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의 한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에서 유해화학물질 누출로 지난 넉달간 노동자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잇따랐다. 황산 액체가 누출돼 화상을 입고, 수산화나트륨이 얼굴에 튀어 부상을 당했다.
정부는 황산 공정에 대한 작업중지 명령과 사고 관련 1차 조사는 진행 중이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아니라며 수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관련 대책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 노사 양측에 4일 확인한 결과, 지난달 27일 오후 4시 36분 포항시 북구 흥해읍 A업체 내 시설 배관을 가동하기 전 점검하다가 황산이 누출돼 노동자 20대 B씨가 얼굴과 목, 팔 등에 화상을 입어 출동한 119구조대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B씨는 지난 3일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뒤 현재 입원해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화상 정도 등을 담은 진단서는 수술 경과를 지켜본 뒤에야 나올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오전 9시경에는 회사 현장에 입고된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 샘플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검사용 주사기 입구 필터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탈착되며 작업 중이던 30대 남성 C씨의 귀와 얼굴, 눈에 튀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업체는 사고 발생 4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24일 오후 4시 44분경 황산 탱크 배관 점검 작업을 하던 중 황산이 뿜어져 나오면서 30대 남성 D씨가 전신 2~3도 화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해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 정부는 황산 누출 사고와 관련해 1차 조사를 진행 중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4일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지난해에도 황산 누출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지난달 사고와 관련해 1차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한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현행법상 노동자 1명 이상 숨지거나 2명 이상 중대 부상을 입어야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상 수사를 할 수 있다. 다만 황산을 다루는 공정은 사고 이후 작업중지 명령이 떨어져 모든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때문에 중대재해처벌법상 조사는 물론 잇따른 사고와 관련한 대책도 아직 없다. 산재를 입은 노동자들의 진단서가 나오면 그때 대응하겠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달 27일 산재를 당한 노동자의 병원 진단서가 나와 봐야 관련 대응에 대해 판단할 수 있다"며 "진단서에 따라 사업장에 대한 감독 등을 할 수 있다. 진단서가 나오면 자체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3건의 사고들과 관련해 담당하는 공공기관도 엇갈린다.
황산과 수산화나트륨을 놓고 유해 위험물질 분류 체계가 엇갈린 탓이다. 공정안전관리 기준(PSM) 상 유해 위험물질로 분류되는 황산은 고용노동부 산하 경북권 중대산업사고예방센터가 담당하고, 유해 위험물질로 분류되지 않는 수산화나트륨은 대구노동청 포항지청이 담당한다.
◆ 사측은 "안전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A업체 안전팀 관계자는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체적으로 안전대책을 수립하고 있다는 것 외에 당장에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없다"면서 "현재 발생한 사고는 설비 등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내부적 시스템 문제 등에 대한 부분들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중대재해처벌법'상 사망 사고가 발생하거나 2명 이상의 작업자가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사고일 경우 신고를 해야 하는 등 즉시 신고 기준이 있다"며 "지난달 26일 발생한 사고는 신고 의무가 없는 내용이기 때문에 따로 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 노조는 업체에서 유해화학물질 사고가 잇따르자, 사측과 고용노동부에 산업재해 발생 시 대처 방안을 담은 지침을 마련하고, 이번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금속노조 포항지부(지부장 신명균)는 4일 오전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해화학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장은 어떤 사업장보다 노동자의 노동안전 활동 참여 보장과 사용자의 법적 의무 이행이 중요한 곳"이라며 "사측은 노조와 사고 초동 조치 매뉴얼을 마련하고, 노동부는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한 노동자의 전신 화상에 이어 지난달 26일과 27일 노동자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사고들이 연이어 발생했다"며 "회사는 사고 발생 후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해 빠른 의료지원과 긴급 이송으로 재해자가 후유증 등의 피해를 최소화할 의무가 있는데도, 산재를 은폐하기 위한 허술한 초동 조치로 사고를 당한 노동자에게 고통의 시간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행정기관과 기업이 반복되는 사고와 중대재해의 위험을 방치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이후에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한다면 모든 책임은 노동부와 사측이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사측에 ▲수시 유해요인조사·위험성 평가 실시 ▲노동안전 활동시간 보장 ▲재해 노동자의 모든 치료와 치료기간 급여 보장 등을 요구했다. 노동부에 대해서는 ▲노조 참여가 보장되는 특별근로감독·안전보건진단 실시 ▲사측 안전대책 수립 위한 방안 마련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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