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을 넘어 분노로…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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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 『도가니』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


‘도가니’는 2011년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국회는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 처벌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시민사회는 각종 대책위윈회를 꾸려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매체들은 ‘도가니’라는 단어를 마치 유행어처럼 사용하고 있고, 경찰은 6년 전 광주광역시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일어난 실제사건을 다시 수사하겠다고 나섰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는 도가니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기사 속 한 구절에 이끌려 작가 공지영은 소설로 펴냈고, 소설은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2009년 삐뚤삐뚤한 글씨로 제목이 적힌 소설 ‘도가니’는 다 읽는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책이다. 그래서 그 뒤로 다시는 펴보지 않았고, 2년 뒤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도 한참을 극장을 찾지 않았었다. 간판이 내려지기 직전 호기심을 못 이겨 영화를 봤는데, 결국 그랬다. 불편했다.
 
『도가니』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
『도가니』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
 다시 책을 펴 들었다. 스크린을 통해 구체적인 영상으로 다시 표현돼서 그런지, 이후 뉴스를 통해 실제사건이 재조명돼서 그런지 소설은 처음보다 더한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사업에 실패한 주인공 강인호는 생활력 강한 아내의 주선으로 장애인학교 ‘자애학원’에 5000만원을 주고 교사로 채용된다. 그렇게 안개 짙은 도시 ‘무진’에 도착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출근 첫날부터 마주치는 이상한(?) 아이들, 연이은 학생들의 석연찮은 죽음, 그리고 경찰의 유야무야되는 수사… 강인호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슴 속에 숨어있는 정의감을 일깨운다. 결국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수년 동안 재단이사장과 행정실장, 교사 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밝혀내고, 강인호는 자신도 모르게 태풍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그리고는 돈과 권력, 그들의 견고한 카르텔에 맞서 치열하고 처절한 투쟁을 벌이는 투사로 변해간다.

 진실은 밝혀지고, 죄 지은 사람은 죗값을 치르고, 피해를 입은 사회의 약자들은 웃음을 찾아가고… 그렇게 바뀔 것 같던 세상은 결국 조금씩,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 속에서 강인도 역시 만신창이가 돼 현실의 자기 자리로 되돌아가 간다.

 참 많이 닮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처럼 소설 속에는 수없이 많은 ‘불편한 진실’들이 담겨 있었다. 자라는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가 시험도 없이 돈을 주고 교편을 잡고, 겉으로는 장애학생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펼친다며 도덕적인 체 하면서, 재단이사장과 행정실장 등 요직을 맡은 형제는 학교를 마음대로 주무른다. 장애학생들을 성폭행했는데도 경찰은 평소의 친분으로 뒷돈을 받고 가진 자의 편을 들고, 성폭행한 장본인들은 오히려 장애학생들이 무고를 한다며 발뺌한다. 갓 개업한 변호사는 첫 재판에서 반드시 승소하게끔 하는 전관예우 관행을 이용해 유리한 재판을 이어가고, 교육청 장학관은 문제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책임을 시청으로 미루기만 한다.

 특히 소설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을 때, 획기적인 발상으로 불편함을 ‘분노’로 바꾼다. 갑자기 어깨가 축 늘어질 만큼 충격적이었다. 재단이사장 형제의 성폭행 혐의를 확인하는 재판 도중 갑자기 장애학생들을 돕고 있는 교사 강인호의 과거를 끄집어낸다. 자신도 모르게 가입했던 전교조 가입 여부를 물어 거짓말쟁이를 만들고, 잠시 계약직 교사로 근무할 때 만났던 제자와의 관계를 부적절하게 몰아 마치 성폭행범처럼 만들어 버린다. 장애학생들을 위해 소송을 함께 준비했던 대학후배이자, 인권운동가인 서유진과의 불륜 의혹도 제기한다.

 이처럼 소설은 끝도 없이 불편한 상황들을 늘어놓는다. 위선적이고, 비도덕적이고, 치졸하고, 부패한 상황들을 펼쳐 보인다. ‘참 극적으로 잘 꾸몄다’ 싶으면서도 답답함과 불편함이, 그리고 분노가 가시지 않는 것은 아마 소설 속 상황들이 너무도 현실과 닮아있기 때문일 거다. 또 우리 대부분이 강인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프랑스의 전직 레지스탕스 투사였던 스테판 에셀은 그의 저서 ‘분노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버리고, 정의롭지 못한 일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93세의 지은이는 ‘분노’야말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소설 도가니도 “사회현상에 분노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소설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묘사해버렸다. 그래서 두려움과 공포도 함께 던져 버렸다. 사회적 정의를 위해 분노해서 돌아오는 처참한 결과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누워라’ 등의 말로 비겁한 선택을 강요받는 현실까지 그렸다.

 소설 속 장 경사는 서유진에게 이렇게 말한다. 뒷돈을 받아 챙기며 요리조리 상황을 찾아가는 경찰관이 제 모든 것을 던지고 있는 인권운동가에게 전해주는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직도 정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쩌면 그들은 더 많은 재물은 가끔 포기할 수 있어요.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거예요. 한번만 눈감아 주면 다들 행복한데, 한 두 명만 양보하면 – 그들은 이걸 양보라고 부르죠 – 세상이 다 조용한데,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들을 흔들고 있어요.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변화를 하자고 덤빈단 말이지요.”

 우리는 안개 자욱한 ‘무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매일같이 마주치며 살아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그저 당하고만 있는 장애학생들, 자신이 저지르고도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 진실을 뒤바꾸는 재단이사장 형제, 뜨거운 가슴으로 부딪혔다가 결국 쓰러지고 마는 강인호, 이쪽저쪽 손해 보지 않는 길을 찾아가는 장 경사…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서유진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책 속의 길] 44
최재훈 /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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