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언관의 자격

평화뉴스
  • 입력 2018.01.0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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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칼럼] 언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 직분에 충실하면 된다


지난날 근무시간 중에 낮술을 많이 마셨는데 퇴직 후 공부하면서 그 상황을 대입해보니까 물론 나 자신부터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경우 낮에 시작한 음주는 밤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기관단체장이나 간부, 언론담당들도 근무시간 중 음주해도 된다는 규정이 없으므로 모두 자격은 없다. 기자를 내세우더라도 설득력은 떨어진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기자는 근무시간 중 낮술을 마셔도 되는 직업이었다. 국상 중에도 기자에게는 음주가 허용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기자는 지부극간(持斧極諫), 곧 도끼를 지고 들어가 간쟁하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면 그 도끼로 죽임을 당하겠다는, 그런 각오가 되어있는 언관(言官)이어야 한다. 적어도 순지거부(順志拒否: 임금의 뜻이더라도 옳지 않으면 거부함), 삼간불청즉거(三諫不聽則去: 세 번 간해도 듣지 않으면 물러남)의 자세는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피혐(避嫌)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피혐이란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할 때, 비판이나 탄핵을 받을 때, 동료들로부터 신임을 얻지 못할 때, 자리에서 즉각 물러나는 것을 뜻한다.

사원이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사원이 그 높은 자리에 오른 사장을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보통 말한다. 개인기업이라면 충분히 맞는 말이다. 사장이 잘못이면 사원이 떠나면 되는 구조다. 그런데 공론을 다루는 언론사만은 그게 아니다. 언론사는 사원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면 사장은 지체 없이 퇴진해야 하는 구조다. 사원 또한 함부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지 않는다. 퇴진 요구를 받았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퇴진할 이유는 충분하다. 언론사다운 언론사라면 그러하다는 얘기이다. 사장이 언론을 사유물로 여기고 사원들도 그런 성향의 사장에게 충성하는 언론이라면 그것은 언론이 아니기에 예외 항목에도 넣지 않아도 될 터이다. 옳은 언론이라면 절대로 사장 개인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진 위) 2017년도 국정감사장에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2017.10.26 대구지방국세청) / (아래) 대구MBC·KBS노조 공동 파업콘서트(2017.10.13.대구백화점 앞 야외광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사진 위) 2017년도 국정감사장에서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2017.10.26 대구지방국세청) / (아래) 대구MBC·KBS노조 공동 파업콘서트(2017.10.13.대구백화점 앞 야외광장)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퇴진을 요구해도 잘 나가지 않는 대형 언론사가 많다. 공영방송인 엠비씨의 사장은 사원들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하고도 퇴진하지 않고 버티었다. 방문진의 해임 결정이 날 때까지였다. 버티는 게 누구를 향한 반항 또는 누구를 향한 미덕처럼 끝까지 버티었다. 사장이 버티기 전에도 그러했지만 버틸 때는 더욱 피폐해졌다. 한 때 국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뉴스보도를 해온 방송사가 엠비 이후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신뢰도는 하락할 대로 하락했다. 엠비씨 사장에 최승호 해직 피디가 취임하면서 엠비씨는 며칠 계속 과거 불공정 왜곡 편파 보도에 대해, 궤도일탈의 잘못을 밝히며 사과방송을 하고 있다. 사장답지 못한 언론사 사장이 해임된 방송사의 달라진 모습이다. 엠비씨 지역방송사들도 종전과 다른 화면을 선보이고 있는 가운데 지역사 사장들의 운명도 해임 또는 사임으로 잡혀가고 있다. 

케이비에스 또한 사원들이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장기 파업중이나 사장은 아직 버티고 있다. 뉴스신뢰도가 추락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진정 언론인이라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추락하여도, 사원들은 퇴진을 요구하며 차라리 업무를 정지하고 있는데도 사장은 목석처럼 가만히 있다. 뉴스신뢰도가 엠비씨 케이비에스 합쳐도 신생 종편 제이티비씨의 절반도 안 되는 수모를 외면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 케이비에스도 이제 강아무개 케이비에스 이사 해임이후 사장퇴진에 속도가 붙고 있다.       

부산의 국제신문 사장은 좀 다른 경우로 퇴진을 요구받아왔다. 국제신문 사장은 12월 22일 배임수재 횡령 공갈 등의 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3월부터 국제신문 사원들은 언론사의 사장으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혐의의 사장에 대해 사퇴를 촉구했다. 국제신문 사우회, 부산 시민단체도 즉각사퇴와 법정구속을 촉구했다. 할 일 많은 법원이 언론 몫인 공정성 공공성 중립성과 같은 저널리즘의 원칙을 거론하며 법적제재를 가하는 데에 길고긴 시간이 흘렀다. 국제신문 사원들은 ‘엘시티 비리 국제신문 사장 차승민씨 징역2년 법정구속’이란 기사를 실었다.     

<국제신문> 2017년 12월 23일자 1면
<국제신문> 2017년 12월 23일자 1면

언론사 사장 퇴진은 능사도 아니고 유행도 아니다. 단지 언론사 사장은 언론사 사장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 말이 쉽지 실천하자면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 아닐 것이다. 경영수익과 진실보도는 때때로 상충되며 갈등을 야기한다. 기사와 광고는 이질적이면서도 밀착의 유혹을 던진다. 실제로 광고 없는 기사 없다, 협찬 없는 기획물 없다는 자조도 들린다. 그러나 경영수익, 광고, 협찬 등은 언론과 이웃할 뿐 그런 것은 언론이 아니다. 그런 것에 물들면 유사언론으로 추락한다. 독자는 그런 유사언론을 늦더라도 배척한다. 
    
임금이 전제통치하던 조선조에도 언관은 임금의 뜻이더라도 잘못되었으면 거부하는 언행을 하였다. 언관의 언행은 역설적으로 임금의 눈과 귀가 되는 것이었다. 통치이념인 왕도정치, 민본정치는 임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게 아니라 민본을 위해 거슬러야 할 때 거슬리게 말하는 것이다. 그게 언관의 언론윤리였다. 그리고 언관의 간쟁을 받아들이고, 물 흐르듯 따르는 게 군주의 언론윤리였다. 조선조 후기 대간제도가 붕괴되기 전까지 언관은 살아있었다. 언관다운 언관이 살아 있고, 언론이 살아있을 때 나라도 살아있었다.      

홍아무개가 이상해졌다 말한 엠비씨 아홉시 뉴스데스크를 보면서 격세지감을 갖는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다. 언론이 어느 때보다 큰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공정성, 중립성, 객관성, 불편부당성, 그리고 교수들이 뽑았다는 파사현정,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덕목이 넘친다. 직분에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올해는 많은 언관들이 근무시간 중 낮술 마실 자격을 갖추길 바란다. 마시자 한 잔의 술!

(참고논문: 이규완(2009), 조선왕조의 언론윤리 체계에 관한 시론, 한국언론학보 53권1호)





[유영철(兪英哲) 칼럼 14]
- 전 영남일보 편집국장(2003~2005)
- 동아대학교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2008)·박사(2013)
- 저서 :『신문칼럼 작법』(2015), 『기자이상의 기자 기자이하의 기자』(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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