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영화 11년, 동성아트홀 영사기는 멈춰야 했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2.25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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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상영 후 폐관, "운영난"...영진위 지원 끊기고 지자체도 후원 거부, 대안 못찾아


25일 대구 중구 동성로1가 22-1번지 한 빌딩 3층. 대구지역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 매표소에는 오전부터 직원들과 손님 몇몇이 얘기를 나누고 있고 영화 포스터 수 백장이 붙은 복도에는 카메라를 든 기자들과 시민들이 곳곳을 촬영하고 있다. 계단으로는 더 많은 시민들이 올라오고 있다.

오후 2시 일본 예술영화를 상영하고 있는 동성아트홀의 유일한 스크린 앞에는 관객 4~5명이 앉아 영화를 보고 있다. 캄캄한 극장안을 비추는 영사기에 따라 관객의 시선은 앞을 향했다. 다음 영화를 보기 위해 티켓을 끊고 복도에서 커피를 마시며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는 관객들은 멀티플렉스 영화관만큼 화려한 시설은 없어도 곳곳에 영화에 대한 애정이 묻은 극장 안을 천천히 둘러봤다.

대구지역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극장'(2015.2.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유일한 예술영화전용관 '동성아트홀극장'(2015.2.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직원들은 평소와 같이 한 평 남짓한 매표소 안에서 점심 식사를 했고 관객들에게 티켓을 끊어줬다. 그러나 대화 내용은 평소와 다르다. 집기와 시설물 등을 언제 옮기는지 철거 일정을 말하고, 언제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지 등 우울한 말 뿐이다. 복도에 붙은 상영일정표도 25일 날짜를 끝으로 멈췄다. 동성아트홀의 운영 마지막 날 풍경이다. 극장은 지난 11년동안의 역사를 뒤로하고 이날 문을 닫는다.

동성아트홀 프로그래머 남태우(49)씨는 25일 평화뉴스와의 통화에서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탈락 후 자구책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어떤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며 "월세와 인건비 등 매월 4백만원 적자로 심각한 운영난을 겪어 더 버틸수 없다고 판단해 25일 폐관한다"고 밝혔다. 남씨는 지난 23일 동성아트홀 공식카페 동성아트홀릭에 '2015년 2월 25일 폐관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이에 따라 동성아트홀은 이날 저녁 8시 30분 영화 '갓 헬프 더 걸'을 마지막으로 상영하고 문을 닫는다. 오는 26일부터 3월초까지는 극장 집기와 시설물 등을 철거하고 완전히 건물을 비울 예정이다.

11년만에 문을 닫는 동성아트홀. 매표소의 마지막 모습(2015.2.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1년만에 문을 닫는 동성아트홀. 매표소의 마지막 모습(2015.2.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남씨는 "영진위 지원금이 끊긴 뒤 재지원을 요청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대구시와 중구청 등 지방자치단체도 후원 등 도움 요청을 거부했다"며 "마지막 기대를 걸었는데 립서비스로 그쳤다"고 했다. 또 "시민단체들이 사회적기업 전환 등 대안을 제시했지만 실패했고, 후원인 모집 방안도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민간 사업자 인수도 논의됐지만 의견차로 틀어졌다"고 설명했다.

오는 4월 영진위의 전국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금 심사에 대해서는 "제도가 얼마전 개편돼 동성아트홀은 지원을 해도 탈락 가능성이 높고 지원금도 연간 6천만원을 지원하던 이전보다 절반 줄어 또 운영난을 겪을 것"이라며 "프로그램 편성권 침해도 심각해 재지원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남씨는 "지난 6개월간 동성아트홀명맥을 이어가려 노력했지만 무관심과 홀대로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며 "11년 동안 대구에서 예술영화를 상영하며 영화 다양성을 위해 노력한 동성아트홀을 잊지 말아달라"고 했다. "혹시 인수하실 분이 있으면 동성아트홀릭(cafe.daum.net/dsartholic)으로 연락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성아트홀에서 상영한 영화 포스터 수 백장이 복도에 붙어 있다(2015.2.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동성아트홀에서 상영한 영화 포스터 수 백장이 복도에 붙어 있다(2015.2.25)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동성아트홀은 2004년 배사흠(71) 대표가 문을 연 뒤 배 대표의 부인 박영자(70)씨와 아들 배혁수(41)씨 등 3명의 가족이 운영했다. 프로그램과 배급은 대구독립영화협회가 맡았다. 11년간 매일 4~5회 영화를 상영하며 지금껏 모두 2천여편의 예술영화를 상영해왔다. 한 해 운영비 절반인 6천만원 안팎의 지원금은 영진위로부터 받아왔다. 전국 30여곳의 예술영화관들이 이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도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이 늘어 매년 관객이 줄어 자금난을 겪어 왔다. 게다가 지난해 9월 영진위 '예술영화관 운영지원 사업심사' 결과, 동성아트홀은 부산 아트씨어터C&C씨를 포함한 전국 5개 예술영화관과 함께 '운영실적 저조'를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다.  지원금이 끊긴 상태에서 동성아트홀은 올해 건물 재계약도 하지 못하고 결국 폐관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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