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가 더 고된 노동자들

평화뉴스
  • 입력 2013.09.2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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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ㆍ고속버스ㆍ학교경비 노동자..."소외된 계층, 언론이 보듬었으면"


"1년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말에 한숨 쉬는 분들은 없을까요?
"1년 365일이면 정말 죽을 것만 같다"고 하소연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국가인권위 소속 인권 강사로 활동하면서 다양한 수업자료를 만들었는데요. 가장 중심에 둔 화두가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 입장 바꿔 생각해보기, 다르게 생각하기' 등이었고, 인권 수업시간에 공감대가 높았던 자료는 '기존 동화 또는 교훈을 인권 관점에서 바꿔보기'였습니다.

몇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정창권 선생은 <세상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다>에서 '심청이는 불효녀일 가능성이 높다'며 장애인권 관점에서 심청전을 재해석합니다.

'백설공주'를 일곱 난쟁이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동화에서는 왕자의 키스에 공주는 행복해하며 떠나지만 이를 난쟁이 관점에서 본다면 "기껏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나 버렸다. 정말 억울하다"는 그들의 하소연이 담겨져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근면, 성실을 나타내는 속담 즉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를  벌레의 관점에서 해석하면 "일찍 일어난 새 때문에 운명 대로 못살았다", "평소대로 늦잠 잤더라면 더 살 수 있었을텐데" 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1년 365일 추석이라면, 정말 죽을 것 같다(?)"

세상을 보는 다양한 관점, 이 시각으로 추석 연휴 뉴스를 찾아해봤더니 수십년째 변화없는 화두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더군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화두 속에 ▲귀성 귀경 인파의 모습, ▲가족들이 함께 차례 지내는 사진, ▲ 명절 준비를 위해 전통시장 또는 대형마트 등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 ▲ 명절 휴유증, ▲ 그리고 정치인들이 '민심탐방'이라는 미명하에 시장 상인들과 다소 어색(?)하게 찍은 사진 등.

대부분이 추석 명절을 직간접적으로 즐기시는 분들이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가위만 같아라', '풍성한 한가위' 등으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1년 365일을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던 조상님들의 화두에 "죽을 것만 같다"고 하소연 하는 분들도 꽤나 많습니다.

<부산일보> 9월 17일자 4면
<부산일보> 9월 17일자 4면
<경향신문> 2013년 9월 23일자 11면
<경향신문> 2013년 9월 23일자 11면

▲ 추석연휴에도 대형마트 과반수 이상이 정상영업을 한 탓에 연휴를 즐길 수 없었던 마트 노동자들, ▲ 평소보다 배차시간이 단축된 탓에 4~5시간 쪽잠을 자면서 귀성, 귀향객을 실어날라야 했던 고속버스 운전 기사분들, ▲ 추석연휴 내내 학교를 지켜야 하는 야간 경비 노동자들. 학교를 벗어나면 '근무지 이탈'로 일당이 삭감되기 때문에 꼼짝없이 학교에 묶여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추석을 즐기는 귀성, 귀향객의 관점에서 뉴스가 작성된다면 볼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시각에서 본다면 "연휴=고된 노동의 장"이 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삶이 보입니다.

<평화뉴스> 2013년 9월 17일자
<평화뉴스> 2013년 9월 17일자

"주류 여론에 소외되는 계층, 언론이 보다듬었으면"

추석을 비롯한 명절만 되면 정치인들은 '민심 탐방'이라는 화두로 평소에 오지 않던 지역 시장과 번화가를 방문해 비슷비슷한 사진을 찍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제안한 이야기 맥과 흐름이 무엇이든 간에 정치인 자기들만의 관점대로 '민심'을 해석해버리고, 여의도로 향하는 KTX에 오르면 그 내용마져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국회활동 결과물 즉 국회를 통과하는 법제도들 대부분이 '서민이 아니라 재벌만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외치는 '거짓, 가짜 민생' 화두를 언론 마져 그대로 지면에 옮긴다는 것은 '진정한 민생정치'라는 화두가 설 자리를 더욱 좁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는 여론의 다양성입니다. 주류 여론에서 소외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외로움을, 힘든 삶을 달래주는 언론이 있어야만 진짜 "민생"이 여론의 또 다른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014년 설이 되면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명절 문화와 풍경을 해석해주셨으면 합니다. 외롭고 소외되고 고통스럽고 자존감 마져 잃어가는 우리의 '민심', '민생'이 언론의 주목 속에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펼 수 있게 말입니다.

 
 





[평화뉴스 미디어창 249]
허미옥 / 참언론대구시민연대 사무국장 pressang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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