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1호 거부권을 행사했다. 남는 우리 쌀을 정부가 사들이는 '양곡법'이다.
윤 대통령은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헌법(제53조 제2항)에 따라 국회가 넘긴 법안을 거부한 것이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전문가, 각계각층, 당정 의견을 종합한 결과, 양곡법 재의요구(거부권)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남는 쌀을 사는데 들어가는 국민 혈세는 매년 증가할 것"이라며 "이미 쌀은 충분한 양을 비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신 "오는 6일 민당정 협의회를 열어 쌀 경쟁력 강화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곡법 개정안은 한해 초과 생산된 국내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에 이르거나, 쌀값이 전년과 비교해 5~8% 정도 하락할 경우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해 우리 쌀값을 정상화시키는 게 목적이다.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은 야당이 넘긴 해당 양곡법에 대해 줄곧 부정적인 뜻을 내비췄다. 남는 쌀을 매수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강제 매수법"이라고 반발했다.
농민들도 개정안에 부정적이었다. 정부와는 이유가 다르다. '3~5% 초과 생산량', '5~8% 가격하락'이라는 개정안 단서조항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벼 재배면적 증가 지자체 매입물량 감축 허용' 조항도 정부에 너무 많은 재량권을 줘 사실상 쌀값 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없다는 비판을 했다. 때문에 정부와 여야에 매입 조건을 완화하고 생산비 보장을 의무화하는 등 전면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절대적 다수 의석인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여당, 농민 반발을 무릅쓰고 양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누더기 개정안'마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전국 농민단체들은 삭발과 집회를 예고하며 반발했다. 민주당 시.도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도연맹(의장 김태현)은 4일 보도자료를 내고 "누더기 법안조차 거부한 윤 대통령은 농업을 포기하고, 농민들을 배신했다"며 "개정안이냐, 거부권이냐하는 소모적인 논쟁 속에 국민의 주식인 우리 쌀을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농민들의 생존권을 외면하고 말았다"고 규탄했다.
경북도연맹은 "쌀의 안정적 생산 기반 마련과 농민 생존권 보장을 위해 양곡법 전면개정을 요구했는데, 크게 후퇴된 개정안마저 '시장 격리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있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했다"면서 "쌀의 생산과 수급, 가격보장은 정부의 최소한의 책임인데 윤 대통령은 무조건적으로 시장원리만 외치며 식량위기 시대에 식량과 농업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모습만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 농업을 포기한 윤석열 정부에 맞서 양곡법 전면개정을 위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경북도당(위원장 임미애)과 민주당 경북도당 농어민위원회(위원장 조원희)는 4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45년 만에 쌀값이 최대 25% 폭락한 상황에서 '쌀값 정상화' 양곡법을 거부했다"며 "식량주권·농정을 포기한 것으로 국민에게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또 "양곡법은 국민 대다수 찬성하는 민생법으로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정황근 장관은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전국쌀생산자협회를 포함해 가톨릭농민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등은 4일 오후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농업포기 윤석열 정권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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