반야월, 중구 동성로에서 자발적인 주민들과 대구416연대 소속 활동가들이 매주 세월호서명을 이어오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의 곁을 지키며 이웃이 되어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전대통령의 지지기반이라는 지역의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대구시민들이 세월호 진상규명 서명을 하고 노란리본을 받아 가고, 세월호 활동에 참가해 왔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2020.11.18. 영남고등학교 앞) / 사진 제공. '세월호를 기억하는 달서 사람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2020.11.18. 영남고등학교 앞) / 사진 제공. '세월호를 기억하는 달서 사람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2020.11.18. 영남고등학교 앞) / 사진 제공. '세월호를 기억하는 달서 사람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2020.11.18. 영남고등학교 앞) / 사진 제공. '세월호를 기억하는 달서 사람들'

지난 10월 22일 416진실버스가 대구에 온 날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일정에 30여 명의 세월호 활동가가 하루 종일 가족과 함께 행동했고, 저녁 7시 한일극장 앞에서 열린 문화제에는 더 많은 대구 시민들이 모여서 촛불을 들었다. 동네에서, 자기기 소속된 일터에서,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 지역 주민들이 가리지 않고 10만 국회국민동의청원 성사를 위해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내년 7주기까지 시간은 많이 남지 않았고,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은 보고 듣는 것이 괴로울 정도로 심각하다. 국민들은 여전히 함께 아파하고 있지만, 세월에 장사 없고 코로나 등으로 심각한 사회 상황은 국민들의 기억과 관심을 세월호 참사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7주기까지 진상규명을 낙관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또다시 돌아오고 믿는 것은 국민들의 관심과 힘이다. 참사가 나고 박근혜 정권하에서 온갖 방해를 받으면서도 여기까지 온 것은 오직 피해 당사자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에 화답한 국민의 진심과 행동이었다.

대구시민들께 호소드린다. 잊지 않겠다고, 미안하다고, 함께 행동하겠다고 했던 우리의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왔던 것처럼,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조금씩만 더 힘을 내 달라고. 세월호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루어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가자고, 참사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끝내고 가족들에게 그저 평범한 일상을 되돌려 주자고.







[기고]
한유미 / 대구416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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