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크리스마스! 여기 착한 어린이가 있대서 선물 주러 왔어요"
12월 25일 성탄절을 사흘 앞둔 22일 오후 7시 대구시 동구 동호동 한 가정집에 초인종이 울렸다. 대문 너머로 빨간 옷을 입고 배가 볼록 나온 산타와 붉은 뿔이 달린 루돌프 사슴이다.
5살 성주(가명)가 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산타 할아버지다!" 소리를 지르며 내복 차림으로 현관 앞 복도에서 작은 발을 쿵쿵쿵 굴리며 뛰어왔다. 뒤따라 나온 동생 3살 현주(가명)와 엄마 품에 안긴 1살 현준(1.가명)이는 낯선 풍경에 깜짝 놀랐다. 3남매는 처음 본 산타에 신기한 표정이다.
산타와 루돌프가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성주도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수줍게 양팔을 쭉 뻗은 채로 산타와 루돌프에게 두 손을 흔들며 성탄의 인사를 나눴다.
"올해 부모님 말씀 잘 들었어?"
성주는 산타의 질문에 고개를 두세 번 끄덕였다. 산타가 "그러면 선물을 줘야겠네"라고 말하며 장난감과 케이크, 과자가 담긴 선물 보따리를 건네자, "감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부모님에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산타는 이날 저녁 내내 올 한해 착한 어린이들의 집을 찾아 다니며 성탄의 기쁨을 나눴다.
성주네에 이어 다른 어린이들의 집으로 선물 보따리를 날랐다. 오후 7시 20분 도착한 곳은 동구 신서동 한 빌라에 사는 11살 민호(가명)와 6살 민수(가명), 4살 민기(가명) 3형제 집이다.
슬며시 열린 문 사이로 3형제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산타와 루돌프를 쳐다봤다. 선물을 주러 온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산타는 '책 마술'을 선보였다. 백지 상태 책 안을 보여주며 "아무것도 없지?"라고 묻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 산타는 "뾰로롱 외치면 동물 그림이 나온다"며 어린이들에게 주문을 외워보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뾰로롱" 따라 외치고 책을 펼치자 그림이 나왔다.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눈을 휘둥그레 뜨며 "와!"라는 탄성을 질렀다.
대문 앞에서 한바탕 마술 쇼를 한 뒤 선물을 전달했다. 산타가 "착한 일 많이 하고 엄마 말씀 잘 들어서 선물 주는 거야"라고 말하며 어린이들이 평소에 갖고 싶어했던 축구공, 장난감 등 선물을 줬다. 얼었있던 얼굴들은 선물을 받자 그제서야 풀어졌다.
"엄마, 아빠 말 잘 들으면 내년에 또 올 거야. 다음에 봐!"
산타는 3형제에게 이렇게 말한 뒤 어린이들을 뒤로 하고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3형제는 이대로 헤어지기 못내 아쉬웠는지 산타와 손가락으로 브이(V) 자를 그리며 기념 사진을 찍었다.
빨간 선물 보따리는 동구 서호동 한 가게로도 바쁘게 움직였다. 5살 하성(가명)이, 3살 하준(가명)이, 1살 하정(가명)이 어린 3남매는 한겨울 추위도 잊은 채 밖에 나와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산타가 선물을 한 아름 들고 오자 3남매는 멀리서부터 기분이 좋은 지 방방 뛰었다. 하준이는 포장지에 씌인 선물 크기를 보고 놀란 듯이 입을 크게 벌리기도 했다.
대구 동구 주민단체인 '안심 이음'(대표 황순규)은 성탄절을 맞아 '2023 안심이음 사랑의 몰래산타' 행사를 열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동구 주민 5~6명이 한 조가 돼 모두 4개의 조가 동구 일대 저소득층 27가구의 미취학아동과 형제자매 51명에게 선물을 전달했다.
선물을 받는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선물을 주는 어른들도 성탄절 나눔의 기쁨을 함께했다.
이날 산타로 참여한 홍주야(48)씨는 "미숙한 점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선물을 받으며 좋아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너무 기뻤다"면서 "누군가를 위해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기분이 뿌듯하고 보람 있었다"고 말했다. 정지수(16)씨는 "올해가 끝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준 것 같다"면서 "내년에도 또 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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