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빅3 '마트'에 노동자 위한 '단일노조' 물꼬 튼다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 입력 2016.04.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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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산업노조준비위 "대구 조직율 11% 불과...더뎌도 함께 처우개선"


"여사님 코너 정리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지금 가고 있어요"


은색 카트에 가득 담긴 세제통. 물품창고에서 한가득히 실은 알록달록한 세제통이 카트 진동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앞치마에 재고량을 체크한 시트지와 볼펜을 넣고 카트를 움직이는 몸이 바쁘다. 주말 저녁 10시 30분. 장을 보는 가족들과 연인들의 밝은 표정들 사이로 은색 카트는 달린다.

물건을 정리 중인 대구의 한 대형마트 여성 노동자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물건을 정리 중인 대구의 한 대형마트 여성 노동자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17일 대구지역 한 대형마트 협력업체 파견직원 40대 여성 김인숙(가명)씨는 3교대 야근 중이다. 폐장 시간을 얼마 남겨놓지 않아 정신이 없다.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체조를 하고 좁은 사무실에서 옷을 갈아 입은 뒤 속으로 되새겼다. "잘하자. 혼나지 말자" 아이들 학원비라도 보태기 위해 입사한 지 2년째  매일 긴장의 연속이다. 주말, 공휴일, 명절도 없이 3교대 하느라 아이들 얼굴 볼 시간도 빠듯하다.

몸이 아프거나 집안 대소사로 결근해야 할 때도 있지만 대체근무자를 구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빠지기 힘들다. 오늘같은 폐점 시간에는 재고정리를 하느라 날을 샌다. 로스(상품 부족현상)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매대 정리를 부탁하는 관리직원의 목소리에만 집중한다.  

근무 시간 내내 서서 일하느라 앉을 시간도 없다. 손가락, 팔목, 허리, 무릎, 발목. 저리지 않은 곳이 없다. 힘든 노동에도 시급은 2016년도 법정최저임금인 6,030원보다 고작 120원 많은 6,150원. 초과근무수당은 당연히 없다. 다른 마트 '여사님'들도 사정이 비슷하다니 그냥 참을 뿐이다. 답답함에 노동조합에 하소연하고 싶어도 들어줄 노조는 없다. 가입한다는 생각도 해본적 없다.   

국내 빅3 대형마트 중 업계 1위인 이마트(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국내 빅3 대형마트 중 업계 1위인 이마트(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역 빅3 '대형마트'에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단일노조 설립의 물꼬가 트였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이마트(위원장 전수찬)·홈플러스(김기완)·민주롯데노조(김영주)가 참여하는 '마트산업노조 준비위원회'와 '민주노총대구지역본부(본부장 권택흥)'는 15일 민주노총대구본부에서 대구 빅3 마트 산별노조 설립 간담회를 열었다. 올해 3월 서울에서 출범한 뒤 지역에서는 대구가 첫 간담회다.

이들은 "우리나라 50만여명 마트 노동자들은 고된 육체노동과 힘겨운 감정노동에 내몰린 상태"라며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정당한 처우개선을 위해 빅3 마트 노조를 단일화하는 산별노조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산별노조를 통해 유통대기업의 위법적 노조탄압을 막고 마트의 각종 비정규직 노동3권을 지키겠다"며 "대구를 시작으로 지역사회 노동자들과 연대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구에는 홈플러스 9개, 이마트 8개, 롯데마트 1개 등 빅3 마트 18개 점포가 있다. 노조지부가 있는 곳은 2곳으로 대구 마트 노동자들의 노조 조직율은 고작 11%에 불과하다. 특히 빅3 중 노조가 아예 없는 곳도 있다. 광주, 전북에 이어 꼴찌 수준이다. 전국에는 모두 4백여개의 빅3 마트가 있다.

대구에서 가장 매장이 많은 대형마트 홈플러스(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에서 가장 매장이 많은 대형마트 홈플러스(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점포 1곳의 평균 직원수는 700명으로 대구 전체 마트 노동자는 1만여명에 이른다. 이 중 80%가 여성 노동자로 협력업체와 하청업체 파견직, 임대 매장·수수료 매장·마트 관리직원 등 고용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누가 정규직이고 누가 비정규직인지 같은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알 수 없다.

또 노조가 있는 곳도 있지만 정규직만 가입할 수 있고 비정규직은 가입할 수 없는 곳이 있는가하면, 사측 입김에 따라 단체협약을 맺는 '어용노조'도 있다. 협력업체 파견직원들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한 곳도 있지만 조합원이되면 그날부터 '관리대상' 명단에 오르는 불이익을 감수해야한다. 그 결과 대구 마트 노동자들이 노조를 통해 실질적으로 권리를 보장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현재 대구에 있는 롯데마트는 동구 율하점 밖에 없다(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현재 대구에 있는 롯데마트는 동구 율하점 밖에 없다(2016.4.17) / 사진.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때문에 준비위는 "함께 살자 함께 웃자"를 슬로건으로 올해 안해 '마트산업노조'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4대 과제는 ▷건강권 보장, 휴게실 개선, 감정노동 보호, 현장 노동안전 보장 ▷최저임금 1만원 인상, 명절·의무휴일·의무휴업(월 2회→4회) 확대, 심야영업 제한 ▷협력업체 갑질 중단, 파견직 권리보호와 정규직화 , 불법파견 근절 ▷노동3권 보장(노조탄압 중단, 노조활동 개입·감시 중단) 등이다.

정민정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교육선전국장은 "유통업체들은 마트 노동자의 노조활동을 감시, 도청, 사내 왕따로 방해했다"며 "살기 팍팍해 마지막으로 찾는 노조도 하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단일노조를 만들어 함께 싸워야 한다"면서 "더뎌도 함께 처우개선을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용순 민주노총대구본부 비정규사업국장도 "마트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단일노조를 만들자고 전국적 바람이 모였고 대구도 시작 단계"라며 "빠른 시일 내에 만들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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