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피해자 "두 개의 판결? 천인공노할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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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덕 "반역사적, 독재자의 딸 자인한 꼴" / 4.9계승사업회 "하나의 판결, '무죄'만 있다"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박정희 정권 시절 대표적인 공안사건인 '인혁당' 사건에 대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답이다. 박 후보는 9월 10일 문화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답하며 "똑같은 대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또 어떤 앞으로의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박 후보의 이 같은 말에 대해 인혁당 피해자와 관련 단체는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망언", "유신정권의 부활", "법원판결에 대한 무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강창덕
강창덕
특히, 인혁당 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을 받은 강창덕(85) 선생은 "희생자에 대한 부관참시, 우리를 두 번 죽이는 짓"이라며 격노했다. 강 선생은 "박정희 수중에 있던, 유신독재 하의 대법원 판결과 민주화시대의 대법원 판결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으냐"며 "그것도 구분 못하는 반역사적이고 천인공노할 망언에 분노를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또, "박근혜는 이 망언으로 자신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 됐다"며 "반역사적이고 반민주적인 박근혜는 대통령의 자격이 손톱만치도 없다"고 말했다. 강 선생은 내내 "속 상한 건 말도 못한다"고 분노하면서, 박 후보에 대해 "불쌍한 인간"이라고도 했다.


강 선생은 지난 1974년 이른 바 '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으로 구속돼 모진 고문과 함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2년 형집행정지로 출소할 때까지 8년8개월을 복역했다. 2006년 국무총리실 소속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받았고, 2007년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인혁당 무죄'가 선고되면서 오랜 멍에를 벗었다.

인혁당 관련 단체인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이사장 대행 함종호)도 12일 성명을 내고 "법원판결에 대한 무지", "국민 생명과 헌법 정신에 대한 인식 결여"라고 박 후보를 비판했다.

<경향신문> 2012년 9월 11일자 1면
<경향신문> 2012년 9월 11일자 1면

이 단체는 "인혁당에 대한 1975년 사형 판결은 2007년 '무죄' 판결로 사라졌다"며 "두 개의 판결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판결, 즉 '무죄'만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박 후보가 2007년 판결이 부당하다고 판단된다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면서 "아무 새로운 증거 없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은 대법원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대통령 후보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박 후보의 최근 발언으로 볼 때 국민 생명과 헌법 정신에 대한 인식이 철저히 결여되어 있다"면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건 그야말로 유신정권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또, "헌법의 핵심과 대통령 역할 중 가장 첫 번째는 국민들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박 후보가 대한민국 헌법 1조에서 10조까지만이라도 차분히 읽어보기 바란다"라고 꼬집었다.

이른 바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조작사건'은, 1974년 중앙정보부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인민혁명당 재건위를 구성해 국가전복을 꾀했다"고 발표한 뒤, 이듬 해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지 18시간만인 4월 9일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이 집행된 사건이다. 국내외 법조계에서는 이를 '사법사상 암흑의 날', '사법살인'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이 사건으로 희생된 8명 가운데 도예종.서도원.송상진(영남대), 여정남(경북대)씨를 비롯한 4명이 대구경북 출신이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들
1975년 4월 9일. 사형 선고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인혁당 재건위' 희생자들

이 사건은,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직권조사를 통해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증거조작, 공판조서 허위 작성, 진술조서 변조, 위법한 재판 등에 의해 조작됐다"고 밝힌데 이어, 2005년 12월 7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도 "수사지침에 따라 고문과 가혹행위가 자행됐다"며 '사건 조작'을 인정했다.

이어,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2005년 12월 27일 '재심 개시'를 결정한 뒤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2년 만이다. 그리고, 2007년 8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인혁당 유족을 비롯해 4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가 희생자별로 20억-30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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