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12일,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김두현(46) 사무처장은 또 다시 억장이 무너지듯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성공적"이라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발표에 그는 "솔직히 우려스럽고 원망스럽다"고 했다. "북미 대결국면에서 북측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감안하더라도 핵실험으로 풀 문제는 아니지 않느냐"며 "이럴수록 평화니 대화니 하는 사람들 입지는 더 줄어들고 남북관계는 또 한 걸음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5년이 또 쉽지 않겠구나"는 넋두리가 이어졌다.
"시민과 함께 통일운동"
대구지역에서 평화와 통일운동을 하고 있는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가 2월로 창립 10돌을 맞았다.
지난 2003년 2월 21일 닻을 올린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이하 평화연대)는 "시민과 함께하는 통일운동"을 내걸고 대표적인 '보수' 도시인 대구에서 10년을 이어왔다. '이라크전'이 터진 2003년 전국 처음으로 '평화영화제'를 시작해 해마다 열고 있고, 남북정상이 합의한 6.15와 10.4공동선언 기념 행사를 이어가며 시민들에게 평화와 통일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특히, 금강산 생명평화캠프, 금강산 새해맞이, 개성 평화통일의 숲 가꾸기, 개성공단 방문을 포함한 다양한 이름의 방북사업을 펴고 있고, 평화통일아카데미, 통일교육아카데미, 민족화해포럼 같은 강연과 교육사업과 함께,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통일골든벨, 통일백일장, 통일역사기행 프로그램으로 통일과 역사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2007년에는 대구지역의 첫 대북지원 민간단체인 '남북평화나눔본부' 창립도 이끌어 '북한 어린이에게 내복보내기운동'도 해마다 펴고 있다.
평화연대는 지난 1월 24일 정기총회를 통해 박정우 상임대표와 노승석.장세룡.이송평 공동대표 체제로 개편하는 한편, 2월 21일 저녁에는 GNI문화공간(서현빌딩1층)에서 창립 10주년 기념식과 후원의밤 행사를 연다. 또, 오는 16일부터 22일까지는 같은 곳에서 '그리운 산하! 반가운 얼굴, 미리 본 통일'을 주제로 '10주년 방북 사진전'을, 19일에는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박근혜 정부의 안보딜레마와 한반도 위기'를 주제로 김종대(군사안보 전문가) 디펜스21 편집장의 강연회를 갖는다.
29차례 방북..."10년 전보다 못한 상황"
지난 10년동안 평화연대 대표는 바뀌었으나 '사무처장'은 줄곧 김두현씨가 맡고 있다.
김두현 사무처장은 10년의 소회를 묻자 "10년을 했는데 10년 전보다 못하니 속 째지는 일 아니냐"고 했다. 김 처장은 2000년 첫 방북 이후 지난해까지 무려 29차례나 북을 다녀왔다. 지난 2000년 당시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의 역사적인 6.15공동선언과 2003년 대구에서 열린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와 남북공동응원이 큰 힘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강산에서 '박왕자 사건'이, 2010년에는 '연평도 사건'이 터지면서 방북 길이 끊겼다. 다행히, 2012년 10월 '수해물자지원단' 이름으로 개성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12일 북의 3차 핵실험이 강행되면서 그의 방북 길은 다시 멀어졌다. 그래서 그에게 2013년은 "10년 전보다 못한" 상황이 됐고 "속 째지는" 안타까움일 수밖에 없다.
이런 그에게 지난 12월 '대선 패배'는 더 아팠다. "꿈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라고 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정상회담과 대북교류 정책이 이명박 정부들어 대결국면으로 바뀌었기에 '정권교체'를 통해 다시 대북교류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쉽게 풀릴 것 같지 않은 남북관계에 걱정이 앞선다. "문이 열렸을때는 얼마나 소중한 지도, 또 닫힐지도 잘 몰랐던 것 같다"며 "문이 닫히고 나니까 함께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더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29차례나 방북해 사진으로 담아온 그는 "이런 사진을 언제 다시 찍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다림...대구라서, 대구니까 더"
김 처장은 그러나, "소처럼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말했다. 또, "10년 통일운동의 교훈은 기다림"이라고도 했다. 그는 "뻔한 얘기 같지만, 평화와 통일은 어쨌든 우리의 소원"이라며 "10년의 경험을 살려 시민들에게 더 다가가겠다"고 했다. 특히, "대구라서, 대구니까 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만큼 '대구'가 그에게 의미있기 때문이다.
그는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가장 큰 기억으로 꼽았다. 당시 남북공동응원의 열기 뿐 아니라,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린 남북공동문화제에 4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였다. "정말 통일이 되겠구나 하는 감격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러나, "대구라서 더 힘들다"고도 했다. 그는 "평화통일, 이 말 자체를 두고도 친북이라니 급진적이라니 하며 거부감을 갖는다"며 "보수적인 지역정서가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북에 못가면 만주라도...현장을 봐야 넓어진다"
지난 10년동안 평화연대는 '여행사'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대표적인 활동이 '방북사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방북 길이 막히자 2009년부터는 '만주기행'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김 처장은 "현장을 봐야 시각이 바뀐다"고 강조했다. "적대감과 두려움이 없어야 교류할 수 있고, 북에 가면 그 적대감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통일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는 게 이유였다. "더 자주 왔다갔다 해야 더 이해할 수 있고 볼 수 있는 시각도 넓어진다"고 했다.
'만주기행'에 대해서도 "북에 못가니 만주라도 가야지"라고 웃으면서 "우리 분단이 식민시대에서 비롯된 것 아니냐"며 "만주는 식민을 극복하기 위한 공간이며 민족 통일의 혼이 깃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보수적인 대구에서 통일운동 10년, 이 길 아니면 저 길이라도 뚫어가겠다는 평화연대의 의지가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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