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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씁쓸한 뒷맛
[김윤상 칼럼]
2019년 06월 28일 (금) 11:11:16 평화뉴스 pnnews@pn.or.kr

5월 25일 제72회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에 앞서 21일 밤에는 칸 영화제 메인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에서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는데 영화가 끝난 후 3천 명 관객들이 8분 여간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어려운 경제와 짜증나는 정치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큰 위안을 준 쾌거였다. 관객 1천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마음은 그리 흔쾌하지 않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씁쓸한 뒷맛 두 가지만 같이 나누고 싶다.

제목이 왜 '기생충'인가?

우선 영화 제목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기생충은 숙주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빈민 중 그런 인물은 지하실에 숨어 살아온 단 한 사람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부자가 원하는 일을 해주고 그 대가를 받았으니 기생충이 아니다.

영화 제작진의 작명 실수가 아니라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빈곤층은 독자적으로 살 수 없고 부자가 있어야 뭔가를 얻어먹고 살게 되어 있으므로, 설령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다고 해도 부자에 기생하는 존재라고. 그러나 이건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거꾸로, 부자가 빈민 덕에 가사와 운전 등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부자가 기생충이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부자든 빈민이든 시장질서 속에서 교환관계 또는 보완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해야 옳다. 그렇다면 ‘기생충’이라는 제목은 잘못 붙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부잣집 일자리를 놓고 가난뱅이가 다른 가난뱅이를 밀어내는 야비한 자리싸움을 보여준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빈민끼리 다투는 ‘수건돌리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면 제목을 ‘수건돌리기’가 아닌 ‘기생충’이라고 했기에 상도 받고 기립 박수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부자가 빈민에게 못 되게 구는 장면도 없고, 빈부 계층 간의 적대적 갈등도 없고, 심지어 빈민이 “부자는 착하기까지 하다”고 말하는 대사가 나온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뤼미에르 극장 관객의 다수가 부자이거나 적어도 빈민과 일체감을 느끼지는 않는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빈부가 대조되는 영화를 보면서도 그들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되고 오히려 책임을 빈민 쪽으로 돌릴 수 있다. 이렇게 힐링(?)을 주는 영화이므로 아낌없이 표를 주고 박수를 친 것은 아닐까?

   
▲ 영화 <기생충> 포스터

칸 영화제가 열린 프랑스 등 유럽의 기득권자들은 이민, 난민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심정이 편치 않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도 멕시코 불법이민을 막는다면서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고 있다. 이들의 눈에는 이민과 난민이 기생충으로 보일 것이다. 영화 내용과 다른 ‘기생충’이란 제목이 영화의 성공에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필자의 오해이기를 바란다.

기우의 꿈은 실현될까?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송강호 분)은 부잣집 박 사장의 승용차 기사 일을 하다가 끝 무렵에 박 사장을 죽이게 되지만 도망치지 못하고 그 집 지하실로 숨어들게 된다. 그러자 아들 기우는 언젠가 자신이 그 집을 매입하여 아버지를 지하실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온 식구가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대학 문턱도 못 넘어본 기우의 다짐이 실현될 것으로 생각하는 관객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시장경제를 과신하는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지배한 1980년대 이래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계층 간 이동이 더욱 어려워진 현실을 체감하기 때문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불평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많다. 그런데 이 점 필자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진정한 시장경제에서는 생산에 기여하는 정도에 따라 분배 몫의 크기가 결정되며, 개인의 생산 기여도는 주로 노력과 능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노력과 능력의 개인차는 현실의 불평등만큼 그렇게 심하지는 않다는 게 우리의 상식이다. 사람의 키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과 같다.

여기에 운이 추가되더라도 기우에게 불리하지 않다. 운은 무작위로 발생하기 때문에 여러 세대에 걸쳐 특정 계층에만 편중되게 작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기우한테 행운이 닥칠 확률은 다른 사람과 같으므로 오히려 기우의 계층 상승이 쉬워질 수 있다. 이렇게, 진정한 시장경제에서는, 상속으로 인한 불평등만 해소한다면, 대를 이어가며 빈부 격차가 고착화되거나 확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현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진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하지 않는다고밖에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시장 작용이 아니라 특권, 차별, 배제 등 사회경제적 권력 관계,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갑-을 관계’가 분배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옹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현실을 방치하면 시장경제가 아니라 정글경제가 되고 만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극히 꺼리지만, 부당한 사회 구조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주체로 공권력을 가진 정부 외에 누가 있는가? 물론, 필자가 정부 만능을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정부는 공권력을 갖고 있어 위험하므로 철저하게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를 염려하여 현실을 방치하자고 하는 주장은 수사기관이 권한을 오남용할 위험이 있으므로 도둑을 방치하자는 말과 같다.

정부의 우선적인 역할은 시장을 시장답게 만드는 일, 선수들이 공정하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갑-을 관계’ 없는 평평한 운동장을 조성하는 일이다. 이런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풍토에서 돈도, 학벌도, 권력도 없는 기우가 계층 상승을 이루어 아버지를 구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이 역시 씁쓸하다.

   
 





[김윤상 칼럼 81]
김윤상 / 자유업 학자, 경북대 명예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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