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아산에 살다가 1998년 천안역에서 납치돼 대구시립희망원에 강제 수용된 지적장애인 전봉수(60)씨.
시설에 있는 동안 폭행 등 가혹행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24년 만인 지난 2022년 7월 퇴소해 자립했다.
전씨는 희망원에 있을 당시 신원 확인이 안돼 주민등록증마저 새로 발급받아 가족들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던 지역과 가족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대구지역 장애인단체인 '장애인지역공동체'는 전씨의 기억을 토대로 그해 11월 7일 경찰에 가족 찾기를 신청했고, 다음 날 가족과 만날 수 있었다.
전씨의 강제 수용 피해는 지난해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진화위는 대구희망원을 포함해 서울시립갱생원, 대전 성지원, 경기 성혜원 등에서 발생한 '성인 부랑인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어 전씨는 지난해 12월 10일 국가(대한민국)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대구시립희망원 강제수용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구지법에서 오는 4월 10일 첫 변론기일을 앞두고 있다.
전씨와 같이 가족들과 연락이 단절된 채 대구희망원에서 살다 나온 뒤 가족을 찾는 기적이 또 나올 수 있을까.
대구희망원에 거주하는 생활인 중 절반 이상이 10년 이상 가족과 연락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와 지자체의 행정 사각지대로 인해 또 다른 희망원 생활인이 가족과 떨어져 고통을 겪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때문에 가족을 찾기 위해 심층 상담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19일 '10년 이상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 대구희망원 생활인 현황' 자료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16일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에 정보공개청구해서 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대구희망원 생활인 모두 527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283명(54%)이 10년 넘게 가족과 단절된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희망원 시설별로 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희망마을(노숙인재활시설) 328명 중 217명(66%) ▲보석마을(노숙인요양시설) 124명 중 43명(35%) ▲아름마을(정신요양시설) 75명 중 23명(31%)다.
심지어 희망마을 14명, 보석마을 23명 등 37명은 입소 이후 지문조회로 신원을 알 수 없어 가족관계등록부를 새로 만들기도 했다. 이들 중 등록 장애인이 32명, 비등록 장애인은 5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가족을 찾지 못한 이유는 다양하다.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은 ▲호적 취득 등 가족과 연락할 수 없는 경우와 가족이 연락을 거부하는 경우가 다수인 점 ▲생활인에 대한 거부감으로 연락을 단절하고, 연락처가 변경돼도 알려주지 않고 있는 점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으로 행정기관 협조가 어려운 점 ▲가족과 연락되지 않는 생활인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우리복지시민연합은 "희망원은 여전히 수용시설 역할에 안주해 행정지침에 따라 지문조회만 진행하고, 생활인의 기본적인 신원확인과 가족 찾기를 위한 적극적 행정은 하지 않고 있다"며 "가족이 연락을 단절하고, 생활인 권리 보호 차원에서 가족을 찾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답한 것은 안일한 행위"이라고 비판했다.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 등으로 생활인이 사망하고 난 뒤 가족을 찾기보다는 지속적인 개별 심층 상담을 해야 한다"면서 "상담을 통해 본인 동의를 전제로 적극적으로 헤어진 가족 찾기 신청제도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또 "정부는 매년 발간하는 '노숙인 사업 지침' 등을 보완 변경해야 한다"며 "행정기관이 가족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은 "24년간 희망원에 살다가 시설을 나와 가족을 찾은 전봉수씨와 같은 사례가 재발될 가능성을 막아야 한다"면서 "희망원 생활인들에 대해 왜 희망원에 들어오게 됐는지,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것 등 심층 상담을 지속적으로 해 가족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구희망원을 운영하는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은 희망원 생활인들의 가족을 찾기 위해 지문조회나 유전자 등록 등을 실시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많다는 입장이다.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시설운영팀 관계자는 "대구희망원 희망마을의 경우 유전자 등록을 다 해 놨고, 보석마을은 유전자 등록 진행 중이며, 아름마을은 예정에 실종아동 찾기 등도 모두 등록해 놓은 상황"이라며 "시설 입소자의 가족을 계속해서 찾고는 있으나 가족들이 연락을 끊는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행정청이 개인정보를 안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희망원에서 살고 있는 분들 대부분은 10년 이상의 장기 생활인"이라며 "입소할 때 전반적인 상담은 모두 했고, 생활인 지문조회도 10년간 여러 차례 한 분도 있는 등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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