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에서 폐지를 줍는 노인 10명 중 9명은 기초연금 수급자, 10명 중 3명은 기초생활수급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쉬는 날 없이 박스를 주워 파는 등 노동을 해도 '절대 빈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 쉬는 날 없이 일해도..."담배 한 갑, 음료수 한 잔 사면 남는 것 없어"
대구 중구 동인동 한 빌라 앞 17일 오전 리어카를 연결한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다.
한 할아버지가 폐지와 병, 캔 등을 수집하고 있었다.
여든 나이로 동인동 일대에서 폐지를 줍는 김모(80)씨다.
김씨는 3년째 폐지와 고철, 병을 주워 고물상에 팔고 있다. 매일 아침 6시 반에 집에서 나와 오전 내내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판 뒤, 해가 질 때쯤 다시 나와 폐지를 줍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쉬는 날은 없었다. 주말에 영업하는 식당에서 폐지가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폐지 수집으로 버는 돈은 하루 9,000원 정도다. 그는 "주말에 영업하는 식당에 가면 박스가 5개 정도 나오는데, 그게 계속 생각이 난다"며 "한두 시간만이라도 더 돌아다니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초연금' 월 33만원과 폐지 수집으로 얻은 수익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60만원 정도로 한달을 버텨야 한다. 그는 "하루 1만원 정도 벌지만, 더운 날에 음료수 하나 사 먹고, 담배 한 갑 사면 남는 돈이 없다"며 "물가가 올라 무 한 단도 3,000원이나 하는데, 폐지 모으면서 채소도 잘 못 사먹는다"고 한탄했다.
◆ 꼬박 일해 100kg 모아야 5,000원..."많이 더워졌지만, 생활비 감당하려면 이거라도"
오전 11시쯤 동인동 한 고물상 앞에서는 할머니가 일한 뒤 박스를 옮기고 있다.
폐지를 줍는 장모(75)씨다. 그는 수집한 폐지를 고물상에 전달하고 있었다.
매일 오전 7시부터 나와 4시간 동안 폐지를 줍는다. 기초생활수급비와 노령연금을 합해 90만원을 받지만 매달 나가는 생활비, 병원비가 부담이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폐지 수집에 나서게 됐다. 하지만 폐지 가격이 많이 떨어져 수입도 계속 줄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폐지 10kg을 주우면 500원 주는데, 꼬박 일해 100kg을 모아야 5,000원 돈"이라며 "지난해에는 1kg에 80원 하던 게 30원이나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날이 많이 더워져 폐지를 수집하고 집에 가면 어지럽다"며 "허리와 다리가 아파 다른 것은 하지 못한다. 생활비 감당하려면 이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일해도 '절대 빈곤'...폐골판지 가격 2년 전 대비 절반 가량 하락
폐지 수집 노인들의 '절대 빈곤'에도 불구하고 폐지 가격은 2년째 하락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의 '재활용가능자원 가격조사'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경북지역 신문지 가격은 1kg당 132.2원이고, 폐골판지 가격은 80.9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신문지는 147원, 골판지는 87.3원으로 각각 10%, 7.36%가량 감소했다. 지난 2022년 같은 기간의 신문지 가격은 152원, 폐골판지는 145원으로, 2년 전과 비교했을 때 폐골판지 가격은 절반 가량 하락했다.
◆ 대구 폐지 수집 노인 1,189명 중 91% 기초연금 수급, 32% 기초생활수급...시 "종합대책"
대구시(시장 홍준표)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내고 '2024년 상반기 폐지 수집 어르신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대구에서 폐지 수집을 하는 노인은 모두 1,189명이고, 284개 고물상과 거래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기초연금 수급자는 1,077명으로 전체의 91%다. 10명 중 9명이 기초연금 수급자인 셈이다. 기초연금은 노인 1인 가구 월 평균 소득이 213만원 이하면 신청해 받을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379명(32%)으로 10명 중 3명이다. 기초생활수급자는 1인 가구 기준 월 소득이 62만원보다 적으면 받을 수 있다. 장기요양등급자는 64명(5.4%)이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22%인 261명이었다.
대구시는 폐지 수집 노인들의 건강 상태와 상황을 고려해 공공 노인 일자리 사업을 연계하고, 폐지 수집을 계속하기를 원하는 200여명을 대상으로 6개 구.군 시니어클럽에서 '폐지수집 일자리 사업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폐지 판매 수익과 추가 지원금을 합해 급여를 지원하는 공공일자리 사업이다. 구.군 시니어클럽과 협약을 맺은 고물상 등 공동판매처로 가져오면 평균 수입의 2배가량을 급여로 지급한다.
이외에도 ▲긴급복지 지원 ▲노인 맞춤형 돌봄서비스 ▲방문건강관리 연계 지원 ▲폭염·혹한기 극복 용품 지원 ▲안전사고,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용품지원 사업을 실시한다.
정의관 대구시 보건복지국장은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필요한 보건·복지서비스를 적극 연계하고, 안정적인 소득지원을 위해 노인 일자리를 확대하는 등 돌봄 역할과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민주·정의당..."일단은 환영, 취약계층 폭염·폭우 예방적 대책 마련"
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 강민구)은 17일 논평을 내고 "대구시의 폐지 노인 종합지원대책은 환영할만한 정책"이라며 "올해는 역대급 폭염과 폭우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대구 곳곳에서 미리 준비하고 대비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정의당 대구시당(위원장 한민정)도 이날 논평을 내고 "늦은 감이 있지만, 대구시가 폭염의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지원대책을 내놓은 것은 환영한다"며 "다만 폭염이 일상화되고 갈수록 더해지는 상황에서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기온 35도가 넘어가는 여름 한낮 폭염 속에서 어르신들이 폐지 수집을 이어간다면 온열질환과 사고의 가능성은 높을 것"이라며 "최소한 폭염경보 기간이라도 폐지 수집 행위를 중단하도록 하고, 상응하는 지원금을 지급하는 예방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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