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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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상 칼럼] 국민 대표성 위해 법조인 독식과 정치권 입김 막아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교원노조법 합헌 결정을 내리자 그 결론에 관계없이 헌재가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과 같은 헌재는 국민의 가치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동안 행정수도 위헌, 종합부동산세 위헌, 미디어법 합헌, 간통죄 위헌, 통합진보당 해산 등 굵직한 사건마다 촉발되었던 의구심이다.

헌법재판관을 왜 법조인 출신만 해야 하나?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고,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을 포함시키며, 헌재 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 헌법 제111조에 규정된 이런 방식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점에서 비판이 제기된다. 하나는 헌법재판관을 법조인 출신만으로 구성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권이 재판관 인사에 깊이 관여한다는 점이다.

우선, 재판관을 법조인 출신으로 한정한다는 문제가 있다. 법조인은 직업의 특성상 일반 국민에 비해 대체로 보수적인데다가, 재판관으로 선발될 만한 경력을 쌓은 법조인은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어서 은연중 기득권 수호에 무게를 더 두게 된다는 것이 비판의 중요 근거다. 이 점은 특히 행정수도 위헌 결정과 종합부동산세 위헌 결정 때 많이 지적된 바 있다.

법조인 출신 독점에 관한 논란은 독일에서도 있었는데, 중요한 반대론의 근거는 이렇다. 첫째로, 헌법재판 사건은 법관이 흔히 다루는 형사/민사 사건과는 달리 국가적, 시대적 이념성을 띠고 있다. 둘째로, 헌법은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또한, 헌법재판은 이론재판의 성격이 강하다는 이유로 법학자에게도 재판관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재판관 인사에 정치권이 관여하는 것도 문제

뿐만 아니라, 정치권이 관여하기 때문에 국민 대표성이 더욱 훼손된다는 문제가 있다. 위헌 결정을 위해서는 6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재판관 9명 중 5명 정도는 집권세력이 인사를 좌우한다. 그렇다면 집권세력이 지지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위헌 결정이 불가능하며 반대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1명만 더 확보하면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국일보> 2015년 5월 29일자 5면(종합)
<한국일보> 2015년 5월 29일자 5면(종합)

물론 원론대로 정치권이 국민을 잘 대변한다면 정치권이 재판관 인사에 관여해서 나쁠 것은 없지만, 그걸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책 <지혜의 아홉 기둥>에도 정권의 입김이 연방대법원 판사를 임명하는 과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국민참여형 재판처럼 법률적 판단은 법관 자격을 가진 사람이 하더라도 가치관에 관한 판단은 국민에게 맡기자고 제안한다. 행정수도 사건에서 헌재는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이 존재한다”고 했고, 이번 교원노조법 사건에서는 “해직교사나 구직자가 교원노조의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해 현직 교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것은 법률 지식이 아니라 국민의 가치관에 의해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추첨으로 구성하는 ‘국민판정단’을 활용하자

국민의 판단을 구하기 위해서 일정한 자격을 갖춘 국민 중에서 100명을 무작위 추첨하여 ‘국민판정단’을 구성하는 안을 제시하고 싶다. 이들이 모여 상당 기간 신중한 토론을 거쳐 합의를 도출하도록 하면 어떨까? 판정단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반년마다 4분의 1씩 교체하면 추첨에 의한 우연한 편중성도 예방할 수 있다. 혹 판정단원에 대한 외압, 회유 등이 염려된다면 안건이 있을 때마다 그때그때 대외비로 추첨해서 구성해도 된다.

무작위 추첨으로 구성하는 국민판정단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염려하는 독자도 꽤 계실 것이다. 염려는 ‘3무론’으로 요약된다. 판정단원 중에는 국가나 공동체에 대한 관심도 없고, 경험과 지식도 없고, 공무를 돌볼 시간도 없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3무론’은 국민참여형 재판에 대해서도 제기되어 왔지만, 이미 여러 나라에서 배심원 또는 참심원을 두는 재판이 잘 운영되고 있는 걸 보면 국민판정단 역시 도입 초기의 적응기만 잘 넘기면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별로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시해 본다.

예상되는 염려 ‘3무론’에 답하자면

첫째로, 공무에 무관심한 사람이 판정단원이 될 수 있다는 문제는, 추첨된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고, 참여도가 낮은 판정단원은 교체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판정단원에게 업무와 무관한 특권을 일체 주지 않고 보수도 일하는 정도에 따라 지급하면 잿밥에 마음을 둔 사람을 막을 수 있다.

둘째로, 경험과 지식의 문제 역시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도 국민판정단을 두는 이유가 전문지식이 아니라 상식을 반영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는 헌법재판소에서 제공할 것이고 언론, 시민단체에서도 온갖 정보를 제공할 것이므로 정보 부족을 염려할 이유는 없다.

셋째로, 자기 일에 바빠서 공무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문제도 보상 체계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판정단원이 공무를 수행하기 위해 생업을 못하는 시간에 대해서는 소속 직장에 또는 (자영업의 경우에는) 본인에게 보상을 하면 업무시간의 일부를 공무에 할애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필자는 국민판정단의 역할을 확대하여 헌법재판 외에도, 국민의 상식적 판단이 필요하지만 국민투표에 부치기 곤란한 각종 쟁점도 다루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4대강 사업이나 국민연금 개혁처럼 많은 국민에게 영향을 주는 정책,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공기관의 인사, 선거구 획정처럼 국회의원의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 등이 있다. 이렇게 하면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완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김윤상 칼럼 63]
김윤상 / 경북대 행정학부 석좌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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