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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길이 없다
[김윤곤 칼럼] 이 따위 시절과 화해할 수도, 방조할 수도 없으니...
2015년 07월 06일 (월) 10:52:23 평화뉴스 pnnews@pn.or.kr

괴담처럼 역병이 돌았다. 아니 역병처럼 괴담이 돌았다. 아니다. 역병과 괴담이 따로, 아니 함께 돌았다. 이도 아니다. 명백한 실제의 상황을 괴담으로, 단지 역병으로만 치환하는 거대한 철벽이 돌았다. 어떤 진실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는, 어떤 진실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는 권력과 돈, 피로 칠갑한 입 씻는 막무가내가 돌았다. 이토록 무지막지한, 무지막지한 것이 이토록 교활 능란한….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만들어낼지, 둘러댈지 오싹하니 두렵다. 공포보다 절망보다 더한 무기력을 숨길 수 없다. 괴담 훨씬 그 이상의 무엇이, 역병 훨씬 그 이상의 무엇이 돌고 있다. 나는 격리돼야 할 그 무엇의 확진 환자인지 모른다.

저들에게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제 사치다. 저들에게는 진실을 보고 들을 눈도 귀도 뚫려 있지 않다. 천안함도 그랬고 이번 메르스 사태 역시 그렇다. 이런 일들은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사태가 아니다. 사실을, 진실을 말하면 간첩으로, 빨갱이로, 종북으로, 배신자로 몰려 죽거나 핍박 받았던 우리 현대사는 온통 이런 거짓으로 뒤틀려 있다. 뒤틀린 현대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기술’로는 점입가경이다. 저들의 눈귀에는 사치일 뿐인 용산참사도, 천안함도, 4대강도, 대선부정도, 세월호도 그리 멀지 않아 도래할 ‘결정적 한 방’을 위해 아껴두고 그저 아주 사소한 것 하나만 이야기하자. 

   
▲ 자료. '메르스(MERS) 포털'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메르스에 관한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메르스(MERS) 포털’ 첫 페이지 ‘메르스 현황(2015년 7월 5일 오전 9시 현재)’에는
치료중 환자수 37명
퇴원 환자수 116명
격리 해제수 15,158명
확진 환자수 186명
사망자수 33명
이라고 공지하고 있다.

격리 해제수는 15,158명이라고 밝히면서, 정작 격리 해제수보다 더 중요한 격리자 수는 밝히지 않는다. (격리자 수는 따로 ‘메르스 발생현황’ - ‘국내 발생현황’ 메뉴로 들어가야 볼 수 있다.) 같은 시각 격리자 수는 982명이었다. 확진 환자나 사망자, 퇴원자 등 질병의 추이를 나타내는 그래프 상으로도 메르스가 확산세가 아니라 소강 쇠퇴국면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므로 격리자가 아직 1천 명에 가깝다는 사실을 현황판에서 누락하거나 공지 제외해야 할 이유는 없다. 불필요한 불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불필요한 불안감이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불안감을 말하는 것일 뿐, 사실을 은폐하거나 고의 누락한다고 상쇄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소하고도 꼼꼼한 솜씨. 역시 저들은 치밀하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숨기고 왜곡하는 악습이야말로 역병의 진원지였다.

너무 많은 거짓과 사기가, 너무 많은 억울과 비참이, 너무 많은 잉여와 필연이 뒤엉킨 시대다. 저 많은 죄악과 죽음을 어떻게 갚으려고, 죄악은 기어이 징벌로 되돌아오고 살인은 때로 살인으로 되돌아오기도 한다는 섭리를 어찌하려고 저토록 무지막지하고 뻔뻔하며 교활한가.

시인은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사유를 단순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건이 갖는 역사적이고 인간적인 복잡함에 부합하는 공정한 판단을 제시한다. (휘트먼의) ‘유령’이 계속해서 지적하듯, 이는 당대의 많은 재판관들과는 다른 방식이고, 그렇기에 시인은 “재판관이 재판하듯” 판단하지 않는다. 그가 언급했듯이, 우리는 햇빛이 “무기력한 것들”에 떨어지는 방식을 떠올림으로써 그의 판단 과정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 (…) 태양이 사물에 내려와 비출 때, 모든 켜와 결을 비추며, 어떤 것도 감추어지지 않고, 그 어떤 것도 인식되지 않은 채로 남겨두지 않듯이 말이다. 이는 시인의 판단이 내려지는 방식과도 같으며, 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인식하게 하고, 또 그것이 우리의 눈에 드러나게 한다. (…) 특히 태양은 대개 어둠에 가려진 무기력한 자들의 상황을 비춘다. 하지만 이 친밀함은 또한 엄중하고, 오히려 가혹하기까지 하다. 휘트먼은 심판을 선선한 그늘이 아닌 햇빛에 비유함으로써, 공정성과 적합성에 대한 시인의 신념이 편향되거나 선호하는 쪽에 치우치지 않고 친밀함은 유지하면서도 개별적인 것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 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177쪽

온통 거짓과 사기술이 횡행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시인이다. 그들이 기거하고 의탁하는 언어 자체가 거짓으로 오염되고 점령당하고 조롱당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집 바닥 곳곳은 싱크홀이 일어나고, 지붕은 중세시대에 제 구실을 못하는 가장에게 내려진 형벌처럼 뜯겨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때로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무엇을 내뱉지 못하고 불 먹은 개처럼 헉헉거린다. 똥구멍이 막힌 것과 입이 막힌 것은 고통의 차원에서 별반 다르지 않다. 세월호 이후 많은 시인들이 겪고 있는 증상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내부로부터 외부로부터 밀리고 밀려 더 이상 내몰릴 데도 없이, 이미 지붕 날아가 망했거나 망하기 직전인 난간 끝에서도 제 아래 제 그림자만 온통 내려다보며 꾸역꾸역 시를 쓰는 이들이 가히 존경스러웠다.
마사 누스바움이 휘트먼의 시를 들어 시인은 ‘재판관처럼 재판하지 않는 재판관’이라고 말한 것은 모든 사물의 켜와 결을 햇빛처럼 드러내는 언어의 힘을 찬양한 것이리라. 그러나 이미 자본과 권력, 거짓과 거짓에 의해 오염되고 점령되고 파편화한 우리의 언어와 정신은 더 이상 진실을 보려 하거나 말하지 않는다. 막힌 철벽 밖이 아니라 막힌 철문 안쪽에서 뭐라고 뭐라고 잘 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밀릴 데가 없는 이는 제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방을 날려야 한다는 점이다. 똥구멍 막히듯 목구멍이 막혀 헉헉거리는 시인들이여, 최후는 아니더라도 한 방을 날리자. 대체 이 따위 시절과는 화해할 수도 동행할 수도 침묵으로 방조할 수도 없으니. 달리 길이 없다.

   





[김윤곤 칼럼 7]
김윤곤 / 시인.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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