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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도국에서 보는 '반값등록금'
[김윤상 칼럼] "특권이익의 환수, 학비 대출과 조건부 상환"
2012년 03월 04일 (일) 13:21:44 평화뉴스 pnnews@pn.or.kr

안녕하십니까? 저는 활빈당 홍길동 할아버지가 세우신 율도국의 국민입니다. 조선, 아니 한국은 율도국의 뿌리이기 때문에 제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나라입니다. 한국에서는 작년에 ‘반값등록금’이 무상급식과 함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지요? 서울시립대를 제외하면 등록금을 제대로 내린 대학이 없는 채 신학기를 맞아 실망이 크다는 소식도 듣고 있습니다.

교육 비용은 개인과 사회가 분담

아시다시피, 교육은 지혜와 도덕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지식’을 전수하는 과정입니다. 대를 거듭해도 같은 생활을 하는 동물과 달리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켜 온 것은 교육을 통해 선조의 지식을 물려받기 때문입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더 높이 매달린 과일을 딴다는 것입니다.

교육은 학생에게도 좋고 사회에도 좋습니다. 학생은 교육을 통해 인격을 높이고 더 유리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어 좋습니다. (요즘 한국 교육이 인격 향상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일단 접어두기로 합니다.) 동시에 사회 구성원의 지식이 많아지면 그것이 ‘외부효과’로 작용하여 사회도 덕을 봅니다.

이런 양 면이 있기 때문에 교육 비용의 일부는 사회가 분담하는 것이 옳습니다. (또 좋은 뜻을 품고 설립한 사립학교라면 당연히 재단도 부담해야 합니다.) 율도국에서는 평생교육을 지향하면서 고등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비용을 전액 사회가 부담합니다. 그러나 대학은 한국처럼 아직 의무교육이 아닙니다.

지식과 토지

좀 엉뚱하지만, 지식과 토지의 비교부터 해보려고 합니다. 지식과 토지는 필수품이고 (대부분의) 지식은 토지처럼 현재 살고 있는 우리가 생산한 것이 아닌 공동자산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누군가 토지를 차지하면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토지가 줄어들지만 지식은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식이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아도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은 제한되어 있듯이 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기회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국민에게만 기회를 부여한다면 특권이 발생합니다. 누군가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에서 배제된 또래에 비해 특권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지요. 공정한 입시 경쟁을 통해 대학생을 선발한다고 해도 대학 입학이 특권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경쟁에 의해 토지를 취득하더라도 토지소유가 특권인 것과 같습니다.

특권은 아예 허용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어떤 사정이 있어서 특권을 설정한다면 특권자가 그 이익으로 다른 사람에게 보상을 하도록 해야 공정합니다. 특권자 개개인이 모든 다른 사람에게 일일이 보상을 하기는 어려우니까 능률을 위해서 정부가 나서는 게 좋겠지요.

렌트는 최적의 정부 재원

특권 이익을 학술적으로 ‘렌트’(rent)라고 합니다. 토지의 지대(land rent)에서 유추하여 만든 용어라고 합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토지든 교육이든 정부가 렌트를 징수하여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주거나 모두를 위해 공동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또 렌트를 모두 징수하더라도 효율 면에서 아무런 해가 없을 뿐 아니라 징수하지 않으면 오히려 자원이 낭비된다는 사실은 교과서에 나오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율도국에서는 모든 종류의 렌트를 징수하여 최우선적인 정부 수입으로 삼고 있습니다.

‘교육 렌트를 징수한다고? 대학 등록금을 더 올리자는 말인가?’ 하고 의문을 품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건 아닙니다. 한국의 대학 등록금은 지금도 너무 비쌉니다. 한국 정부나 대학 당국은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변명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망국병인 학벌주의를 미끼로 등록금을 가파르게 올려온 것이 사실 아닙니까?

학생과 사회가 대학교육 비용을 분담하려면 공정한 원칙이 필요합니다. 혹 참고가 되실까 하여 율도국 사정을 소개합니다.

교육 렌트 환수가 1순위

첫째로, 당연히 교육 렌트를 환수합니다. 환수액은 교육 특권을 해소하는 데 우선 배정합니다. 학교 간 격차를 해소하고 양질의 교육 기회를 많이 만들며, 실력보다 간판을 중시하는 학벌주의를 뿌리 뽑는 데 쓴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책이 완전히 성공하면 교육 특권이 사라지고 교육 렌트는 0이 됩니다. 실제로 율도국의 교육 렌트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교육 렌트의 크기는 ‘기부금 입학제’를 실시하면 저절로 드러납니다. 지원자는 그 대학 입학을 통해 다른 사람보다 더 유리해지는 정도만큼 기부금을 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툭하면 기부금 입학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데 정의로운 사회라면 이런 제도를 도입해서는 안 되겠지요. 경제력에 의해 교육 기회를 차별하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 교육 렌트를 사회가 아닌 특정 대학이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원론적으로는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렌트를 예외 없이 환수해야 하지만, 율도국에서는 졸업 후 소득이 일정액을 넘는 사람에게서만 교육 렌트를 환수합니다. 대학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경제력 이외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서까지 렌트를 징수한다면 인생 선택의 자유를 제약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과 인연 없는 대다수 예술가나 성직자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그런 삶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학비 대출과 조건부 상환

둘째로, 대학교육 비용은 국민의 합의를 통해 학생과 사회의 분담 비율을 정합니다. 한국에서는 대학 등록금이 낮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분도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의무교육이 아닌 대학교육에 사회가 너무 많이 지원하면 대학생의 특권을 강화하고 대학교육에서 배제된 사람을 차별하게 됩니다. 율도국에서는 대학교육의 외부효과에 상응하는 금액만 사회가 지원합니다.

셋째로, 학생이 부담할 금액이 정해지면 학생이 원하는 만큼 학비를 대출해 줍니다. 어떤 경우에도 학비 때문에 교육에서 배제되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출 재원으로는 교육 렌트 수입과 아래에서 설명하는 대출 상환액을 우선 활용합니다.

넷째로, 대출 받은 학비는 물론 상환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 렌트의 경우처럼 인생 선택권을 존중하여, 소득이 일정한 기준을 초과할 경우에만 상환하도록 합니다. 현재 교육 렌트는 상위 30% 소득자에게서, 대출액은 중위소득 이상의 소득자에게서 환수하고 있습니다. 이 기준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교육 렌트 환수액과 대출 상환액의 크기 그리고 국가의 재정 상태에 맞추어 정합니다.

율도국의 사회제도가 유일한 정답이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원칙에 충실하기만 하면 율도국과 거의 같은 결론에 이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대학 당국은 모처럼 ‘반값등록금’이라는 이름으로 대두된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저희가 자녀들에게 한국을 자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는 뿌리가 같잖아요.

   





[김윤상 칼럼 44]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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