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 감염인이 대구 A병원에서 "감염을 이유로 수술을 거부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행위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을 냈다.
'HIV장애인정을위한전국연대'와 A병원에 17일 확인한 결과, HIV 감염인 B(71)씨는 지난 1월 10일 계단에서 넘어져 왼쪽 발뒤꿈치에 골절상을 입었다. 엿새 뒤인 1월 16일 A병원을 찾았고, 찢어진 부분을 봉합한 뒤 귀가했다.
이어 17일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를 찍고 집에 오는 길에 의사에게 전화가 와 "면역계 약을 복용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B씨는 "내일 말씀드리겠다"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후 18일 수술을 받으려 병원에 갔더니 의사로부터 "면역계 약을 먹고 있기 때문에 수술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소견서상 이유는 "환자의 기왕력(旣往歷, 원래 가지고 있던 병력)인 내과적 질환으로 인해 보존적 치료를 시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에 B씨는 거주 중인 남구의 한 병원에서 깁스 처리를 받았다. B씨는 3개월이 지난 4월 초순경 깁스를 푼 상태다.
B씨는 이날 <평화뉴스>와 통화에서 "깁스를 푼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도 통증이 있고, 심정적으로는 너무 울화통이 터진다"면서 "의사는 진료해줄 책임이 있고, 저는 치료를 받아야 할 권리가 있는데 왜 병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시민단체는 "HIV 감염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HIV장애인정을위한전국연대'는 17일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인권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병원의 HIV감염인에 대한 수술 거부는 사회적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장애인차별로 진정해 권리를 되찾겠다"고 밝혔다.
전국연대는 "HIV에 감염됐다는 이유만으로 아플 때 진료조차 받기 어렵고, 노동할 권리가 제한되며, 사랑과 결혼, 출산의 기회도 박탈된다"며 "감염 사실이 주는 신체적 결핍보다 심한 것은 사회적 결핍"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야 할 권리 어느 것에도 접근할 수 없는 HIV감염인 당사자들의 삶은 장애화돼가고 있다"면서 "수술을 거부한 병원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인권위는 감염인을 장애인으로 인정해 유예된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윤이나 'HIV장애인정을 위한 소송대리인단' 변호사(법무법인 로하스)는 "B씨는 병원의 수술 거부로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며, 제대로 된 수술 치료를 받지 못해 현재까지도 거동이 불편해 일상생활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의료 제공 거부는 명백한 인권 침해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A병원 측은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수술을 하지 않고 보존적 치료하는 방식이 더 나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견서상 HIV 감염을 표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회사에 제출할 때 소견서에 HIV 감염을 기재하면 당사자가 불이익이나 사회적 편견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A병원 관계자는 "2023년부터 올해까지 HIV 감염인에 대한 수술을 7명 정도 해왔고, 기본적으로 수술을 모두 하고 있다"면서 "우리 병원에서 수술을 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고 일축했다.
또 "관련 항의가 들어오고 난 이후 다시 사례를 봤는데, B씨가 노령이기도 하고 HIV 외 다른 질환들도 있어 보존 치료가 낫다는 의사들의 의견들이 있었다"며 "소견서상 HIV 감염이라고 적지 않은 이유는 당사자가 회사 등에 소견서를 낼 때 오히려 차별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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