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할머니들의 외로운 '송전탑' 싸움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2.07.10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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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용역과 대치, 욕설에 폭력 / "산도 논도 망쳐놓고...공사 중단" / 한전 "계속"


(왼쪽) 삼평1리 입구 돌담 옆 비석, (오른쪽)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모여 있는 마을...마을 농경지 주변으로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가게 된다(2012.7.9)
(왼쪽) 삼평1리 입구 돌담 옆 비석, (오른쪽) 도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 모여 있는 마을...마을 농경지 주변으로 고압 송전선로가 지나가게 된다(2012.7.9)

경북 청도군 각북면 삼평1리. 마을 뒤로는 비슬산, 수봉산, 홍두깨산이 있고 앞으로는 청도천과 풍각천이 흐르는 평범한 산골이다. 모두 45가구가 살고 있고 대다수는 60대 이상 이다. 이들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모여 살고 있고 논농사, 밭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소박한 삶을 살아 왔다.

그러나, 한참 농번기를 맞아 손이 바빠야 할 7월 9일 주민들은 농사일을 뒷전에 두고 새벽5시부터 토사를 드러낸 마을 뒷산에 올라 농성을 벌였다. 지난 3일부터 한국전력공사가 주민 동의 없이 뒷산에 고압송전탑 공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삼평1리 23호기 송전탑 예정지 공사장에서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삼평1리 할머니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삼평1리 23호기 송전탑 예정지 공사장에서 새벽부터 오후 2시까지 농성을 벌이고 있는 삼평1리 할머니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경남 밀양 고압송전탑 공사를 두고 한전과 주민들이 수개월째 마찰을 빚고 있는 가운데, 한전은 지난 7월 3일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1리에서도 고압송전탑 공사를 강행해 10일 현재까지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시행사인 한전과 시공사 동부건설은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벌목과 기초공사를 벌이고 있으며, 공사 현장에 용역 50여명까지 동원해 주민, 기자, 환경운동가의 출입을 막고 있다. 이들 용역은 욕설과 무력을 사용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지난 4일에는 주민 이차연(75)씨가 용역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내려오다 실신해 단기 기억상실증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고, 지난 3일에는 23호기 송전탑 공사를 위해 길을 닦던 포크레인이 모가 심겨진 주민 곽권승씨의 논을 그대로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10일 현재는 주민과 용역들이 새벽 6시부터 23호기 송전탑 예정지 입구에서 대치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청도경찰서는 여경 5명을 현장에 투입해 주민들의 공사장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 또, 한전은 오전부터 헬기를 이용해 공사장비와 자재를 운송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와 동부건설이 동원한 용역들...주민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전력공사와 동부건설이 동원한 용역들...주민들의 출입을 저지하고 있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개발지사는 지난 2006년 1월 사업계획서를 통해 경남과 경북지역에 각각 765kV, 345kV의 전압을 송전하는 16km 선로 연결 공사를 발표했다. 이는 부산 신고리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주변 대도시로 송전하는 철탑 공사로 한전은 '영남 지역의 중.장기 전력수요 공급'을 사업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전은 모두 40개의 철탑을 건설할 계획이며, 각북면에는 삼평1리에 22-24호기, 덕촌리에 25호기, 이 밖에도 우산리와 지슬리까지 모두 18개의 철탑을 설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전은 지난 2006년 사업계획서를 발표하며 삼평1리 주민 10여명만을 대상으로 의견수렴을 거쳤다. 이에 따라, 대다수 주민들은 3년이 지난 2009년쯤 이 사업을 알게 됐다. 게다가, 당시 주민설명회를 알려야할 의무가 있었던 마을 이장과 면장, 면.읍사무소와 군청 담당자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곽태희 전 이장은 주민의견서까지 위조해 한전에 제출했다. 이 때문에, 주민 58명은 지난 2011년 곽 전 이장을 포함한 7명을 집단 고소했다. 그러나, 대구지방법원은 "이들의 죄를 인정하나 고의성이 없다"며 7명 모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또, 지난 2010년 11월 한전 측은 주민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24호기 철탑 건립 부지를 변경했고, 그 결과 고압 송전선로는 주민들의 가정집과 농경지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게 됐다. 이후, 삼평1리 마을주민 전체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함께 싸웠다. 하지만, 싸움이 길어지자 "반대" 목소리는 잦아들었고, 현재는 주민 20여명만 외로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눈물을 흘리는 정두세(90) 할머니(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눈물을 흘리는 정두세(90) 할머니(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들은 ▷공사 중단, ▷협상테이블 마련, ▷24호기 부지 이전을 한전 측에 촉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마을 전체를 이주 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할머니 10여명은 일주일째 "공사 중단"을 촉구하며 산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계속된 용역과의 싸움에 지친 듯 9일 기자들을 보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을 보였다.

지난 4일 용역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내려오다 실신해 단기 기억상실증으로 입원했던 이차연 할머니는 9일 오전 퇴원했다. 이 할머니는 "그날 일이 기억에 나지 않는다. 일어나니 병원이었다. 용역들이 팔다리를 잡고 끄집고 내려오던 것만 기억난다"며 "어디 한번 해봐라, 나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겠다는 심정으로 버텼던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이런 일이 우리 마을에 일어날 줄 꿈에도 몰랐다"며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고 했고, "우리가 당하고 있을 때 경찰, 군수는 우리 편이 아니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20살 때 시집와 70년 동안 삼평1리에서 살아온 정두세(90) 할머니는 "와 밀양만 찾아가노 여기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왜 이제 오노"라며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고 하소연했다. 정 할머니는 "용역과 산에서 실랑이 하다 보면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은 물론이고 어떨 때는 어깨를 잡고 밀치기도 한다"며 "죽을 까봐 겁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살아도 여기서 살고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싸우고 있다"고 했다. 

(왼쪽부터) 삼평1리 주민 이차연(75) 할머니, 정두세(90) 할머니, 김춘화(62) 할머니, 부녀회장 이언주(45)씨(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 삼평1리 주민 이차연(75) 할머니, 정두세(90) 할머니, 김춘화(62) 할머니, 부녀회장 이언주(45)씨(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김춘화(62) 할머니는 지난 2일 공사가 시작됐을 때 소식을 듣고 바로 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용역들이 가져온 방패에 둘러싸여 산 입구에 출입조차하지 못했고, 오히려 용역들이 휘두른 방패와 팔다리에 맞아 온 몸에 멍이 들었다. 김 할머니는 "내 몸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다. 그 보다 앞으로 여기서 못 살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잠도 못잔다"고 했고, "산도 논도 마음대로 망쳐놓고 돈으로 보상만하면 다 되는 줄 아는 못된 사람들에게 우리 힘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2007년 삼평1리로 귀농해 부녀회장을 맡은 이언주(45)씨는 "우리 할매들도 나도 돈은 다 필요 없다. 다만 이 동네에서 살수만 있게 해 달라"고 호소했다. 또, "탑이 들어서면 땅값 떨어지고 건강 나빠지는 건 둘째 문제"라며 "왜 주민을 속이고 일방적 통보만 하고 공사를 강행하느냐. 이게 민주주의냐"고 한전을 비판했다. 삼평1리 빈기수(49) 반장은 "이제 논이고 밭이고 다 버려야 한다. 다른 이들이 들어와 살고 싶어도 살 수도 없다"며 한 숨을 쉬었고, "한전은 협상을 끝낸 뒤 공사를 해야 한다"며 "당장 공사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23호기 송전탑 공사를 위해 길을 닦던 포크레인이 논을 그대로 밟고 지나가 모가 심겨진 논길 한 가운데에 흙길이 생겼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지난 3일 23호기 송전탑 공사를 위해 길을 닦던 포크레인이 논을 그대로 밟고 지나가 모가 심겨진 논길 한 가운데에 흙길이 생겼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에 대해, 황성하 한국전력공사 대구경북개발지사 차장은 "2009년부터 협상을 했지만 입장이 좁혀지지 않았고, 때문에 사업이 너무 지연돼 진전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했고, "할머니들이 사업구역에 올라오지만 않으면 용역들과 불미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그분들 요구를 들어주면 지자체, 정부 등 여러 기관 허가를 다시 얻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그 분들이 요구하는 것은 지금 들어줄 수 없다. 하지만 마을 대표단을 구성해 우리와 협상을 하게 되면 지역발전 공동기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앞서, 지난 6월 초 한전은 주민과 협상을 진행하던 중 25기 철탑 1개를 덕촌리에 설립했다. 이어, 지난 7월 2일부터는 삼평1리에 22호기 설립 예정지 기초공사를 마무리했고, 3일부터는 23-24호기 설립 예정지 벌목 작업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삼평1리에 들어설 22-24호기 송전탑 예정 부지...22호기는 기초공사가 끝나 천막으로 덮어놓은 상태고 23-24호기는 벌목공사 중이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왼쪽부터) 삼평1리에 들어설 22-24호기 송전탑 예정 부지...22호기는 기초공사가 끝나 천막으로 덮어놓은 상태고 23-24호기는 벌목공사 중이다(2012.7.9)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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