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허, 메리크리스마스"
성탄절을 이틀 앞둔 23일 저녁 혼자 지내는 두 노인은 어린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잠금장치조차 허술한 은색 철문을 열자 제법 두툼하게 차려입은 강씨(75) 할머니가 산타 복장을 한 8명의 청소년을 반갑게 맞이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 3명과 초.중고생 5명이 성탄절을 앞두고 일일 '몰래 산타'가 되어 외롭게 지내고 있을 차상위계층 노인을 위해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다.
몰래산타들은 할머니의 작은 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두 남매는 강씨 할머니를 위해 오카리나로 '창밖을보라', '징글벨'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띄웠다. 할머니는 한껏 밝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작은 공연이 끝나자 빨간 선물보따리를 멘 청년은 너스레를 떨며 분홍색 수면바지, 머그컵, 손난로, 쌀 10kg, 두유와 케이크 등 간식거리를 예쁘게 포장한 선물을 전달했다.
선물을 하나 둘 전달하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강씨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파란 스카프로 눈물을 훔쳤다. 할머니는 이들에게 "가지 말라"는 말 대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을 했다. 한 청년은 그 말에 "산타 절 받으시라"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건넸다.
청소년 산타는 옆집 김씨(71) 할아버지의 집에도 방문했다. 할아버지는 오카리나 연주에 맞춰 함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산타가 건네는 간식 선물을 받을 때는 "이런 것을 살 형편이 되지 않아 침만 꼴깍 삼켰다"면서도 "나도 선물을 주고싶다"며 주위의 만류에도 받은 음식을 자리에서 함께 나눠 먹었다. 이어 "케이크는 살면서 처음 받아본다"며 아이처럼 좋아했지만 "당 때문에 열흘은 먹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청소년 몰래 산타'는 2008년부터 9년째를 맞이한 '사랑의 몰래산타 대구운동본부'에서 처음으로 열린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선물을 받던 35명의 대구시 동구 효목1동 청소년들이 '우리마을교육나눔사업'을 통해 마을 어르신에게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을 전했다. 총 35명의 청소년과 10명의 대학생 자원봉사단이 참여했고 10명의 마을 독거노인을 만났다.
경북기계공고에 다니는 박승범(17)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선물을 받아왔다. 이번엔 산타가 되어 독거노인을 찾아뵙는다"며 "평범하지만 함께 나누며 살고싶다"고 말했다. 산타복장을 하고 강씨 할머니와 김씨 할아버지에게 자신의 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넨 경북대학교에 다니는 신정윤(25)씨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불편해하지 않는다면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싶다"고 말했다.
한편,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2시에는 2.28기념공원 무대에서 '2016 사랑의 몰래산타 대작전 발대식'이 열리고, 250여명의 참가자가 100개 가정의 아이들을 방문해 선물을 전달하고 이벤트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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