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건 이후 처음 열린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내각 전체가 ‘국가개조’를 한다는 자세로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3일이 지나서 “이번 기회에 (국가를) 개조하는 데 모든 힘을 쏟겠다"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5월 16일 세월호 사건 유가족들과의 만남에서는 ‘국가 대(大)개조’라는 표현도 나왔다.
국가를 개조하고, 국민성을 개조하고, 나라의 체질을 바꾼다는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국정 개혁과제의 구호가 제시된 것이다. ‘복지와 경제민주화’로부터 ‘규제철폐와 경제활성화’로 국정과제가 전환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안전과 국가개조’로 국정 과제가 반전에 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경제개혁으로부터 규제완화를 거쳐 국가개조로
‘다시는 이번 일과 같은 생기지 않도록 사회의 기초부터 다시 세울’ 필요성에 대해서야 국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부정, 부패, 비리를 제거하여 투명한 국가를 만들고, 공정하고 공평하며,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 국민의 삶의 안전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라면 반대할 국민이 없을 것이다. 복지국가를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건강과 노후라는 가장 큰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하는 방안이고, 안전은 단순히 사건․사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국가개조’에 대한 우려와 불신도 함께 커지고 있다. 우선 ‘국가개조’라는 용어가 갖는 역사적 기억과 의미가 문제가 된다. 1920년대 독일과 일본 우익의 국가개조운동이 결국 파시즘운동이었고, 역사적으로 모든 국가개조론은 인간개조 혹은 정신문화의 개조(정신문화 창달이라고도 불렸다)로 이어졌다. 여기서 단어문제를 꼬투리 잡을 여유는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인 국민이 왜 개조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글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를 선정하고, 실행을 위한 정책적 조치들을 취하려 할 때 보여주었던 특징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정책 과제가 불가(佛家)의 화두처럼 떨어진다. 경제민주화가 그랬고, 창조경제가 그랬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 정부 내에서 대통령을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장관은 열심히 받아쓰기하고, 부처에 돌아가서 옮긴다. 각 부처의 공무원들은 부처 보고서의 첫 장을 그 화두로 시작한다. 국회에서 여당 국회의원들이 무슨 뜻이냐고 매번 묻는 판이었으니 공무원들이 그 화두의 실체를 잡았으리라고 믿기는 힘들다. ‘비정상의 정상화’나 ‘규제완화’ 때도 비슷했다. 각료들이 대통령의 말이 바뀔 때마다 우르르 널뛰듯 몰려다닌다. 대통령이 ‘투자하는 사람은 업어줘야 한다’고 하자 공단에서 투자자를 실제로 업어 주었던 경제 관료도 있었다.
이번의 ‘국가개조’도 정부 및 여당과 사전에 충분히 논의하고 이해의 폭을 넓힌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당에서 내각 총사퇴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청와대는 부정적이었다. 그러다가 내각총사퇴보다 훨씬 쎈 ‘국가개조’라는 표현을 들고 나왔고, 여당 내에서조차 그 내용이 무엇일까 설왕설래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기존의 패턴을 반복
둘째, 대통령이 화두와 함께 ‘깨알지시’도 덧붙인다. 이번에도 국무회의에서 비정상적인 관행과 봐주기식 행정, 협회와 민간 기업-퇴직 공직자-정부로 이어지는 비리의 사슬 구조를 지적했다. 국가안전처 신설도 직접 밝혔다. 나아가 여객선에 대한 안전 점검과 운항관리 규정을 개정할 것까지 세세히 지시했다. 회의가 끝나고 비서실이나 관료가 한 중요한 일이라곤 대통령 말씀을 18개 항목으로 분류하고 담당 부처를 정하는 일이었다.
셋째, 경제개혁(경제민주화규제)에서 경제활성화(규제철폐)로, 규제철폐에서 국가개조(규제신설)로 휙휙 바뀌는데,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전체를 구성하는지 알 수 없다. 그것도 이전에 세웠던 과제가 어떤 결과를 내기도 전에 ‘자 이제 이건 이쯤하면 되었고…’라는 대통령 한마디에 중단된다. 이러다 보니 어떤 국정과제든 정부 내에서 누가 책임지고 그것을 끝까지 추진하는지 알 수 없다. 께름칙하지만 국가개조라는 말을 안전한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말로 해석해 보더라도,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기존의 국정 과제 패턴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 내가 좀 더 안전해지겠구나라고 느낄 국민은 거의 없어 보인다.
· 저서
『혁신과 통합의 한국경제모델을 찾아서』, 편저(2006), 함께읽는책
『박정희 모델과 신자유주의 사이에서』, 편저(2004), 함께읽는책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역사와 위기』, 편저(2003), 함께 읽는 책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공저(2003),
고려대학교 아연 동아시아연구총서02, 아연출판부
[다산연구소 - 다산포럼] 2014-5-20 (다산연구소 = 평화뉴스 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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