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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사법화(司法化)를 경계한다
[이재동 칼럼] 국민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와 선출되지 않은 사법권력
2020년 07월 28일 (화) 11:29:01 평화뉴스 이재동 칼럼니스트 pnnews@pn.or.kr

 민주주의가 확립된 현대의 국가들에서는 헌법재판소나 최고법원이 국회가 만든 법률이나 나라의 중요한 정책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거나 나라의 수반을 비롯한 선출직 고위 공무원에 대한 탄핵이나 선거 후 당선의 여부 등의 중요 사항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일은 사람이 아니라 법이 지배하는 법치주의 아래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국민에 의하여 선출되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법관들이 국가의 중대한 정치적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갈등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법치주의나 삼권분립이 민주주의를 이루는 필수적인 요소임은 분명하다. 사전(事前)에 명확한 언어로 만들어지고 공포된 법률에 의하여 행해지는 독립한 법원의 판결에 의하지 않고는 자신의 재산을 빼앗기거나 자유가 제한되는 일은 없다는 원칙은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 개인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현시켜 문명의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된 전문가로 이루어진 기관이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에 얼마나 적합한지에 관하여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연방이나 주의 의회에 의하여 만들어진 법률의 위헌 여부에 관하여 판단한 경험을 축적한 미국의 연방대법원에는 ‘사법자제(judicial restraint)’라는 이론이 오래 전부터 주창되어 왔다. 대공황의 여파로 집권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이 경제 분야의 개혁입법을 잇따라 제정하자 종래의 자유주의 법원칙에 입각한 연방대법원에서는 이를 위헌으로 무효화하는 판결이 잇따랐다.

 이에 격분한 루스벨트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의 대법관 수를 늘리고 정년을 제한하는 등의 구상을 계획하기도 하였지만 무위로 돌아갔고, 오히려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경제개혁의 효과가 드러나자 법원이 그동안의 태도를 바꾸어 개입을 자제하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한 대법관은, 자신이 개인적으로는 문제된 국가의 정책에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은 자신들이 뽑은 의원들을 통하여 정책을 만드는 것이므로 그들은 실패할 기회까지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 <경향신문> 2020년 7월 17일자 2면(사회)

 사실 법관들은 일정한 자격이나 시험을 통하여 선발되는 것이지 국민의 신임을 받은 것이 아니다. 사법권의 확대는 전 세계적 현상이긴 하지만, 선출되지 않고, 통제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권력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그 동안의 법관의 선발과정을 보면 국가의 정책에 관한 판단이나 선거에 의하여 선출된 지도자의 자격 여부에 관한 판단을 맡기기에는 그 자질에 대한 검증이 너무나 부족하다. 국민대표성을 가진 정치권이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단하고 그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사안을 민주적 대표성이 결여된 소극적 분쟁해결기관인 법원에 넘기는 것은, 그것이 비록 법치주의의 외양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결국 다른 의미의 법치주의의 훼손의 우려가 있다고 할 것이다. 

 대법원의 최근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판결은 이러한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우려와 ‘사법 자제의 원칙’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선거기간 중 방송토론회 도중에 있은 발언에 대한 법적용은 신중을 기해야 하고,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법원이 개입하는 것은 ‘선거결과가 최종적으로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 판단에 좌우될 위험에 처해짐으로써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로 대표자를 선출한다는 민주주의 이념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사법부가 당선인이 방송토론회 중에 주고받은 말에 대하여 엄격한 법적 논리를 들이대어 압도적인 차이로 당선된 사람의 자격을 박탈하고 일정 기간 정치적 생명을 끊는 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국회의 다수에 의하여 만들어진 법률의 유무효나 선출된 공직자의 자격 여부에 관하여 헌법재판소나 대법원의 법관들에게 판단을 맡기는 것은, 그것이 최선이어서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른 적절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로 다른 방법에 의하여 걸러져야 할 정치적 분쟁들이 검찰과 법원으로 무분별하게 달려가고, 이로 인한 검찰권과 사법권의 교만과 권한의 남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더 좋은 민주주의를 위한 사법권의 역할의 정립이 필요한 때이다.

   







[이재동 칼럼 9]
이재동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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