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보수와 진보의 싸움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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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동 칼럼] "과거의 반민주, 반헌법적 사고방식을 계승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현실에서"


 SNS에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인가 진보인가를 테스트하는 설문이 있어 몇 가지 답을 해보니 나의 성향은 중도보수 정도인 것으로 나온다. 시골 출신에다 엄혹한 박정희 시대에 교육을 받고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기는 힘들 것이다.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머리에 각인시키면서 자란 우리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아무리 자신의 노력으로 진보적인 사상을 습득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하나의 제스추어에 그칠 뿐이지 그 사상이 몸과 마음을 깊은 곳에서부터 지배하기는 어렵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싫어하여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탄핵을 촉구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사람들이 나를 진보적이라고 평하는 것은 참 아니러니하다고 생각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진보라 부르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수라 부르는 것도 곰곰이 생각하면 별로 근거가 없어 보인다.

 보수와 진보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동적이다. 19세기에는 진보적이라 여겨졌던 가치가 지금은 보수주의자들이 지키려는 가치가 되었다.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현대의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를 각각 표방하는 정당들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국민의 선택을 받고 권력을 교체하는 것을 이상적인 형태로 생각하여 왔다. 우리가 현재의 여당과 야당의 대립을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정치의 낙후된 현실을 무시하고 이를 선진 민주정치의 이상형에 대입시키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가 민주화된 것은 1990년대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라고 생각하며, 아직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발전을 이루었음은 이번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났지만, 정당정치는 그러한 발전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음은 늘 지적되어 온 일이다.

 이는 우리가 보수와 진보의 건전한 대립을 논하기 이전에 아직도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의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였음을 나타낸다. 지금 보수를 표방한다고 여겨지는 정당의 기원이, 아무리 많은 이합집산과 이름 바꾸기를 거쳤다 하더라도 전두환 정권이 쿠데타 이후에 만든 민주정의당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 이 정당의 선거를 이끌고 있는 노정객은 바로 이 쿠데타 직후에 만들어진 국보위에 참여했던 사람이다. 이 정당은 민주화 이후에도 어찌어찌 살아남아 지금에 이르렀지만, 세상이 변하고 그 구성원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그 근본적인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자료 출처. 대한민국 국회 '임시의원정 개원 101주년' 카드뉴스 중에서
자료 출처. 대한민국 국회 '임시의원정 개원 101주년' 카드뉴스 중에서
자료 출처. 대한민국 국회 '임시의원정 개원 101주년' 카드뉴스 중에서
자료 출처. 대한민국 국회 '임시의원정 개원 101주년' 카드뉴스 중에서

 보수의 큰 자산으로 보통 민족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우선하는 태도 등을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보수라 칭하는 집단은 건국 당시의 태생부터 반민족행위자들을 중심으로 하면서 외세에 의존하는 태도를 지녀 민족주의를 표방할 수조차 없었고, 그러한 약점으로 인하여 더욱 반공주의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되고 사상으로서의 공산주의의 매력이나 위협이 사라진 지금에는 제대로 된 존재가치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곧 있을 총선을 보수와 진보가 대결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좌파와 우파를 언급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우리 현실은 아직 실질적인 민주주의도 정립되지 않았으며, 과거의 반민주, 반헌법적인 사고방식을 계승한 사람들이 득세하고 있다. 이런 부당한 현실의 원인에는 권위주의 권력 아래서 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의 일사불란한 파시즘 사회에 대한 은밀한 향수가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이 선거를 다른 정책이나 가치관을 가진 동등한 도덕적 가치를 지닌 두 세력들에 대한 국민의 선택으로 보는 태도는 반역사적인 도덕적 허무주의나 지적인 나태함에 기인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지역의 싹쓸이에 대한 우려를 말할 때, ‘그럼 전라도의 싹쓸이는?’라는 황당한 되물음에 대하여는 이러한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이 없으면 답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루쉰(魯迅)이 말한 바와 같이, ‘아직 페어플레이는 이르다. 물에 빠진 개는 계속 때려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므로 내가 보수적이면서도 소위 진보정당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 현실에서 전혀 모순이 아닌 것이다.
   






[이재동 칼럼 6]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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