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개 뿐인 박근혜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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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 칼럼] "5.16 정당화, 박근혜 후보에겐 역사 인식이 없다"


  퀴즈 하나, 박근혜 후보의 거울은 몇 개일까요? 사는 집이 구중심처라 가본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니 알 수가 없지요. 그런데 저는 압니다. 가봤느냐고요? 물론 안 가봤지요. 그래도 저는 압니다. 박근혜의 거울은 한 개 뿐입니다. 그걸 증명해 볼까요.

  8.15가 내일 모레인데 독도가 연일 뉴스거리다.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 방문, 올림픽에서 박종우 선수의 ‘독도는 우리 땅’ 사건, 게다가 큰 폭탄이 하나 터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도 폭파 발언’. 이 발언의 진위를 둘러싸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측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이 벌인 공방에서 문 후보 측이 판정승했다고 8월 12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문 후보는 8월 2일 안동 독립운동기념관에서 ‘대일 5대 역사현안에 대한 문재인의 구상’을 발표하면서 박 대통령의 독도 폭파 발언을 비판했다.

  이에 박근혜 후보 측에서는 “외교문서에 따르면 이 발언은 일본 측에서 한 것으로 돼 있다”며 “문 후보는 명백한 허위사실 유포와 거짓말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문 후보 측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는 국무부 기밀대화 비망록을 내놓았다. 이 비망록에는 미국을 방문한 박 대통령이 한일수교 한 달 전인 1965년 5월27일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 집무실에서 “수교 협상에서 비록 작은 것이지만 성가신 문제 가운데 하나가 독도 문제다...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도를 폭파시켜 없애버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적혀 있다. 이로써 독도 폭파 발언의 진위는 명백히 가려진 셈이다. 

  한 달 전인 7월 16일 박근혜후보는 한 토론회에서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며 ‘5.16이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 초석을 만들었다’고 발언했다. '5.16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란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트위트에서 비판한 문재인 후보에 대해 '정치권에서 국민의 삶을 챙길 일도 많은데 계속 역사논쟁을 하느냐?...저는 그런 생각과 역사관을 갖고 있고, 그렇지 않은 의견도 있다 이거죠...저뿐 아니라 저같이 생각하는 국민도 많이 계시고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그럼 그렇게 생각하는 모든 국민이 아주 잘못된 사람들이냐, 정치인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말을 막는 화법이다.

  5.16을 불가피한 최선이라고 보는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은 식민지도 좋고 독재도 좋다고 보는 뉴라이트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일제 강점이나 유신도 불가피한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박근혜 후보는 얼마 전 출마선언문에서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물어보자. 도대체 쿠데타를 합리화하고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자체가 없는 후보가 어찌 경제민주화를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경제민주화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

  5.16은 불가피하지도 않았고, 최선도 아니었다. 박정희는 4.19 이후에도 계속 쿠데타 기회를 노렸다. 4.19혁명 1주년이 되는 날 학생 시위가 대규모로 일어나면 그걸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키려는 계획을 잡고 있었는데 조용히 지나가는 바람에 날짜를 연기해서 쿠데타를 일으킨 날이 5.16이었다. 그는 5.16 새벽에 공격 명령도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일본말로 말했다. 4.19 직후 한때는 데모, 파업이 빈발해서 사회가 혼란스럽기도 했으나 해를 넘기면서 점차 안정을 찾고 있었으니 쿠데타의 명분은 전혀 없었다. 오랜 이승만 독재를 무너뜨리고 모처럼 사람들이 내일의 희망을 갖고 우리 사회에 새싹이 돋는 초기에 신생정권을 군홧발로 짓밟았으니 ‘불가피’란 전혀 말이 안 된다. 오로지 권력욕이 있었을 뿐이다.

  5.16은 최선은커녕 명백한 역사의 후퇴였다. 그 뒤 인권, 민주주의, 남북관계, 노동문제, 환경, 분배 등에서 얼마나 퇴행적인 일이 벌어졌는가. 박근혜 후보는 그 뒤의 경제성장을 놓고 최선이었다고 하는 모양인데, 경제성장만 해도 그렇다. 박정희는 지나치게 단기 실적주의에 집착해서 무리하게 전국을 개발해서 땅값을 폭등시켰고, 무리하게 돈을 찍어내서 물가를 엄청나게 올렸다. 지금 한국이 세계 최고의 땅값, 세계 최고수준에 가까운 물가를 갖게 된 것은 박정희에게 절반의 책임이 있다. 민주정권이 좀 더 순리대로 나라를 운영했더라면 한국은 지금쯤 훨씬 좋은 나라가 돼 있을 것이다.

  최근 진행중인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다른 후보들이 5.16이 쿠데타라는 데 동의하느냐고 묻자 박근혜 후보는 "아니오. 그것은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는 "쿠데타로 부르든, 혁명으로 부르든 그 일이 있었다는 걸 부인할 수는 없다"며 과거사를 들먹이는 상대 후보를 가리켜 ‘참 과거에서 사시네요’라고 조롱하듯 말했다.

  한 달 동안의 일련의 사건은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을 잘 보여준다. 첫째, 자기 아버지가 한 일에 대해서조차 잘 모르면서 무조건적, 맹목적 추종 자세를 갖고 있다. 둘째, 5.16은 삼척동자한테 물어봐도 군사쿠데타인데도 기를 쓰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역사의 평가, 국민의 평가를 들먹인다. 셋째, 역사 경시의 경향이다. ‘과거에 사시네요’라는 조롱조의 말이나, '정치권에서 국민의 삶을 챙길 일도 많은데 계속 역사논쟁을 하느냐?'는 말은 박 후보가 얼마나 역사를 경시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는 얕고 위험하다.

  박근혜 후보 같이 생각하는 국민이 상당히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것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근현대사 교육을 게을리하고 기피해온 한국에서나 있을법한 기막힌 비극이지 결코 정당화할 사실이 아니다. 역사는 중요하다. 민생이나 경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역사를 모르는 국민은 밤길을 등불 없이 걷는 것과 같다. 하물며 역사를 잘 모를 뿐아니라 무시하기까지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것은 지도 없이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장과 다를 바 없다.

  중국 역사에서 명군 중의 명군으로 꼽히는 당 태종에게는 바른말 하는 신하 위징이 있었다. 위징은 왕의 귀에 거슬리는 직언을 하도 자주 해서 때로는 왕도 거북해 하고 불쾌히 여겼으나 그래도 직언을 수용하고 언행을 조심했다. 그래서 명군이 된 것이다. 위징이 죽던 날, 당 태종은 울며 이렇게 탄식했다. “나에게는 세 개의 거울이 있었다. 하나는 얼굴 보는 거울, 두 번째는 역사, 세 번째는 위징이다. 오늘 나는 그 중 하나를 잃었다.” 당태종은 많은 업적을 쌓았지만 고구려를 두 차례나 무리하게 침공해서 패전한 터무니없는 실패도 했다. 비참하게 패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 태종은 후회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 위징이 살아 있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박근혜 후보에게는 역사 인식이 없다. 아버지가 한 일은 무조건 정당화하고, 과거사를 논하는 것 자체를 비생산적인 것으로 본다. 그것은 등불 없이 밤길을 걷는 것처럼 위험하다. 박근혜 옆에는 위징이 없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측근의 온갖 부정비리에 파묻혀 만고에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임기 초에는 과거 민주화 운동하다가 감옥 가고 고초를 겪은, 그래서 바른말 할만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모양이 아닌가.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어떤가? 그 옆에는 바른말 할만한 사람이 안 보이고, 심지어 민주화운동 경력자조차 찾기 어렵다. 아버지와 유신독재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는 사람들을 배척하니 그리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박근혜 후보에게는 역사라는 거울, 위징이라는 거울이 없고 얼굴 보는 거울 하나밖에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울 한 개만 있어도 되지만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에게 거울 한 개는 너무 적고 국민에게 위험한 일이다.






[이정우 칼럼 6]
이정우 /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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