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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주민들의 10년 고통, 해결 못하는 동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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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지저동] 고속도로 소음방지벽에 막혀 빛 안들어..."동파ㆍ침수 피해" / 구청 "재정열악"


"햇빛 보고 살게 해달라. 빗물이 집에 들어오지 않게 해달라. 그게 그렇게 어려운 부탁인가요. 자그마치 10년 동안 동구청에 사정했어요. 이 겨울은 또 얼마나 춥고 잔인할지 상상만해도 끔찍해요"

6일 대구시 동구 지저동 886번지 불로시장 앞. 시장을 따라 흐르는 불로천 옆 도로 4m 아래에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 반대편에는 대구-포항 간 고속도로가 이어져 있다. 불로천과 고속도로 사이에 끼여있는 이 저지대 마을 주민 한조자(76) 할머니는 겨울이 고통스럽다. 마을 지대보다 5m 가량 높은 곳에 고속도로가 들어선 뒤 마을 전체를 따라 10m 높이 불투명 소음방지벽까지 생기면서 햇빛이 차단돼 일조권을 침해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할머니를 포함한 주민 모두가 같은 고통을 받고 있다.

대구시 동구 지저동 886번지 마을.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불투명 소음방지벽과 동구청이 일부 재시공한 투명 소음방지벽. 낮 시간에도 어두운 마을을 바라보는 한조자 할머니(2013.12.30) / 사진.지저동 저지대 주민대책위
대구시 동구 지저동 886번지 마을. 마을 전체를 감싸고 있는 불투명 소음방지벽과 동구청이 일부 재시공한 투명 소음방지벽. 낮 시간에도 어두운 마을을 바라보는 한조자 할머니(2013.12.30) / 사진.지저동 저지대 주민대책위

고속도로 공사가 마무리된 것은 지난 2004년. 지저동 저지대 마을 주민들이 이 같은 고통을 받은지도 벌써 10년째다. 오전 10시가 돼도 마을은 불투명 소음방지벽 그림자에 둘러싸여 좀처럼 따뜻한 기운이 돌지 않았다. 낮 시간이 짧은 지금같은 겨울철에는 오전 10시 30분이 돼서야 창문 끝으로 겨우 햇빛이 들어올 뿐이다. 이마저도 오후 2-3시가 되면 사라져 언제나 형광등을 켜고 살 수 밖에 없다.

수도 동파, 빙판길 사고, 연료비 상승 문제도 10년 동안 주민들을 괴롭혔다. 소음방지벽이 들어선 그해 겨울부터 마을 수도가 얼기시작하더니 눈이나 비가 한번 내렸다하면 녹을 줄 몰라 한~두 달은 빙판길에서 출・퇴근을 했다. 골절상을 입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겨울철 연탄 사용량도 3~4배씩 늘었다.

불로천 정비공사 후 마을 앞 강변 지대가 4m 가까이 높아져 비가 내리면 침수피해가 잦아졌다(2013.12.30) / 사진. 지저동 저지대 주민대책위
불로천 정비공사 후 마을 앞 강변 지대가 4m 가까이 높아져 비가 내리면 침수피해가 잦아졌다(2013.12.30) / 사진. 지저동 저지대 주민대책위

이후 주민들은 동구청을 찾아 불투명 소음방지벽을 "투명 재질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동구청은 "책임이 없다"며 한국도로공사에 책임을 떠넘겼다. 하지만, 한국도로공사도 "구유지 일"이라며 동구청에 책임을 미뤘다. 두 기관이 책임공방을 벌이는 동안 고통받던 주민들은 하나 둘 이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35가구, 1백여명이 살던 마을은 현재 60대 이상 노인 9가구만 남았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이 곳에서 30념 넘게 살아온 저소득층(기초수급대상자 3명, 차상위계층 1명)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대다수다. 이들은 많은 주민들이 떠난 뒤에도 끈질기게 동구청에 "생존권"을 요구해 지난 2012년 이재만 동구청장과 불투명 소음방지벽을 투명 재질로 교체하는데 합의했다. 합의 초기에는 "마을 전구간의 소음방지벽을 투명하게 교체해달라"고 요구했으나, 동구청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계속해서 공사를 미루자 마을 구간 소음방지벽 윗칸 28개만 교체하는데 최종합의했다.

박손칠 대책위원장 집벽에는 겨울철에도 곳곳에 곰팡이가 시커멓게 생겼다(2014.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박손칠 대책위원장 집벽에는 겨울철에도 곳곳에 곰팡이가 시커멓게 생겼다(2014.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동구청은 예산 3천만원을 투입해 28칸 중 20칸만 투명 재질로 교체했다. 주민과의 합의를 어기고 마을 전구간 소음방지벽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곳만 재시공 한 것이다. 동구청의 약속 미이행결과 주거 환경은 더 열악해졌다. 빛이 들지 않아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집에 곰팡이가 생겼다.

게다가, 고속도로 공사가 진행되던 시기 동구청이 불로천 정비공사를 하면서 마을 앞 강변 지대를 4m 가까이 높이는 바람에 주민들은 침수피해까지 입고 있다. 마을이 저지대로 변하면서 고속도로와 강변에 모인 빗물이 마을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빗물과 눈이 스며든 주택 곳곳에는 균열도 생겼다. 민원을 넣어도 동구청은 침수가 생기면 양수기를, 균열이 생기면 실리콘을 해결책으로 내놓을 뿐이었다. 

최분조(64) 할머니 집이 침수피해 후 벽에 균열이 생기자 동구청은 해결책으로 '실리콘'을 발라놨다(2014.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최분조(64) 할머니 집이 침수피해 후 벽에 균열이 생기자 동구청은 해결책으로 '실리콘'을 발라놨다(2014.1.6)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때문에, '대구광역시 동구 지저동 저지대 주민대책위원회(공동대책위원장 박손칠・양희)'는 6일 이재만 동구청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마을 전구간 불투명 소음방지벽 투명 재질 교체" ▶"침수현상 근본 대책마련"을 동구청에 촉구했다. 박손철 대책위원장은 "쓸모없는 과시욕 공사에는 구 예산 몇 억씩을 사용하면서 주민 생존권에 쓸 예산 몇 천만원은 없냐"며 "동구청 방치 속 10년 동안 고통받았다. 더 이상 열악한 환경 속에 살 수 없다. 동구청은 주민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구청 건설과 관계자는 "이미 무리하면서 긴급보수예산 3천만원을 써서 방음벽 공사를 했고, 당시 추가로 민원을 재기하지 않겠다는 주민 동의서도 받았다"며 "주민 입장은 이해하지만 동구청은 대구지역 다른 구・군보다 재정이 열악해 재시공이 어려운 상태"라고 해명했다. 또, "대구-포항 고속도로 공사 때문에 만든 방음벽이니 도로공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구의회 허진구(지저동, 동촌동, 방촌동) 의원은 "예산을 투입해 문제가 해결 된 걸로 알고 있었다"며 "주민들이 말하지 않아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지 몰랐다. 다시 현장을 찾아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찾도록 하겠다. 구청 담당 부서와 대구시, 한국도로공사에도 대책마련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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