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유가족 "시대역행하는 '박정희 마케팅', 명분 없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4.04.0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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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통일열사 39주기] 지방선거 '박정희시ㆍ컨벤션센터' 공약 비판..."말 못할정도로 슬프고 착잡"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 공안사건인 '인혁당 조작 사건'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6.4지방선거의 이른바 '박정희 마케팅' 공약에 대해 분노했다. 새누리당 박승호 경북도지사 예비후보는 구미시를 '박정희시'로, 김천역을 '박정희역'으로 바꾸자고 했고, 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도 '박정희 컨벤션센터'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구속돼 197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2년부터 8년8개월을 복역한 강창덕(85)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장은 9일 인혁당 39주기 추모제에서 "정치인으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시대를 역행하는 대의명분 없는 행위"라며 "찬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독재자 박정희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로서 민주적 대구시장을 염원했는데 야당의 대표적 대구시장 후보가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새누리당 후보들은 박정희시와 박정희역 공약을 들고 나와 착잡하다"면서 "선거를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지만 내고장 대구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 안타깝다. 박정희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 희생자 묘지 앞에서 헌화하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 강창덕 이사장과 희생자 고 도예종씨 부인 신동숙씨(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인혁당 사건 희생자 묘지 앞에서 헌화하는 인혁당 사건 피해자 강창덕 이사장과 희생자 고 도예종씨 부인 신동숙씨(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당시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고 도예종씨의 부인 신동숙(86)씨 역시 "말로 다 표현을 못할 정도로 착잡하고 슬프다"며 "통일을 염원하던 남편을 박정희가 어이없이 앗아갔는데 오늘날 자기 욕심을 위해 정치인들이 다시 그런 공약을 내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절대 안된다. 너무 가혹하다"고 했다.

'4.9통일열사 39주기 추모제'...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묘지에 묵념하고 합창하는 모습(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9통일열사 39주기 추모제'...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묘지에 묵념하고 합창하는 모습(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법살인'이라고 불리는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이 올해로 39주기를 맞았다.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는 9일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묘지에서 '4.9통일열사 39주기 추모제'를 열었다. 이곳에는 1975년 4월 9일 사형된 8명 중 고 도예종, 고 여정남, 고 하재완, 고 송상진씨 등 희생자 4명이 안장됐다.

이날 추모제에는 고 도예종씨 부인 신동숙씨와 고 이재형씨 부인 김광자씨, 고 송상진씨 아들 송철환씨,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 나경일씨의 아들 나문석씨, 고 전재권씨 동생 전재웅・전재창씨, 피해자인 강창덕 이사장을 비롯해 피해자와 유가족, 시민단체 활동가, 정당인, 대학생 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또 대구시장 후보 가운데에는 통합진보당 송영우・정의당 이원준 후보가 참석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당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 등 모두 17명의 영정사진이 묘소 앞에 놓여 있다(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인혁당 사건으로 당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 등 모두 17명의 영정사진이 묘소 앞에 놓여 있다(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들은 인혁당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과 이미 돌아가신 피해자 등 모두 17명의 영정사진을 묘소 앞에 세워놓고 1시간가량 제례, 추모식, 헌화를 진행했다. 특히 강창덕 이사장과 배다지 산수이종율선생기념사업회 고문, 임성열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장은 추모사를 했고, 이중기 시인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름들이여'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낭송했으며 가수 박성운씨는 추모노래를 이어갔다.

오규섭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이사는 "그날을 결코 잊지 말자. 고문과 조작의 역사를 딛고 통일로 향하자"며 "엄중한 시대의 흐름 속에 희생자들의 넋을 기려 참된 꿈을 꾸자"고 했다. 배다지 산수이종율선생기념사업회 고문은 "박정희에 이어 그 딸 박근혜 대통령이 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해  유신망령을 되살리려 한다"면서 "살아남은 우리 어깨가 무겁지만 통일을 위해 그날을 기억하자"고 했다.

추모제에서 제사를 지내고 참가자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추모제에서 제사를 지내고 참가자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와 관련해, 송영우 통합진보당・이원준 정의당 대구시장 후보도 이날 '인혁당 39주기 추모 성명서'를 내고 "민주주의 수호"를 강조하며 김부겸 후보의 박정희 컨벤션센터 건립 공약을 비판했다.

송영우 후보는 "지방선거는 통일열사들의 민주정신이 되살아나는 장이 돼야 한다"며 "유신독재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건립하는 것은 민주열망을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원준 후보도 "대구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시작이었던 2.28민주운동의 도시"라며 "인혁당 사건의 아픔은 그 자랑스러움의 그늘이다. 야권 후보가 박정희 건물하나 올린다고 그 그늘이 지워지는 것은 아니다"고 비난했다.

한편, '4.9통일평화재단'도 9일 저녁 서울 정동 프란치스크 성당에서 인혁당 39주기 추모제를 열고, '여정남기념사업회'와 경북대총학생회도 오는 12일 오후 3시 경북대 여정남공원에서 추모행사를 연다.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노래를 부르는 가수 박성운씨(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노래를 부르는 가수 박성운씨(2014.4.9.현대공원묘지)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인민혁명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1974년 중앙정보부가 "북한 지령으로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구성해 국가전복을 꾀했다"고 발표한 이듬 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인 4월 9일 피고인 8명을 사형시킨 사건이다. 국내외 법조계는 이날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 '사법살인'으로 부르고 있다. 희생자 도예종씨, 서도원씨, 송상진(영남대)씨, 여정남(경북대)씨는 대구경북 출신이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희생자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 희생자들

그러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2002년 직권조사를 통해 "중앙정보부 고문과 증거조작, 공판조서 허위 작성, 진술조서 변조, 위법한 재판 등에 의해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했다.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도 "고문과 가혹행위가 자행됐다"며 '사건 조작'을 인정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07년 1월 23일 재심 공판에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지 32년 만이다. 또, 2007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유족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희생자별로 20억-30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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