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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역사 '서북청년단'의 광기를 막을 '시민의 손'
[오택진 칼럼] "청산하지 못한 역사, 지울 수 없지만 되풀이는 막아야"
2014년 09월 30일 (화) 11:14:00 평화뉴스 pnnews@pn.or.kr

 지난 주말 인터넷 검색어에 ‘서북청년단’이라는 검색어가 순위에 올랐고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이건 무슨 일인가? 2014년의 ‘일베’도 아니고 70여 년 전의 ‘서북청년단’이라니. 기사는 이랬다. ‘서북청년단 재건위’는 서울시청 광장의 노란추모리본을 떼러 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란리본을 훼손하려는 것이 아니고 철거할테니 서울시청이 영구보존하라는 것이었다. 기자회견 후 경찰과의 대치과정에서 한 남성은 울분에 찬 목소리로 “리본 한 개라도 떼고 가야된다”고 했다. 그들이 왜 그 자리에 왔는지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극우, 보수세력은 그동안 세월호 추모와 특별법 제정에 대한 반대활동과 유가족들의 단식투쟁에 대한 조롱을 일삼아왔다. 무엇하나 속시원히 밝혀진 것 없는 상황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들에게 ‘아이들의 목숨값’을 돈으로 바라는 것처럼 왜곡하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들이다. 걸핏하면 들고 나오는 ‘국론분열은 안된다’는 폭력적인 언사는 정부의 뜻에 따르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같은 말이 아닌가 말이다. 사건발생부터 구조,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 세월호 특별법을 논의하는 과정까지 수없이 많은 의혹은 유가족들에게 있지 않고 정부에게 있다. 국가재난사태의 철저한 진상규명에 대한 극우보수세력의 의지는 찾아볼 수 없는데 그들은 왜 야만의 역사에서 ‘서북청년단’이라는 악마의 이름을 불러온 것일까?

   
▲ <경향신문> 2014년 9월 29일 6면(종합)

‘서북청년단 재건위’에 앞서 2009년 3월 보수단체인 국민행동본부는 무술유단자 97명으로 구성된 ‘애국기동단’이라는 것을 발족했다. 대부분 전역 군인인 이들은 보수단체의 요구가 있을 시 집회에 대한 질서유지, 경호 등의 활동을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또 “좌익들의 패륜적 테러에 대해 정당방위적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며 물리적 행동도 불사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위 발기인 모임’를 알리는 글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청계천과 광화문 그리고 전국의 미친개들을 때려잡을 제2의 서북청년단의 활동이 절실하게 요망된다. 미친개를 그냥두면 나라가 개판된다. 서북청년단처럼 몽둥이를 들자.” 애국기동단의 자위적 방어권을 넘어 좌익세력에 대한 공격적 테러를 자행했던 서북청년단의 뒤를 이을 테세다. 그렇다면 4-50년대의 ‘서북청년단’은 어떻게 몽둥이를 휘둘렀는가?

 알려져 있다시피 서북청년단은 45년 8.15 광복 이후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반좌익투쟁의 능률적인 수행을 위해 46년 11월에 설립한 우익청년운동단체이다. 서북청년단은 전국적으로 조직되어 좌익세력에 대한 물리적 공격과 테러 학살을 일삼았다. 이승만 조병옥 장택상 등 권력의 비호하에 물질적 지원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서북청년단’은 극우의 사상과 이념을 전파하는 것보다 직접적으로 좌익세력에 대한 물리적 테러와 학살을 자행했다. ‘서북청년단’이 제주 4.3항쟁의 과정에서 무장대와 민간인에게 저지른 학살만행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

삼양지서가 습격을 받자 며칠간 그곳에서 보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서북청년회 출신 정 주임(정**)은 너무도 잔인했어요. 여자들 옷을 벗겨 더러운 행위를 하는 것도 다 봤습니다. 그리고 그 추운 겨울날 여자들의 옷을 벗긴 채 망루 위에 오랜 시간 앉혀 놓았습니다. 난 벌벌 떠는 그들이 불쌍해 코트를 벗어 덮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밝으면 삼양지서 옆 밭에서 남자고 여자고 수십 명씩 잡아다 죽였습니다. 차라리 총으로 쏘아 죽일 것이지 그 마을 대동청년단원들에게 창으로 찌르도록 했습니다.
 - 김OO 증언, 78세, 한림읍 귀덕1리, 제주경찰학교 10기생, 2001. 11. 19 채록

나는 대한청년단 분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침에 정기보고를 하러 지서에 갔더니, 남편이 입산했다는 이유로 젊은 여자 한 명이 끌려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 주임은 웬일인지 총구를 난로 속에 넣고 있더군요. 그리고는 젊은 여자를 홀딱 벗겼어요. 임신한 상태라 배와 가슴이 나와 있었습니다. 정 주임은 시뻘겋게 달궈진 총구를 그녀의 몸 아래 속으로 찔러 넣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정 주임은 그 짓을 하다가 지서 옆 밭에서 머리에 휘발유를 뿌려 태워 죽였습니다. 우리에게 시신 위로 흙을 덮으라고 했는데 아직 덜 죽어있던 상태라 흙이 들썩들썩 했습니다. 정 주임 그놈은 오래 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 고OO 증언, 79세, 제주시 삼양2동 1999. 8. 28 (제민일보 보도)


 위 증언은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위원장 고 건)에서 2003년 10월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이하 진상조사보고서)중에 나와 있는 증언의 일부분이다. 이런 식의 반인륜적이고 야만적인 학살에 대한 증언은 진상조사보고서에 다수 확인된다. 군인, 경찰, 우익단체의 무장대과 민간인에 대한 학살행위는 세계역사를 둘러보아도 유례없는 일이다. 물론 토벌대 중에도 무장대에 의해 살해당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상보고서의 자료에는 [가해자별 현황을 보면, 제주도의회 신고서에는 토벌대 84.0%, 무장대 11.1%의 비중을 보였고, 4‧3위원회 신고에서는 토벌대 78.1%, 무장대 12.6%로 나타났다. 토벌대와 무장대와의 비율로만 산출하면, 제주도의회 신고서는 88.4% 대 11.6%, 4‧3위원회 신고서는 86.1% 대 13.9%로서, 비슷한 비율이 된다. 이와 같은 통계는 주한미육군사령부의 「제주도사건종합보고서」에 주민들이 토벌대에 의해 80% 이상 사망한 것으로 보고한 내용과 일치한다.]고 되어 있다. 대략 3만명의 희생자로 추정되는 제주 4.3사건의 대부분의 가해자는 군인, 경찰, 우익단체였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익단체 서북청년단이 저지른 학살의 악랄함은 위 증언에서도 보았듯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에 다다른다.

 역사를 반드시 제대로 알아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서북청년단’은 지나간 역사에서 지울 수 없지만 다가올 역사에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야만의 역사이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극우와 보수, 극좌와 진보가 있다. 이들이 사상의 자유경쟁시장에서 서로의 사상과 이념을 알려나가고 대중들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 이것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나라의 기본이 아니겠는가? 타인의 자유와 이익에 대한 불가침, 주권자가 합의해서 만들어놓은 제도에 대한 존중이 전제된다면 말이다. ‘서북청년단’의 좌익테러와 민간인에  ‘빨갱이’ 색깔 입히기를 통한 학살은 역사에 두고두고 단죄되어야 할 사악한 범죄일 뿐이다.

1970년 독일 총리 빌리브란트가 폴란드 바르샤바 전쟁희생자 기념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건은 유명하다. 세계언론은 “그날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전체였다”고 평가했다. 9월 28일 서울시청광장에서 노란리본 철거를 시도한 것은 5명의 ‘서북청년단 재건위’사람들이었지만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우리 모두이다. 왜곡된 역사교과서가 학생들의 수업교재로 채택이 되고, 일본이 역사왜곡과 군국주의적인 도발을 해도 외교부 성명서 달랑 한 장 발표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여성, 호남, 진보세력 등이 ‘일베’의 공격대상이자 조롱거리가 되는 것의 근본은 뒤틀리고 왜곡된 역사의식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지난 시대의 광기어린 야만의 역사를 묵인하는 것은 역사의 부정적 되풀이를 용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하에서 전교조가 집요하게 공격당하는 이유의 중요한 측면은 ‘역사적 진실’을 알리는 교사들의 역할에 있었다.

 앞으로도 좌와 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더욱 다양해질 것이고 건강한 소통과 토론이 막혀있는 한국사회에서의 대립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베’와 ‘서북청년단 재건위’와 같은 성향의 세력과 단체들은 수시로 나타나고 진화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살펴봐야 한다. 2013년 9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총선이 있었다. 독일에서는 극우정당이 거의 표를 얻지 못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20% 이상의 지지를 얻어내며 크게 세를 불렸다.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이필렬 교수의 경험을 그의 글로 인용한다.

 [전반적으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보다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것이 내가 두 나라에서 살면서 받은 인상이다. 독일에서는 군복 입고 군화 신은 신나치들과 종종 마주치고 그들의 폭력적인 행동을 언론에서 자주 접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반적으로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보다 부드럽고 친절하다는 것이 내가 두 나라에서 살면서 받은 인상이다](경향신문. 오피니언 [녹색세상]극우와 보수 ‘초록은 동색’. 2013.10.3)

 그러면 왜 오스트리아에서 극우가 그토록 많은 표를 얻는 것일까? 다시 이필렬 교수의 글을 보자.

[그런데도 극우가 높은 지지를 받은 이유가 나는 두 나라 극우의 폭력성 차이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독일의 극우는 외양이나 행동에서 모두 극우다움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외국인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살해하기까지 한다...반면에 오스트리아에서는 극우의 폭력이 인구 대비 비율로 봐도 독일보다 훨씬 적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두 나라의 과거청산 수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치 범죄의 주범국 독일에서는 높은 수준의 청산이 이루어졌지만, 오스트리아는 자신을 나치 범죄의 최초 희생자 또는 기껏해야 종범으로 내세우면서 과거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그 결과 극우가 독일에서는 고립되면서 폭력적인 방향으로 나아갔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사회 속에 섞여들어갈 수 있었기에 폭력성이 제어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극우정당에 대해 큰 저항감이 없다. 호감 가는 모습의 젊은 당대표가 선거운동을 하면 오스트리아 청년들은 물론 외국인 2세 젊은이들까지 상당수가 지지표를 던진다.] (경향신문. 오피니언 [녹색세상]극우와 보수 ‘초록은 동색’. 2013.10.3)

 우리는 지금 젊은 세대의 ‘일베’와 나이 든 세대 ‘서북청년단 재건위’라는 두 가지 극우모델을 보고 있다. 폭력적인 극우의 위험성과 부드러운 극우의 영향력 둘다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해갈지 알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한국사회가 ‘더불어 함께’ 동반자로 나아가는 모습은 아님에 틀림없다. 우리는 나치전범들을 끝까지 추적해 사법처리한 독일처럼 친일반역자들을 끝까지 사법처리하지 못했다. ‘반민특위’의 좌절 이후 우리 역사는 오히려 친일했던 사람들이 계속 기득권을 가져왔던 역사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8.15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증폭되었던 좌 우 갈등은 좌익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과 누구도 반론할 수 없었던 ‘빨갱이’ 논리로 숨막히는 시대를 살았다. 민주화운동도 최소한의 생존권을 위한 노동자들의 요구도 ‘주홍글씨’를 뒤집어 써야 했다. 청산해야 할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고 ‘역사인식’은 ‘스펙쌓기’의 맨 마지막 어디쯤 자리하고 있는 현실은 다가올 미래를 어둡게 한다. 독일과 같은 역사청산도 없었고, 암기위주의 역사교육으로 시대를 보는 ‘눈’도 키우지 못했다. 국민의 역사에 대한 인식, 잘못된 과거에 대한 성찰정도에 따라 다음 세상의 지형은 달라질 것이다.

2010년 유럽의 ‘네오나치’ 수천 명이 독일 동부 드레스덴의 한 기차역에 모여 연합군의 폭격65주년을 맞아 이를 비판하며 희생자를 애도하는 시위를 벌이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위는 저지되었다. 독일 시민 1만여명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저지했기 때문이다. 시민의 맞잡은 손이 ‘네오나치’의 시내입성을 허용하지 않았다. ‘네오나치’를 없앨 수는 없지만 그들의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막을 수는 있다. 지난 시절의 역사를 기억하는 피해자가 그 역사를 다시 살게 하는 일 만은 막아야 한다. 그것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평화와 화해로 가는 아름다운 ‘시민의 손’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 지금 여기 당신이 있는 그 곳에서 말이다.

   





[오택진 칼럼] 24
오택진 / <연구공간Q+> 대표.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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