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피해...'가정폭력' 쉼터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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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전 쉼터 이영주 시설장 "아직 가정폭력 인식 낮아...가부장 문화의 잔재"


"가부장적 문화의 잔재로 가정폭력이 발생합니다. 아내와 자식은 남편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평등하다는 인식을 갖고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사)대구여성의전화 가정폭력피해여성일시보호시설 '쉼터' 이영주(40) 시설장은 쉼터 10주년 문화제에서 이같이 말했다.

10월 9일. 대구 희망교 신천둔지에서 '솔개, 되어 날다!'라는 주제로 쉼터 10주년 기념 문화제와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대구여성의전화 회원과 시민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저녁 7시부터 '쉼터 발자취 동영상'상영을 시작으로 대표인사, 쉼터명 공모전 시상식, 문화공연 순으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또, 앞서 열린 문화제에서는 오후 2시부터 참여마당, 마당극, 가정폭력 시민캠페인, 쉼터확장 기금마련 주전부리 판매가 진행됐다.

(사)대구여성의전화 가정폭력피해여성일시보호시설 '쉼터' 10주년 문화제(2010.10.9 희망교 아래 신천둔치)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사)대구여성의전화 가정폭력피해여성일시보호시설 '쉼터' 10주년 문화제(2010.10.9 희망교 아래 신천둔치)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쉼터는 1992년 임시 처소마련을 시작으로 봉덕동, 팔공산 등지로 자리를 옮기며 숙식을 제공했으나, 1995년 지원 부족으로 폐쇄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캠페인을 통한 기금마련과 대구시의 인가 및 정부지원을 받아 다시 운영을 시작, 올해로 개소 10주년을 맞았다.

아이까지 데리고 쉼터로...운영 어려워 한때 문 닫기도


이영주(40) 시설장
이영주(40) 시설장
이영주 시설장은 "여성의전화 상담 사례 중 가정폭력 피해가 상당히 많았다"며 "집에서 매 맞고 나와 오갈데 없는 여성들을 돕기 위해 여성의전화 회원들의 십시일반 모금을 통해 만들게 됐다"고 쉼터 개설 취지를 설명했다.

쉼터를 10년 동안 운영해 오면서 어려운 점도 많았다. 이 시설장은 "일단 운영비가 부족해 생활하는 이모들이 굉장히 힘들다"며 "10명 정원인 쉼터에 현재 13명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아이까지 함께 사시는 분들도 있다"며 "큰 방 두 개와 거실 한 개를 나눠 쓰고 있는데, 비좁은 공간으로 인해 이모들이 편히 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더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고 싶지만 여건상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심정을 밝혔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쉼터를 돕는 손길이 전해지기도 했다. 95년 쉼터 임시처소 폐쇄 이후 가수 패티김씨가 대구에서 자선공연을 열어 그 수익금을 쉼터에 기부했다. 이 시설장은 "그때 패티김씨가 전국 투어공연을 했는데, 이런 쉼터 단체들에게 수익금을 기부하겠다고 했다"며 "기부금으로 다시 쉼터를 시작했고, 이후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머리채 끌고 가기도...'가부장적 문화'

현재 대명동 일대에 위치한 쉼터의 정확한 위치는 입소자들의 안전을 위해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가족들이 찾아와 막무가내로 입소자들을 데리고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 시설장은 "장소를 어떻게 알아냈는지 가족들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며 "아내가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다가 입구에서 아내를 보고 머리채를 잡아끌고 가거나, 다짜고짜 차에 태워 막무가내로 데려가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보통 이런 경우엔 경찰의 도움을 받는다"며 "경찰 입회하에 아내와 남편을 서로 분리 한다"고 말했다.

이 시설장은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가부장적 문화'를 지적했다.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가정폭력이 일어난다"며 "아내와 자식은 남편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닌, 평등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갖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쉼터 10주년 기념 문화제 부스에 설치된 전시물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쉼터 10주년 기념 문화제 부스에 설치된 전시물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그동안 60여명의 가정폭력피해자들이 쉼터를 거쳐 갔다. 이들은 쉼터를 발판삼아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까? 대부분의 피해여성들이 쉼터를 나와 예전처럼 남편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정폭력, 아직까지 인식 낮아...캠페인 절실"

이 시설장은 "이점도 가부장 문화의 문제점"이라며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아직까지도 좋지 않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이혼을 꺼려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부분 남편들이 '미안하다'며 조금만 고개를 숙여도 다시 합치는 경우가 많다"며 "합쳐서 앞으로 잘 살면 좋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가정폭력으로 우리의 도움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쉼터 운영원칙상 1인 1회 쉼터 거주가 허용되기 때문에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올 수가 없다"며 "그럴 때마다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시설장은 지역사회에 바라는 점에 대해 "성폭력의 경우엔 정부에서 TV나 다른 매체를 통해 캠페인을 많이 벌이는데, 아직까지 가정폭력은 캠페인이나 홍보가 절실히 부족해 사람들의 인식이 낮은 편"이라며 "지역사회와 정부에서 이런 가부장적 문화의 문제점과 가정폭력에 대한 홍보를 대대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여성의전화 회원들의 수화공연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대구여성의전화 회원들의 수화공연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또 "쉼터에 장애인, 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우리에게 도움을 청한다"며 "그러나 가정폭력 피해자들은 심리적 안정을 취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모두 받아줄 수가 없어 그럴 때 마다 참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쉼터 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쉼터가 많이 개설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전했다.

이 시설장은 오늘 문화제 및 기념식에 대해 "개설 10주년 기념 뿐 만 아니라, 더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돕고자 쉼터확장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늘 문화제를 준비했다"며 "무대 뒤편 주막에서 음식을 팔아 그 수익금을 쉼터 확장에 쓸 예정이다"고 밝혔다.

쉼터명 공모전에 '이 다음에'라는 작품으로 당선된 황경희(경북대) 학생에게 상금 3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쉼터명 공모전에 '이 다음에'라는 작품으로 당선된 황경희(경북대) 학생에게 상금 3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 사진. 평화뉴스 박광일 인턴기자

한편, (사)대구여성의전화에서는 10월 14일(목) 오후 3시 대구시민센터에서 '솔개, 되어 날다!' 자료집 발간식과 '대구여성의전화 부설 쉼터 10년의 성과와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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