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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보도와 박정희 영웅만들기
땀 흘린 주민은 '주변' 신세 / '새마을' 단체 지원 / 박근혜 띄우기
2011년 10월 25일 (화) 11:22:31 평화뉴스 pnnews@pn.or.kr

지난 10월 14일․21일자 매일신문의 기획기사「경북의 혼-제6부 ‘하면 된다’ 정신」<1>새마을운동 (상), <2>새마을운동(하)는 농촌근대화운동, 잘살기 운동으로서의 새마을운동의 진정한 역사가 지역주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고삐 풀려 전개되는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 기사였다. 

'박정희 성역화' 잇단 보도

그 동안 매일신문은 ‘새마을’과 관련, 거의 집중적으로 부각해왔다. 지난 8월 이후 다룬 기사목록을 이 신문 검색창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1. 8. 25. 청도군,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완공 / 2011. 8. 25 박정희 전 대통령 청도 시찰 동상 공개 / 2011. 8. 27. 경북 청도 새마을운동 '성역화 사업' 준공


   
▲ <매일신문> 2011년 2월 15일자 2면(종합) / 8월 25일자 5면(사회)

매일신문의 이 기사는 지난 2월 15일 「박 전 대통령 전용열차 청도서 새단장 한창」제목으로 보도한 기사의 후속기사들이다. 기사 도입부는 다음과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방순시에 이용한 대통령 전용열차는 어떤 모습일까.
청도군이 2010년 5월 5억9천만원을 들여 발주, 11월 초에 청도읍 신도마을로 가져온 대통령 전용열차의 베일을 벗기고 현재 내부 공간 연출에 한창이다. 이 전용열차는 무게 약 40t, 차체 길이 24m, 너비 3.2m, 높이 3.8m이며 면적은 73㎡다. 주변에는 신거역과 도정공장, 광장 등을 조성하며, 광장 중앙에 박 전 대통령 동상을 세운다.


'박정희 열차'․'동상' 부각

매일신문의 위 기사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내용을 영남일보는 지난 8월 27일 경북판 머리로 사진을 곁들여 다뤘다. 영남일보의 기사 도입부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영남일보> 2011년 8월 27일자 8면(지역)

1969년 8월 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탄 대통령 전용열차가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에 있는 신기역에 멈췄다.
경북 및 경남지역의 수해현장을 시찰하기 위해 이동하던 박 대통령은 지붕 개량이 잘 돼 있고, 마을주변과 안길 등이 깔끔하게 정돈된 신도리를 인상 깊게 받아들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듬해 4월 열린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청도읍 신도리를 본보기로 들면서 우리나라의 모든 마을과 국토를 잘 가꾸라고 지시했다. 이것이 새마을운동이 태동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


이 기사에 의하면 새마을운동은 청도군 청도읍 신도리의 마을가꾸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영감을 얻어 지시한 것에서 시작됐다. 매일신문의 10월 14일자 「청도 신도마을 협동정신에 큰 감명…박 대통령 ‘농촌개발 구상’ 나와」 제목의 기사도 영남일보기사와 맥을 같이 한다. 기사 도입부를 보자.

   
▲ <매일신문> 2011년 10월 14일자 11면(특집)

◆신도마을에서 영감을 얻다
1969년 8월의 어느 날. 대통령 전용열차에 몸을 실은 박정희 대통령은 창밖으로 스쳐가는 농촌 풍경을 보면서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수해 복구 현장 시찰차 부산으로 가는 길. 박 대통령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늘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 농촌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박 대통령이 고개를 획 돌렸다. 그리곤 비서진에게 말했다. "님자, 기차 세워!" "예?" 비서들은 당황했다. "내가 뭐 좀 봐야겠어. 기차를 뒤쪽으로 후진시켜봐." 지엄하신 대통령의 분부로 기차가 몇 백m를 후진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기차가 멈춰선 곳은 경북 청도의 한 작은 마을이었다. 이름은 신도리. 경부선 철로변에 위치한 이 마을은 1960년대 당시 여느 농촌마을 풍경과 완연히 달랐다. 나무 없이 헐벗은 다른 마을과 달리 뒷산엔 수풀이 우거졌고 집들에 개량된 지붕이 얹혀 있었으며 마을 안길이 시원스레 닦인 모습이 대통령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 대통령의 질문을 받은 마을 사람은 이렇게 답했다.  "기왕에 수해로 쓰러진 마을을 복구할 바에야 이 기회에 좀 더 환경을 잘 가꿔서 깨끗하고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보자고 마을총회에서 결의했지요. 주민들이 서로 자진해서 협동해 이뤄놓은 결과입니다."
박 대통령에게 영감이 스쳐갔다. '그래 이거다!'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농민들 스스로 일어서도록 정부가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농촌개발 구상이 자리를 잡는다.
그 로부터 8개월 뒤인 1970년 4월 22일. 박 대통령은 전국 지방장관회의에서 청도 신도마을 사례를 소개하며 처음으로 새마을운동 구상을 피력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 5천 년 묵은 가난을 몰아내도록 그들의 의욕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먼저 농촌의 생활환경을 바꾸는 '새마을 가꾸기 사업'부터 벌여보도록 합시다.” 새마을운동이 역사적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주인공 박정희'…극적 재구성
 
영남일보 기사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듯한 매일신문의 이 기사는 새마을운동 구상의 창안자로서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부각한 것이 특징이다. 물론 독자들을 숙연한 분위기로 인도하기 위해  ‘대한민국’, ‘국난극복’ 등 거대담론을 동원했다. 그리고 분명히 새마을운동의 발상지는 협동 정신으로 새 마을을 만든 신도리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매일신문 10월 21일자 기사는 분위기는 14일자 기사와 사뭇 다르다. 기사 일부를 보자.

   
▲ <매일신문> 2011년 10월 21일자 11면(특집)

이날(1971년 9월 17일)은 우리나라 새마을운동 역사에 기념비적인 날로 기록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장관, 전국의 시장․군수를 대동하고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기계면 문성동을 현지 방문해 전국시장군수 비교행정회의를 주재한 것이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빈곤 퇴치 운동에 나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문성동에서 박 대통령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는 “전국의 시장․군수는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을 만들라”고 현장에서 지시하고 “자조․자립․협동정신이 곧 새마을 정신”이라고 규정한다. 새마을 운동의 본격적 출발 선언이 경북의 시골마을 문성동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번엔 문성동이 '발상지'

이 기사에서 보듯 청도읍 신도리는 간 데 없고 포항 문성동이 ‘새마을운동의 표상’이자 ‘발상지’가 된다. 신도리와 문성동이 상충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데 이미 두 지역 주민들 사이에는 어느 곳이 원조인지를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져 2009년 4월 법적 소송이 야기된 바 있다(이 소송은 대구지방법윈에서 각하되었다). 매일신문의 10월 14․21일자 기사에 「미디어창」이 주목하는 것은 주민들 스스로 시작한 ‘새마을운동’이 영웅 만들기에  동원되고 있는 점이고, 또 하나는 지역주의가 언론에 의해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있다는 의구심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신문의 10월 14․21일 연속 기획보도는 다음과 같이 기획의도를 밝혔다.

 새마을운동을 단순한 ‘잘 살기’ 운동으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다”는 신념과 “국민 모두 함께 잘 살아 후손에게 좋은 나라를 물려주자”는 철학을 담은 ‘공존상생의 가치’였다. 역사 이래 국난 극복에 앞장서온 경북은 새마을운동에서도 발상지이자 중흥지 역할을 했다.


편집기법, '살아 있는 박정희' 부각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구상’을 강조한 두 기사는 초대형 컬러 사진, 표, 어록, 당시 사진(자료)을 강조함으로써 과장성과 흥미를 유도하였다. 21일자에는 「 “전국 시장․군수는 포항 문성동과 같은 새마을 만들라” <박정희 대통령 1971년 현장 지시>」를 부각함으로써 마치 박 전 대통령이 현재 국민에게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 표현 기법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이라고 표현해 역사 속의 인물이 아니라 최대한 박정희의 현재성을 부각하려 한 점도 눈에 띈다. 과장 효과를 주게 마련인 초대형 컬러 사진에다 명령형 어법(<‘현장지시’>)을 사용함으로써 편집자는 당시 ‘박통’으로 불리며 무소불위의 제왕과 같은 (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권력을 휘두른 박정희에 대한 외경심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목은 그런 점에서 영웅 만들기를 넘어 영웅 숭배를 지향하고 있다.

새마을 발상지 '3파전'

그러면 ‘새마을’의 발상지는 신도리-문성동 뿐인가?
신도리-문성동이 ‘새마을’ 원조 갈등을 빚고 있던 2009년 당시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만화동 동서부락이 ‘새마을 운동 발상지’라는 입장이 제기됐다. 이 주장에 따르면 만화동의 ‘새마을’은 청도 신도리보다 10년이 앞선다(서울신문, 2009. 5. 6. 「부산 기장, 청도보다 10년 앞서」).

   
▲ <서울신문> 2009년 5월 6일자 23면(지역)

이렇게 되면 ‘새마을’ 발상지 논란은 더 한층 복잡해진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의 ‘원조-발상지’ 논란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한다. 그와 함께 ‘새마을운동 창시자 박정희’의 이미지도 퇴색될 수밖에 없다. 신도리(청도)-문성동(포항) 갈등을 부추긴 언론은 10월 14․21일자 기사를 통해 ‘할 수 있다’는 또 다른 메시지를 강조해 그 갈등을 비껴가려 했지만 애매했고 이번에는 ‘영웅만들기-영웅숭배’를 조장했다.

새마을 주민은 기사에선 '주변'

그러면 ‘새마을운동’의 진짜 발상지-주창자는?
이 점은 새마을운동을 특정 정치인에 고착시키는 보도태도를 떨어버리면 쉽게 눈에 보인다. 그리고 애매하기 짝이 없는 ‘새마을운동’ 원조 논쟁에 불을 붙이지 않는다면 두 지역에서  ‘발상지’(發祥地, 새마을운동을 처음 궁리한 곳-신도리), ‘발상지’(發祥地, 새마을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문성동)라고 하는 이상야릇한 주장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도리도, 문성동도, 만화동도, 그 주민들도 얼마든지 ‘새마을운동’의 발상지, 주창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매일신문의 14․21일자 기사를 보면 신도리․문성동 주민들이 오랜 기간 자조․협동 운동을 벌였던 과정은 구체적으로 전하지 않은 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빈곤 퇴치 운동에 나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신도리/문성동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점만 부각했다. 매일신문의 기획의도 ‘할 수 있다’는 오히려 주민들의 자조 협동 의지의 실천을 다룰 때 훨씬 더 살아났을  것이다. 그 결과 이 보도에서 지도자 박정희는 부각되었지만 정작 자조 협동 운동으로 ‘새마을운동’에 앞서 새마을을 일군 새마을 주역-주민들은 ‘주변’(엑스트라)으로 밀려났다. 

총선 앞둔 시점 집중 보도

또 한 가지는 위의 두 기사가 보도되고 있는 시점이다.
언론은 이미 MB의 레임덕에 대해 다뤄오고 있고, 한나라당 내에서는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시되는 그림자 권력(박근혜 의원)이 살아 있는 권력(MB)을 압도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대구의 신문․방송은 대구 중구의회를 비롯한 지방의회가 새마을 단체에 일반 시민단체는 물론 여타 관변단체와도 비교가 안 될 만큼 특혜에 가까운 대규모 재정 지원을 하고 있거나 그런 지원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도한 바 있다(「미디어창」, 10월 11일자). 새마을 단체에 대한 이 같은 특혜적 지원에 대해 영남일보․대구MBC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정치적 의도성, 또는 「정치적 특혜 의혹」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 바 있다.

언론, 박근혜 띄우기 잇따라


위 두 기사가 보도되는 동안 영남일보는 박근혜 띄우기를 이어갔고(10월 14일 4면 머리기사, 「‘선거의 여왕’ 박근혜, 첫날부터 7시간 강행군」; 10월 15일 1면 머리기사, 「‘선거의 여왕’ 대구․칠곡 올까」; 10월 21일 5면 뉴스&이슈「전국유세 박근혜, ‘텃밭’<대구 서구․칠곡> 안오는 이유는?」), 매일신문도 뒤지지 않았다(10월 20일 10.26재보선, 동분서주 박근혜 ‘심상찮은 대구경북’ 구원등판 저울질」) .

   
▲ (위로부터) <영남일보> 2011년 10월 14일자 4면(종합), 10월 21일자 5면(종합) / <매일신문> 10월 20일자 3면(정치)

정치 상황 맞물린 '기획의도' 의심

대구의 기초․광역의회가 노골적으로 새마을 단체에 대규모 지원을 해 정치적 특혜 의혹이 일고 있는 것을 영남일보․대구MBC가 보도를 통해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새마을 특혜 지원’을 직접적으로 언급(보도)하지 않았던 매일신문은 ‘자발적으로 빈곤 퇴치 운동에 나서 놀라운 성공을 거둔 문성동에서 박 대통령은 깊은 감명을 받’은 사실만 부각한 것이다. 당연히 매일신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록, 사진, 새마을운동창시자, 심지어 ‘박정희 열차’ 까지 대서특필했다. 이것을 ‘오비이락’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매일신문의 보도태도는 현재 정치상황을 고려한 ‘기획 보도’가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 <영남일보> 2011년 10월 5일자 2면(종합)

새마을 주역에 초점 맞춰야

새마을운동 기사가 경상북도 주민들의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북돋우려면 먼저 자조․협동 공동체를 자발적으로 추진해온 주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생명력을 가지려면 정치적 상황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그 일을 언론이 맡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언론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나?

※학계에서는 1970년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이 시작되기 전 경기도 평택군 칠원마을에서 자발적 새마을운동이 이미 활발하게 전개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칠원마을에서는 칠원리소년단을 중심으로 외부 인사의 지도를 받아 1948년부터 생활환경 개선, 정신 계몽 등이 시작됐고 이 소년단이 성장하여 마을주체가 되면서 1950〜60년대에 자조-협동하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자발적 새마을운동을 전개했다. 자발적인 새마을운동의 주창자는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자조-협동 속에서 번영하는 마을공동체를 일군 주민들이었으며, 이 주민들의 새마을이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을 만든 것이다(김영미, 「평택 칠원마을이 최우수 새마을이 된 사연」, 『역사와 현실』, 74호). 

   





[평화뉴스 - 미디어 창 157]
여은경 / 대구경북민주언론시민협의회 사무처장. 전 대구일보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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