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에 숨져 무덤도 없이 65년..."이제는 진실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5.07.3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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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위령제] 10월항쟁·보도연맹·가창골..."특별법 제정"


무덤도, 이름도 없이 벌써 65년의 세월이 지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자식들은 이미 살아생전 부모님의 나이를 훌쩍 넘겼다. 희끗희끗한 머리카락만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지만 아픔은 여전하다. 

1950년 한국전쟁 전후 이승만 정부의 집단 민간인 학살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합동위령제가 열렸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대구경북유족회'와 대구시는 31일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댐 수변공원에서 '제65주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보도연맹·가창골 희생자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유가족들을 포함해 시민단체 활동가와 정당인, 공무원 등 80여명이 참여했다. 

'제65주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합장을 하는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2015.7.31.가창댐 수변공원)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제65주기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보도연맹, 가창골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합장을 하는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장(2015.7.31.가창댐 수변공원)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가창골은 1950년 전후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사상범들이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 7일부터 31일까지 2차에 걸쳐 군과 경찰에 의해 1만여명이 학살당한 곳으로 남한 최대의 학살터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가창댐이 들어서 대부분 수몰돼 유골발굴은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유족회는 상징성 있는 이 곳에서 매년 위령제를 한다. 대구시는 2013년부터 공식적으로 위령제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권영진 시장이 참석해 추도사를 할 예정이었으나 '개인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위령제는 허맹구 '포항 한국전쟁 유족회' 회장 사회로 오전 11시부터 1시간가량 진행됐으며 채영희 '10월항쟁유족회' 회장의 분향과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이사, 김상숙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관의 헌화로 이어졌다. 양용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전국유족회' 상임대표와 박의원 '대구경북유족회' 의장이 추도사를 했고 김선희 유족회 운영위원이 유족결의문을 낭독했다. 이어 참가자들은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위패에 술잔을 올리는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이사(2015.7.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위패에 술잔을 올리는 나정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이사(2015.7.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946년 대구 10월항쟁에 가담하기 위해 집을 나선 아버지 채병기씨를 잃은 채영희(71) 10월항쟁유족회장은 "국가폭력에 부모님을 잃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고 연좌제란 주홍글씨를 이마에 달고 살았다"며 "매일 피눈물을 훔치며 살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해방된 조국에서 자주 독립 국가를 세워 평화로운 삶을 기대한 민중들의 바람은 부서졌고 아픔은 여전하다"며 "잘못된 국가폭력에 시한은 없다. 과거사특별법을 제정해 이제는 진실을 밝혀 모든 아픔을 씻어야 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대구보도연맹유가족회 부회장 김영호(66)씨도 아버지의 얘기에 눈물을 흘렸다. 김씨의 아버지는 김씨가 2살이던 1950년 7월 8일 국민보도연맹사건에 연루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 생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던 가족들은 아버지가 갈 만한 장소를 샅샅이 찾았다. 그러나 같은 달 30일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가창골에서 학살됐다는 신문 보도에 김씨 아버지 이름이 나왔다. 벌써 65년 전 얘기다.

김씨는 "정부가 보도연맹에 가입하라니까 평범한 시민들이 가입했는데 빨갱이라고 죄 없는 아버지를 국가가 끌고갔다"며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밝혀지지 않은 희생자들을 찾기 위한 작업이 필요하다. 국가폭력의 진실은 국가가 반드시 밝혀야 한다. 특별법 제정이 그 시작"이라고 했다.

이날 합동위령제에는 유족 등 80여명이 참석했다(2015.7.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이날 합동위령제에는 유족 등 80여명이 참석했다(2015.7.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그러나 이날 위령제에서 처음으로 애국가를 제창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면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유족 김모(82)씨는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위로하는 위령제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경례하는 것은 영령을 모독하는 행위"라며 "안하던 짓을 한다. 불편하다"고 말한 뒤 위령제 중 자리를 떠났다.

한편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에 따르면, 10월항쟁에 참여한 시민들은 보도연맹에 강제가입돼 경찰의 주요 사찰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좌익정치범으로 몰려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집단적으로 학살되기도 했다. 특히 대구에선 50년 6~9월에 가창골, 경산코발트광산, 앞산빨래터, 학산공원, 신동재, 파군재 등에서 학살이 집중된 것으로 유족회는 보고 있다. 대구형무소 수감된 재소자 2~3천여명과 전국 각지에서 잡혀온 보도연맹 관련자 5~8천여명 등이 이곳에서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능화사 혜강스님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영가를 부르고 있다(2015.7.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능화사 혜강스님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영가를 부르고 있다(2015.7.31)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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