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구 '노점' 허용 조례, 상생하자며 강제이동 논란

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 입력 2016.09.0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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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시장 노점상 40여명 3백m 떨어진 외진곳으로 이동 시사 "생존권 침해" / 구청 "오해"


5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지산동 목련시장 입구. 오래된 노점이 200m 가까이 펼쳐져 있다. 노점상인 40여명은 생선, 과일, 채소, 건어물 등을 팔며 짧게는 5년 길게는 30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 

그러나 수성구청이 최근 한 조례를 통해 목련시장을 '거리가게 잠정허용 구역'으로 설정하면서 모순적이게도 노점상인들이 더 이상 이곳에서 장사를 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허용하는 대신 기존 장소에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 과정에 당사자들이 빠져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채소를 다듬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목련시장 노점상(2016.9.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채소를 다듬으며 손님을 맞이하는 목련시장 노점상(2016.9.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노점상인들과 시민단체는 "당사자들의 동의 없는 강제 이동"이라며 "생존권을 침해하는 정화사업을 당장 중단하라"고 주장한 반면, 수성구는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오해"라고 주장했다.

30년째 노점에서 채소를 팔아 온 한 70대 할머니는 "손녀에게 줄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해 손녀가 이제 대학생"이라며 "이제 말 한마디 못하고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눈물을 보였다.

9년째 과일 장사를 하는 이종렬(49)씨도 "상가에서 장사하는 사람들도 우리가 없어지길 바라지 않는다"며 "나한테 오는 손님 따로 있고 가게에 가는 손님 따로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너도 나도 같이 살아가는 것이 상생"이라며 "수성구청이 말하는 대로 목련아파트 뒤쪽으로 이동해 모두 잘되면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노점이 없어지면 죽은 상권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점을 하다 6년 전 시장 내 건물에서 점포를 얻어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60대 여성도 "노점상과 상가상인들은 서로 돕고 산다. 이들이 있어서 손님이 많이 오고 지금 상권이 있게 된 것"이라며 "노점상이 없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상가회 요청으로 다시 허용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고 말했다.

목련시장 도로에 펼쳐진 노점(2016.9.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목련시장 도로에 펼쳐진 노점(2016.9.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대구수성구의회는 올해 4월 수성구 '거리가게 허가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중위소득 80% 이하 ▷본인과 배우자 금융재산 합산 2억원 이하 ▷노점상 영업 1년 이상 등의 조건을 내건 대신 수성구 노점상들의 지위를 잠정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수성구청은 허가 대상자의 자격, 운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거리가게 상생위원회'를 만들었다.

상생위는 김대관 수성구 부구청장, 고재천 도시국장, 안정국 도시디자인과장 등 구청 관계자 3명과 경찰, 변호사, 교수, 디자이너, 경찰 등을 비롯해 목련시장 상가번영회장, 노점상 대표 1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올해 2번의 공식적 만남을 갖고 노점 운영에 대한 사항을 논의했다.

그러나 지산동 목련시장 노점상인들에 따르면, 상생위는 지난 7월과 8월 2달간 노점상들에게 노점을 허용하는 대신 현재 장소에서 300m 가까이 떨어진 목련아파트 뒤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대해 노점상인들은 "일방적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현재 목련시장 노점상은 용학로라는 도로변에 있지만 아파트 뒤쪽은 기존 장소보다 외진곳에 있어 "사실상 정화사업"이라는 것이다.

17년째 건어물 장사를 하는 이모(65)씨는 "40여명 노점상인 중 직접 설명을 듣고 동의를 받은 사람은 없다"며 "몇 달 전 구청 공무원이 '편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점포를 맞춰주겠다'며 이름, 사는 곳, 장사 기간 등을 물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어 "그 동안 아무 말 없다가 얼마 전 단속반이 아파트 뒤에서 장사할 거라고 했다. 급히 알아보니 상생위가 노점상 생존권을 결정하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노점에서 채소를 팔며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2016.9.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노점에서 채소를 팔며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2016.9.5)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한 상인은 "상생위 공무원, 변호사, 디자이너가 노점상 마음을 알겠는가. 다같이 잘 살자고 하는 상생위의 뜻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했다. 또 "상생위에 노점상 대표로 위촉된 사람도 자기가 왜 명단에 올랐는지 모른다"면서 "심지어 노점상도 아니다. 상가에 점포 얻어서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오후 4시 목련시장 노점상인 30여명은 장사를 잠시 접고 목련시장 건너편 공원에 모였다. 이날 저녁 열리는 거리가게 상생위원회와 주민·상인 간의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부정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대구지역장은 "노점상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원 한 명 없는 상생위원회 결정을 동의할 수 없다"며 "당사자들의 반대 의견을 전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 참석을 위해 모인 한 노점상은 "평생 장사를 못할 수 있는데 하루 장사, 추석 대목이 중요한가"라며 "앞으로가 걱정이다. 아무 관련 없는 사람들이 우리 생계를 정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인도에 상가 좌판과 노점 좌판이 함께 펼쳐져 있다(2016.9.5.지산동 목련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인도에 상가 좌판과 노점 좌판이 함께 펼쳐져 있다(2016.9.5.지산동 목련시장) / 사진.평화뉴스 김지연 기자

앞서 지난 1일 반빈곤네트워크, 인권운동연대,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을 갖고 "조례가 노점상 생존권을 짓밟게 되면 조례 취지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며 "수성구청은 허울 좋은 거리정화가 아닌 모두 함께 살고 누구하나 배제되지 않는 열린 행정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정국 수성구 도시디자인과장은 "허가해주지 않는 것도, 아파트 뒤로 보내진다는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날까지 위원회 회의는 두 번뿐이었다"며 "일부 반대하는 상인들에 의해 잘못 알려진 사실로 오해"고 일축했다. 또 "그동안 상인들과의 만남, 현장 방문 등 다양한 방법으로 노점상인들과 20번 가까이 만났다"며 "충분히 설명했고, 찬성하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한편, 수성구청에 따르면 이날 위원회·주민·노점상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9월 중순에서 오는 10월초 쯤 구체적 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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