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희생자, 뼈에는 이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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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현 칼럼] 적군의 묘지도 있는데...민간인 희생, 유해 수습하고 진실 밝혀야


 가을 햇살이 어서 떠나라고 재촉하는 10월의 어느 주말 광주 비엔날레 전시관을 찾았다.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주제로 지난 9월 5일부터 오는 11월 9일까지 진행되는 2014 광주 비엔날레는 벌써 10회째를 맞이하지만 나는 이번이 첫 방문이다.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마당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다소 생뚱맞은 콘테이너 박스였다. 닫혀 있는 콘테이너 박스에는 무엇이 과연 있을까?  콘테이너 박스 안에는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채 경북 경산의 코발트 광산과 경남 진주에 방치되어 있던 유골이 들어 있다. 경산 콘테이너에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가 발굴하다가 활동종료로 방치된 유골이 들어 있고 진주 콘테이너에는 유족들이 자치적으로 발굴한 유골이 들어 있다. 경북 경산과 경남 진주에 있던 유골이 어떻게 광주 비엔날레 앞 마당의 콘테이너 박스에 들어가 있게 되었을까?

광주비엔날레 콘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경산코발트광산 유골(2014.10.26) / 사진. 김두현
광주비엔날레 콘테이너 박스 안에 있는 경산코발트광산 유골(2014.10.26) / 사진. 김두현
채영희(70) 10월항쟁유족회장이 광주비엔날레 광장에 전시된 콘테이너 박스 앞에서 10월항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2014.10.26) / 사진. 김두현
채영희(70) 10월항쟁유족회장이 광주비엔날레 광장에 전시된 콘테이너 박스 앞에서 10월항쟁에 대해 말하고 있다.(2014.10.26) / 사진. 김두현

  사실 이 콘테이너 박스는 단순한 콘테이너 박스가 아니다. 임민옥 작가의 ’네비게이션 아이디‘라는 퍼포먼스 작품이다. 지난 9월 3일 2014 광주 비엔날레의 오프닝 퍼포먼스로 임민옥 작가의 ’네이게이션 아이디‘가 펼쳐졌다. 경북 경산과 경남 진주에 방치되어 있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 유골이 담긴 컨테이너 2개가 지난 9월 3일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앞마당까지 호송되었고 경산 코발트 광산 및 진주 민간인 학살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을 오월어머니회에서 맞이하는 퍼포먼스였다. 콘테이너 박스는 전시기간 내내 앞마당에 설치되어 있고 호송 장면과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은 전시 기간 1전시실에서 비디오 프로젝션으로 감상할 수 있다.

 전시관 앞마당을 오가는 관람객들은 무심한 듯 콘테이너 박스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임민옥 작가는 이 퍼포먼스를 통해 ‘국가란 무엇인가?’, ‘국민의 범주는 어디까지인가?’를 묻고 밝힐 수 없는 죽음은 성찰하지 못하는 사회의 비극을 보여주며 책임의 윤리를 묻고자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것은 국군 만이 아니다 
 
우리정부는 지난 2009년 발령한 국무총리 훈령 제 535호에 따라 국방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6ㆍ25 전사자유해 발굴 관계기관 협의회의 구성하는 등 적극적으로 6?25 전사자의 유해를 발굴하고 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1950년 6월부터 1953년 7월까지 3년간 지속된 한국전쟁 당시 적게는 200만명 많게는 40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그 중 많은 시신이 아직도 이 산하 여기 저기에 어디에 묻힌지도 모른채 방치되어 있다. 아직도 전쟁 초기 가장 치열한 전장이었던 유학산 능선골짜기 등 칠곡의 격전지에서는 당시 전사한 국군의 유골이 다수 발굴된다. 인생의 꽃을 피울 청년기에 산하해간 이들의 유골을 수습하고 위로하는 일은 국가가 해야 할 당연한 의무이다. 그러기에 최근 우리 정부가 한국전쟁 당시 국군의 유골을 수습하는 일에 의욕적으로 나서는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굴하고 우리 정부의 국군 유골 중심의 수습 작업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전쟁 당시 죽은 자는 국군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3년간 진행된 한국전쟁 시기 우리와 직접 총을 겨눈 중국군과 북한군은 물론이고 우리를 도우러 온 미국을 위시한 16개 참전국 군인들도 다수가 희생되었다.

희생된 것은 직접 총을 들고 겨눈 군인들만이 아니다. 약 100만명에 가까운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19449년 10월 이승만 정권은 남한 내 공산주의 세력 약화를 위해 과거 좌익에 몸담았던 사람들을 전향시킨다는 목적으로 ‘국민보도연맹’을 전국적으로 결성시켰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보도연맹원 및 요시찰 대상자 중 많은 수가 예비검속되었고 재판도 받지 못한채 학살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대구형무소의 재소자들과 함께 1950년 7월 중하순 무렵부터 8월 중순까지 경산 코발트광산(경산시 평산동 산42-1) 등지에서 군경에게 집단사살된 사건이다. 이외에도 미군에 의한 노근리 쌍굴다리 학살과 국민방위군 사건 등으로 수 많은 민간인들이 전쟁 중 희생되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2천여명의 유골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 제2수평갱도(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2천여명의 유골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경북 경산시 평산동 코발트광산 제2수평갱도(2014.10.2)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4?19로 열린 공간에서 진행되었던 민간인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 작업은 5?16으로 좌절되었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꾸준히 진상규명 사업이 진행되어 ‘거창사건 추모공원’, ‘산청?함양사건 추모공원’, ‘노근리 평화공원’ 등이 조성되어 억울한 죽음을 위로하고 있다. 즉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직접 총을 든 군인만이 아니라 전쟁의 과정에서 희생되었던 민간인들 역시 국가가 명예와 신원을 회복한 것이다.

물론 일부에서는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진상규명 시도를 북한의 남침으로 대한민국 공산화를지지, 옹호, 추구했던 좌익들의 명예회복을 겨냥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등 이념적 잣대로 바라보는 자들도 있다. 또한 대한민국을 위해 산화한 사람들의 시신도 다 수습하지 못했는데 논란이 있는 사업을 굳이 해야 하느냐고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미 서로 총을 겨눈 대상인 소위 적군의 시신도 수습해 묘지를 조성해주고 있다. 거기가 어디냐고?

화해와 상생의 공간 적군묘지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답곡교차로 인근에 위치한 파주적군묘지(공식 명칭은 북한군 중국군 묘지)는 본국으로 송환되지 못한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를 모아 1996년 조성한 곳이다. 파주적군묘지는 남방한계선으로부터 불과 5km 떨어진 곳에 있다.. 1, 2묘역으로 나눠 북한군 709구와 중국군 255구를 포함해 수해 때 떠내려 온 북한 주민의 유해 등 1080구가 묻혀 있다. 방치되어 있던 이곳을 정부와 군은 2012년 재단장했다.

제네바 협정 제 120조에는 ‘자기 측 지역에서 발견된 적군 시체에 대해 인도·인수에 대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이 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우리 영토에서 수습 혹은 발굴된 적국 병사의 유해는 송환 이전까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매장하는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 파주 적군묘지의 조성과 재단장은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부쩍 늘어난 중국인 관광객들의 발걸음도 재단장의 이유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중국에 중국군 유해 송환제의를 하였고 이에 대해 중국의 한 언론이 ‘지원군(중국군) 유해를 잘 대해준 것은 역사의 상흔을 어루만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제목의 기사로 박 대통령의 제안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그러기에 더욱 아쉬움이 있다. 우리와 직접 싸운 중국군의 유해도 수습하여 묘지를 조성하고 그 죽음을 위로해주었는데 전쟁시기 국가의 잘못된 판단과 폭력으로 인해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는 그야말로 국가가 당연히 수습하고 그 유족들은 위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뼈에는 적도 아도 없고 파랭이도 빨갱이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준비하는 DMZ평화공원 조성도 그 첫출발은 어쩌면 한국전쟁 당시 치열했던 백마고지를 비롯한 고지전에서 죽어간 국군과 인민군, 중국군의 유해를 공동발굴하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이다. 박근혜 정부는 더 이상 한국전쟁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경산코발트와 진주 등의 민간인 희생자의 유골을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11월 9일이 지나면 다시 갈 곳 없이 콘테이너 박스에서 방치되어야 하는 유골을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 시급히 유족들과 대화를 통해 진상규명과 함께 유골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적절한 공간을 조성해야 할 것이다.

대구시도 이 문제를 더 이상 눈감고 있어서는 안된다. 이는 단지 억울한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과거로부터의 고통스러운 성찰을 통해 우리가 보다 인간이 인간답게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한국전쟁 당시 전전선에서 죽어간 국군과 유엔군, 북한군과 중국군은 물론이고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등 모든 희생자의 유해를 정성껏 수습하고 그 원혼을 위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뼈에는 적도 아도 빨갱이도 파랭이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방치되어 있는 유골을 수습하는 것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사회가 잘못된 과거로부터의 성찰을 온전히 하려면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서가 정리위원회가 다시 설립되어야 한다.

2005년, 여야 합의로 여야 합의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줄여 진실화해위)가 만들어졌고, 과거사 진실 규명 활동이 이루어졌지만 이명박 정부 이후 활동이 중단되었다. 전국적으론 6742건의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지만 민간인희생자가 100만 명에 이른다는 주장이 있고 보면 턱없이 부족한 수치다. 이를 제대로 밝히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법률’이 만들어져 개별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건에 대해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 회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김두현 칼럼]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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