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1년, 독선과 공포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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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 "2014, 갑오년 새해의 정치 쇄신을 기대한다"


우선 사과부터 드립니다. 작년 이맘때 대선 직후 제가 쓴 글이 실없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글에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선거는 승패를 떠나서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는 소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여야 모두 이명박 식 정치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안철수 현상을 통해 표출된 국민의 정치 쇄신 요구를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2012.12.20 평화뉴스 대선, 새 정치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읍시다 )

공약 후퇴를 넘어 헌법 가치 훼손

지난 대선에서 소득이 있었다는 제 말씀은 김칫국부터 마신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등 전향적인 공약을 파기한 정도를 넘어 뭔가 심상치 않은 역방향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인혁당 사건에 대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은 “헌법 가치를 훼손”한 사건이라고 물러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헌법 가치’를 존중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대통령은 국가기관이 대선에 불법 개입한 사실을 덮기 위해 갖가지 몰상식한 대응을 펼치고 있습니다. ‘헌법 가치’ 정도는 안중에 없다는 태도가 아닌지요?

그래도 집권 세력 내에는 상식파가 얼마간은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마님을 향한 짝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일부 과잉충성파가 실권을 장악하긴 했지만 최소한의 양식을 지키는 사람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임명된 직후 공식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라는, 왕조시대에나 어울릴 표현을 썼을 때는 “개인적 일탈”이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최근 장하나 의원에 대해 여권이 대처하는 모습을 보니 그게 아닌 듯합니다.

‘최고 존엄’의 눈 밖에 나면 안 된다?


장 의원은 12월 8일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사이버쿠데타였다고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하고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주장의 내용이나 형식에 동의하건 말건 그런 주장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헌법 가치’에 위배됩니다. 그런데도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154명 전원이 ‘장하나 의원 징계안’을 발의하였다고 들었습니다. 154명 전원이!

최근에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가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느 고등학교에 그와 비슷한 대자보가 붙자 교장이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교육자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학생의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교내에서 일어난 일을 경찰에 신고하다니요. 교장은 충성심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요. 이건 우리 사회에 획일적인 억압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북한이 장성택을 처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너무나 야만적입니다. 서둘러 군사재판을 하고는 곧바로 처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남한도 북한처럼 ‘최고 존엄’의 눈 밖에 나면 안 되는 분위기가 되고 있습니다. 정도 차이는 있을망정 남북한 모두 독선과 공포가 지배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 쇄신도 물 건너가나?

그렇다면 “정치권이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정치 쇄신은 어떨까요? 이 역시 제가 헛다리를 짚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선 이후 ‘헌법 가치’를 바로 세우는 데 안철수 진영이 기여한 바가 별로 없었고 다른 사안에서도 안철수 충격이 미미하다는 것이 드러나자, 여당은 안도감 속에서 자만에 빠져 있고, 민주당은 2014년 지방선거에서 호남표를 빼앗길까 염려하기만 합니다.

저는 같은 글에서, 정치 쇄신의 핵심은 정치 독과점을 막는 데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여당이 국회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국민 대표에게 낮은 자세로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 양대 정당이 정치 생태계를 양분하는 상황에서는 적대적 공생관계가 형성되어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극한 대결과 이권 나눠먹기가 반복될 뿐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사회라면 적어도 공정거래법이 정하는 독과점 규제 정도는 정치에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즉 기업의 경우처럼 정치에서도 1개 정당이 의석의 50%, 3개 정당이 의석의 75% 이상을 차지할 수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선거제도가 국민의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기만 한다면 굳이 의석 점유율을 규제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역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당이 득표율 50%를 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그러므로 인위적 규제 대신, 사표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는 소선구제에서 벗어나 국민의 지지율을 충실히 반영하는 비례대표제만 도입해도 됩니다.

이런 개혁이 없이는 여야가 바뀌더라도 정치는 국민과 따로 놀 수밖에 없습니다. 갑오년 새해에는 120년 전 갑오경장의 정신을 살려 정치권이 근본적인 정치 쇄신을 추진해 주기 바랍니다.






[김윤상 칼럼 56]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yskim@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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