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 바이러스) 감염인을 장애인으로 봐야 하는지를 따진 국내 첫 행정소송에 대한 1심 선고가 대구에서 열렸다.
하지만 법원은 HIV 감염인의 장애 등록 가능 여부는 판단하지 않았고, 반려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어느 행정청에 있는지에 대한 판단만 내렸다.
대구지법 제1행정부(부장판사 배관진)는 13일 오후 HIV 감염인 A(72)씨가 대구 남구청(청장 조재구)과 대명6동장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등록 반려처분 취소소송' 선고에서 남구청장에 대한 원고 청구는 각하, 대명6동장에 대한 청구는 인용했다.
재판부는 "대구시 남구 대명6동장이 2023년 10월 6일 원고에게 한 장애인 등록 신청 반려 처분은 무효임을 확인한다"며 "원고의 피고 남구청장에 대한 소는 각하한다"고 주문했다.
재판부는 장애 등록 신청 반려 처분은 '장애인복지법'상 장애인 등록 신청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구청장에게 있기 때문에, 권한이 없는 자(대명6동장)에 의한 처분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을 방청한 소송 당사자 A씨와 행정소송을 추진한 시민단체 인사들은 "7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장애 인정 여부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때문에 A씨는 남구청에 다시 장애인 등록 신청을 한 뒤, 반려 처분이 내려지면 남구청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HIV장애인정을위한전국연대'는 선고가 끝난 뒤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고 적격성에 대한 논의에 막혀 HIV 감염인의 장애 여부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도 못한 채 종결됐다"며 "장애 범주를 포괄적으로 해석해 HIV 감염인을 장애인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형식적인 것에 갇혀 실체를 다뤄보지 못한 소송에서 권한만 있고 책임은 서로 떠넘기기 급급한 구청과 행정복지센터에 대해 깊은 유감을 느낀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 소송을 통해 HIV 감염인 당사자가 목소리를 냈다는 것과 함께, 장애 인정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면서 "의료적 모델에 국한된 장애 개념을 깨고 새로운 장애 개념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소송 당사자 A씨는 "HIV 감염인들이 장애인으로 인정된다면 편견 없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소송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 "소송 결과는 좋지 않게 나왔다"면서 "소송에서 이길 때까지 장애 인정을 받기 위해 싸워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결국 선고일까지 HIV 감염인의 어려움에 대한 실체 판단은 이뤄지지 못했다"며 "행정소송에서 무효를 다투는 경우에는 이런 내용들을 다루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당사자는 다시 장애인 등록 신청을 한 뒤, 남구청장 명의의 반려 처분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행정청은 너무도 무용한 일을 다시 하게 함으로써 당사자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남구 대명6동 행정복지센터에 HIV를 이유로 장애 등록을 신청했다. 행정복지센터는 "장애 진단 심사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장애 등록을 위해 의료기관에서 장애 심사용 진단서를 받아야 하는데, HIV는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아 진단서 발급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A씨는 지난 1월 10일 남구청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이후인 지난 4월 16일에도 A씨는 HIV를 포함해 우울증, 골다공증, 고지혈증, 당뇨 등을 진단받은 의사 소견서를 갖고 다시 행정복지센터를 찾았지만, 행정복지센터는 장애 등록 접수조차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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