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시청률 선두'의 의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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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태 칼럼] "언론매체도 지속가능성의 가치 외면할 수 없어"


  출범 1년을 갓 넘긴 종편채널 4사 중 공정보도를 표방하고 있는 mbn의 시청률이 선두라는 보도가 지난 대선 이전에 나왔다. 방송 시청률 조사업체인 AGB닐슨의 자료다. 자본력과 영향력이 막강한 조·중·동 종편채널들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열세인 mbn이 시청률에서 우위를 차지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경미디어그룹이 운영하는 mbn의 이 같은 시청률 우위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의 덕일 뿐이 아니라, 선거방송 같은 민감한 분야의 보도에서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유지한 덕이라는 자체분석이다.

 여기서 ‘공정과 균형’이라는 말은 신뢰를 얻기 위한 핵심 키워드다. 방송뿐만이 아니다. 신문의 경우에도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각을 유지하는 신뢰받는 매체의 탄생이 시대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식견 있는 독자들 사이에서 매체는 많은데도, 좋은 방송.읽을 신문이 없다는 하소연이 없지 않다. 세력 있는 매체들은 정치보도에서 보수색깔이 너무 진하다. 이런 보수 편향적 보도태도는 언론매체에 대한 젊은 독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작용을 낳는다. 가뜩이나 첨단기기에 의한 온라인에 길들여진 젊은 층에게 신문이나 방송의 이런 편향적 태도는 역작용의 근원이다.

 일부 선진국의 매체들처럼 아예 지지정당을 공개하고 나서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고 공정하게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태도가 신뢰의 토대다. 어느 매체가 어느 한편에 선 듯한 인상을 줄때 절반의 시청자와 독자는 그 매체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된다. 우리 사회는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의 비율이 각각 절반쯤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절반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서는 황금분할이다. 선출직의 모든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표밭 주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잘하려고 애써야 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LOHAS(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가치가 존중되는 요즘이다. 사람들은 비록 환경이나 건강문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따진다. 언론매체들도 마찬가지다. 언론의 지속가능성은 미래세대의 공감으로부터 나온다. 편향되거나 억지논리로 공기(公器)로서의 사명을 잊어버리면 그 매체의 지속가능성은 보장받지 못한다. 중립과 균형을 표방하는 mbn의 시청률 선두의 함의(含意)는 그래서 크다.

 대선이 지난 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속한 일부 인사가 최근 mbn의 보도태도에 대해 불만을 털어놨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미디어오늘’에 의하면 김경재 국민대통합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이 mbn을 야권지지방송으로 매도했고, MBN은 이에 대해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이 어떻게 편향보도냐고 항의했다는 보도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하나의 사실을 두고도 서로 다르게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보수언론들이 편향적이라는 사실에 공감하는 이들의 의견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흔히들 이번 대선은 여론의 기운 운동장에서 벌인 승부였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즉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신문에다 KBS나 MBC 같은 지상파방송에 더해, 보수신문들이 만든 종합편성 채널방송까지 가세해 여론이 한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었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여론의 운동장이 한쪽으로 기울었으니, 운동장의 불리한 쪽에 위치한 팀이 골을 넣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 기운 운동장에서 치르는 선거에서 연령대가 높을수록 여권지지율이 높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주로 메이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 고령층 유권자들의 성향과 신문이나 방송 못잖게, 인터넷이나 SNS로 교감하는 젊은 세대들의 성향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다시 언론매체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따져볼 당위성이 대두된다. 젊은 층의 생각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닐지라도, 언론매체의 지속가능성은 젊은 유권자들에게 올바르게 평가받아야 담보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미래사회의 주인일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드워스도 일찍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라고 읊었다. 젊은 층으로부터 외면 받는 매체가 오래 살아남기 어려울 것은 자명한 이치다. 새해에는 이런 상식이 인정받는 쪽으로 한 발짝 다가가는 사회가 오기를 염원한다.







[김상태 칼럼] 21
김상태 / 언론인. 전 영남일보 사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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