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전선 이상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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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칼럼] "이명박 정부의 횡포에 맞선 경북대 교수회"


 경북대학교 교수회는 2012년 6월 13, 14 양일간 투표를 실시했다. 총장 직선제를 존치할 것인가, 폐지할 것인가 하는 투표였다. 그 결과 유권자 1,111명 가운데 82%가 투표를 했고, 유효 투표 중 “총장직선제 존치・개선”이 58%(515표)의 지지를 얻어 통과됐다.

  대학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수들이 연구나 열심히 하지 왜 이런 투표를 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교과부는 줄기차게 대학 자율을 파괴해왔다. 그 결과 오랜 세월 지켜왔던 대학 질서가 무너지고, 대학의 생명인 자율이 위협받고 있다. 교수들은 점수 경쟁에 휘말려 논문 쓰는 불쌍한 기계로 전락하고 있다. 논문 편수에 따라 점수를 매겨 점수가 낮으면 월급이 깍이고 심한 경우에는 대학에서 쫓겨난다. 그러니 교수들은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끊고 오로지 논문 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런데 논문은 심한 경우 심사자 2명과 필자 본인 말고는 아무도 안 읽는 경우도 있다. 이런 논문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교수들은 만사 제쳐놓고 점수를 따야 하니 단기실적주의에 빠져 장시간을 요하는 좋은 책은 쓰기 어렵다. 요즘 대학에서는 ‘논문 쓰느라 연구할 시간이 없다’, 혹은 ‘논문 쓰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희한한,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횡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단과대학 학장을 교수들이 뽑는 선거를 불법화했다. 총장은 학장을 임명할 때 교수들의 선거 혹은 추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해괴한 규정이 이명박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나. 단과대학 사정을 제일 잘 아는 것은 교수들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교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학장을 임명해야 한다는 뜻이고, 만일 교수들의 의사를 반영해서 학장을 선임하면 무효라는 것이다. 세상에 온갖 이상한 법, 규정이 있지만 세계 몰상식 법/규정 대회에 나가면 단연 금메달 감이다.

  왜 이런 규정을 만들었을까? 교수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총장 마음대로 학장을 선임하도록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다. 이것은 명백히 민주주의의 후퇴다. 그런데도 이런 규정을 만든 사람들은 이렇게 정당화한다. 작은 단과대학에서 학장 직선을 하면 파벌이 생기고, 향응을 베푸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상당히 맞는 말이다. 그런 폐단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몰상식한 규정을 만들어 교수들의 의사를 제한해버리면 그 결과는 좋아질까? 천만에요. 벌써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도저히 선거를 통해서는 학장이 될 가망이 없는 평균 이하의 교수가 총장과의 친분을 무기로 버젓이 학장이 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말하자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격이고, 길 닦아 놓으니 뭐가 먼저 지나간다는 격이다. 이렇게 되면 교수들이 총장에게 잘 보이고 줄서려는 폐단이 나타난다. 학장 직선은 상당한 폐단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총장 임명보다는 나은 점이 있다.

  교과부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려 하고 있다. 직선제를 폐지하지 않는 국립대학은 무시무시한 구조조정 대상에 올라가고, 예산 삭감이 되는 큰 불이익을 당한다. 교과부의 회유, 협박으로 이미 여러 군데 국립대학이 직선제를 폐지하겠다는 항복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직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국립대학은 경북대, 부산대, 전북대, 전남대, 목포대 밖에 없다. 낙동강/금강 이남의 5개 대학이 끝까지 대학의 자존심을 지키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이들 대학은 전혀 불합리한 이유로 예산을 삭감당하는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도 굽히지 않고 싸우고 있다.

  그렇다고 현행 총장 직선제가 완벽하거나 이상적인 제도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위에서 말한 학장 직선제처럼 파벌 싸움, 향응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 정말 훌륭한 사람들은 총장 되기가 밧줄이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고, 그 대신 열심히 문상 다니고, 결혼식 축하 다니는 사람이 총장 되기 쉬운 구조다. 총장 직선제는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직선제 대신 교과부가 원하듯 위에서 임명하는 방식을 취하면 엉뚱한 어용 총장들이 설치고 다닐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니 그 부작용은 지금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래서 교수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직선제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경북대학교 교수회장 손창현 교수(기계공학부)는 “이번 투표 결과는 교과부의 강압적인 총장직선제 폐지 움직임에 대해 경북대학교 교수들이 당당하게 맞선 결과”라고 말했다. 경북대학교 교수 투표는 동병상련의 전국 국립대학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년밖에 남지 않은 정권이 무리하게 권력을 남용하고 있는 데 대해 용감하게 맞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경북대 교수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번 결과가 다른 국립대학 구성원들에게도 작은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보수의 아성이라 지탄받는 대구에서 오랜 만에 들려온 낭보를 보면서 한때 지사의 고장이었던 우리 대구가 그래도 죽지 않았구나 하는 자부심을 느낀다.






[이정우 칼럼 5]
이정우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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