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보기

HIV 감염인 "장애 인정해야"...국내 첫 행정소송, 대구에서 첫 재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0대 HIV 감염인 남구청 상대로 소송
국내 첫 '장애등록 반려처분 취소소송'
1차 공판 / A씨 측 "장애 등록 반려, 부당"
구청 "서류 미비...국가 업무 소관" 반박
재판부 "실질적 장애 인정 여부가 핵심"
시민단체 "감염인 차별 중단, 적극 구제"

'HIV(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 감염인', 이른바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 환자를 '장애인'으로 인정해달라는 국내 첫 행정소송이 대구에서 열렸다. 오늘 첫 재판이 진행됐다. 

대구지법 행정1단독(부장판사 배관진)은 HIV 감염인 A(72)씨가 대구 남구청(청장 조재구)을 상대로 제기한 '장애등록 반려처분 취소 소송' 첫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HIV감염인도 장애인정 필요하다" 피켓팅(2024.4.17)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HIV감염인도 장애인정 필요하다" 피켓팅(2024.4.17)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A씨는 지난해 10월 남구 한 행정복지센터에 HIV를 이유로 장애 등록을 신청했다. 행정복지센터는 "장애 진단 심사 서류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신청을 반려했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 등록을 위해서는 의료기관에서 장애 진단 심사용 진단서를 받아 관할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해야 한다. HIV는 병으로는 인정되는 반면, 장애 유형에 포함되지 않아 진단서 발급이 불가하다.

A씨는 지난 1월 10일 남구청을 상대로 반려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이후인 지난 4월 16일에도 A씨는 HIV를 포함해 '우울증, 말초신경염, 골다공증, 고지혈증, 당뇨' 등을 진단받은 의사 소견서를 갖고 다시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행정복지센터는 이번에는 장애 등록 접수조차 받지 않았다. "장애 심사용 진단서가 아니라"는 이유를 들었다. 그리고 17일 첫 공판이 진행됐다. A씨의 법률대리인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조미연 변호사 등 7명이다. 

첫 재판에서 A씨 측 법률대리인 조미연 변호사는 "남구청은 원고가 장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려 처분이 적법하고, 적용 가능한 규정 자체를 판단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며 "재차 접수를 반려한 것은 원고의 장애 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원고가 발급받을 수 없는 장애인 진단서만을 요구한 것이어서 구청의 주장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고시에서 현행법상 장애 인정 범주와 판단 기준의 제약으로 인정되지 못한 질환에 대해 '장애정도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예외적 장애 심사를 마련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조 변호사는 "HIV 감염인에 대한 장애 등록 신청이야말로 예외적 절차 적용 대상에 부합하는 경우"라며 "피고가 원고에게 예외적 절차를 적용하지 않은 합리적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 예외 적용 절차가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남구청은 반박했다. 남구청 측 변호인은 "장애 등록 서비스 신청을 할 때 장애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해야 국민연금공단 심사를 의뢰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서류를 주지 않아 2차 보완을 요청했지만,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행규칙이나 고시의 위법성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청 소관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투렛증후군 환자에 대한 장애 등록 신청 거부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예로 들며 "HIV 감염인을 실질적 장애인으로 인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여부가 사건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남구청 측에 "원고(A씨) 측 주장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지난 2015년 투렛증후군 환자가 경기 양평군청에 장애인 등록을 신청했으나, 양평군은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정한 장애 종류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신청을 반려했다. 이에 군청을 상대로 반려처분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재판부는 지난 2019년 투렛증후군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에서 투렛증후군이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더라도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려는 취지가 아니면 가장 유사한 장애 유형에 적용하는 것이 법의 취지와 평등 원칙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HIV 장애 인정 행정소송 기자회견' (2024.4.17. 대구지방법원 앞)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HIV 장애 인정 행정소송 기자회견' (2024.4.17. 대구지방법원 앞)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이날 재판에 앞서 'HIV 장애 인정을 위한 전국연대'는 대구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HIV 감염인을 장애인으로 인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유엔은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통해 HIV/AIDS 감염 장애인 등의 모든 장애를 아우르는 장애 개념을 채택하라고 권고했으며, 해외에서는 이미 HIV 감염인을 제도적으로 장애인으로 간주하거나 인정하고 있다"면서 "HIV 감염인의 장애 인정은 국내외 모두에서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HIV 장애 인정 소송은 사회에 만연한 모든 차별에 균열을 내는 일"라며 "HIV 감염인을 향한 차별이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로 적용되는 것을 넘어, 사회의 모든 소수자들이 내지 못했던 목소리가 지역사회에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장애인복지법'상 장애 범주 사회적·포괄적 해석 ▲장애인 등록·보장 정책 개발, 확대 ▲장애 정책 소수자를 위한 예외적 인정절차 실질적 시행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즉각 수용, 실질적 제도 개선 등을 요구했다.

소송 당사자 A씨가 행정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2024.4.17)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소송 당사자 A씨가 행정소송 이유를 설명했다. (2024.4.17) / 사진.평화뉴스 정준민 기자

소송 당사자인 A씨는 "행정소송을 하게 된 이유는 일반인들과 같이 사회생활을 하며 평등하게 살고 싶기 때문"이라며 "대한민국에서 HIV 감염인을 장애로 인정해 많은 환자들이 좀 더 편안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라고 호소했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가치를 생각하는 대안언론, 평화뉴스 후원인이 되어 주세요. <후원 안내>
관련기사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지금 주목 받고 있어요
모바일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