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환·편견 '이중고' HIV...대구에서 첫 행정소송 "장애 인정해야"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 입력 2023.12.0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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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70대 A씨 장애 등록 신청 반려
복지부 "현행법상 HIV 감염, 장애 유형 미포함"
시민단체, 남구청 상대로 '거부처분 취소소송'
"취업 못하고, 가족과는 단절...사각지대 지원"


◎ 사회적 차별과 만성질환 '이중고' 고통 속에 살고 있는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 감염인들. 장애인으로 인정받지 못해 국가나 지자체로부터 작은 지원도 받지 못한다.
 
대구광역시 남구청 / 사진. 대구 남구청
대구광역시 남구청 / 사진. 대구 남구청

#대구 남구에 거주하는 70대 HIV 감염인 A씨는 올해 10월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HIV를 이유로 '장애 등록'을 신청했다. 행정복지센터는 장애 정도 심사 구비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 법과 규정상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 등록을 거부한 것이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 등록을 하려면 의료기관에서 장애 진단 심사용 진단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HIV는 병으로는 인정되는 반면,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아 진단서를 제출할 수 없다.

때문에 A씨는 현재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기초연금을 합한 62만원으로 한달을 보내야 한다. 밖에 나가도 에이즈 환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으로 정신적인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장애인 인정을 받으면 수당 지원도 받고, 차별도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제도적 한계로 등록조차 거절당해 상심했다.

A씨는 "다른 병은 장애 등록을 할 수 있는데 왜 HIV 감염인만 안 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이어 "왜 감염인들이 사회에서 차별받아야 하는지, 모든 편견을 떠안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감염 사실에 대해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면서 "장애인으로 인정받으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다"고 말했다.
 
'HIV 장애 등록 처분 취소소송 기자회견' (2023.12.1.국민연금공단) / 사진. 레드리본인권연대
'HIV 장애 등록 처분 취소소송 기자회견' (2023.12.1.국민연금공단) / 사진. 레드리본인권연대

레드리본사회적협동조합,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등 9개 단체로 구성된 'HIV장애인정을위한전국연대'는 대구 남구청(구청장 조재구)을 상대로 HIV 장애 등록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을 대구지법에 낼 것이라고 7일 밝혔다. 

앞서 11월 17일 HIV 장애 등록 당사자는 6명의 공익변호사로 구성된 법률대리인단과 면담을 진행했다. 오는 15일 소장 초안 작성과 법률대리인단 검토를 거쳐 12월 말 법원에 소장을 접수할 계획이다.

전국연대는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인정 범위가 협소하다"면서 "장애 정의를 사회적·포괄적으로 개정해 배제된 장애인을 법적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정부는 장애 개념을 확대하지 않고 20년째 머물러 있다"면서 "정부의 정체 속에 HIV 감염인은 법과 제도 미비로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계 HIV/AIDS 통계에 따르면 신규 HIV 감염자 수가 2010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줄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감염인은 2013년 이후로 해마다 천명 이상이 발견되고 있다"며 "HIV 감염을 이유로 가정, 교육, 고용을 포함한 모든 일상의 영역에서 배제·소외되고 있는 감염인들의 권리가 하루빨리 보장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지영 레드리본인권연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3.6.2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지영 레드리본인권연대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2023.6.20) / 사진. 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김지영 레드리본인권연대 대표는 "HIV 감염인들은 취업도 안 되고, 가족과도 단절되는 고통 속에 있다"며 "현행법은 장애 정도를 급수로 정해 획일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장애를 경험하는 사람들에게 일대일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른 장애 유형은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정신장애, 신장장애, 심장장애, 호흡기장애, 간장애, 안면장애, 장루·요루장애, 뇌전증장애 등 모두 15가지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1년 4월 장애로 인정되지 않았던 10개 질환에 대한 장애 인정 기준을 확대했다. CRPS(복합부위통증증후군), 백반증, 중증 복시, 완전 요실금, 뚜렛증후군, 기면증, 강박·기질성 정신질환 등을 추가했다. 기존 국민연금공단 산하 '장애정도심사위원회'를 확대해 예외적 장애 인정 절차도 마련했다. 심사위는 현행법상 장애 인정 범주와 판단 기준 제약으로 인정되지 못한 중증 질환을 개별적으로 심사하도록 했다.
 
대구지방법원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대구지방법원 앞 / 사진. 평화뉴스 김영화 기자

장애 종류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가 행정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례도 있다. 지난 2015년 뚜렛증후군 환자가 경기 양평군청에 장애인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양평군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정한 장애 종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신청을 반려하자 군청을 상대로 반려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재판부는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뚜렛증후군이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취지가 아니면 가장 유사한 장애 유형에 적용하는 것이 장애인복지법의 취지와 평등 원칙에 부합하다고 판단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관계자는 "HIV 감염 자체로는 장애인 등록이 안 되지만, 지원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제약이 있으면 등록 가능하다"면서 "아직 명확하게 장애 기준에 넣으려 하고 있지는 않다. 검토는 계속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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