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에 이어 포항에서도 폭염 속에 일하던 이주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숨진 이주노동자들이 사망 당시 체온은 모두 40도에 육박했다.
폭염 경보의 뜨거운 날씨에도 휴식 공간이나 그늘조차 없이 일하던 이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이주노동자들이 일하는 노동현장의 열악한 환경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포항에서 제초 작업을 하다 숨진 50대 이주노동자와 관련해, 이주민단체와 노동계는 "최소한의 안전 조치조차 없었다"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촉구했다.
민주노총 경북지역본부와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지역연대회의,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은 28일 오전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폭염대책과 제도가 만들어져도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이어지고 있다"며 "철저한 진상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경북 포항시 기북면 한 야산에서 지난 24일 네팔 국적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A(50)씨가 사망했다. 포항 북구청으로부터 위탁을 받은 산림조합과 A씨가 속한 제초 업체가 지난 2일 계약을 맺었다. 공사 기간은 입찰일로부터 70일로, 57ha(헥타르) 범위에 숲가꾸기 사업을 하는 것이다.
사고 당일 오전 6시부터 잡초 제거 작업을 하던 중 오전 10시경 더위를 먹은 것 같아 휴식을 취했으나, 작업 후 하산하던 중 경련 증상으로 119에 신고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소방당국이 A씨의 체온을 잰 결과, 최고 39.6도인 것으로 측정됐다. 때문에 소방당국은 사망 원인을 온열질환으로 추정했다. 당시 포항의 낮 최고 기온은 폭염 경보가 발효된 33.6도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경주이주노동자센터가 지난 25일 사고 현장을 찾은 결과, 작업 장소는 차량 접근로에서 30분가량 산을 올라야 했으며, 휴식공간과 그늘이 될만한 장소조차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구미시 산동읍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도 지난 7일 오후 4시 40분쯤 베트남 국적의 이주노동자 B(23)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판형 설치 작업에 투입된 A씨는 퇴근 전 동료들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뒤 앉은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이 숨진 A씨의 체온을 잰 결과 40.2도로 나타났다. 당일 구미 낮 최고기온인 38.3도를 웃돌았다. 때문에 A씨의 사망 원인을 온열질환으로 추정했다.
경북지역 이주민단체와 노동계는 ▲관급공사 현장에 폭염 경보 시 작업중지 의무화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폭염 5대 기본수칙 포함 안전 지침 전달체계 마련 ▲실질적인 관리·감독체계 구축 ▲고용노동부와 경북도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 단체는 "폭염 속에서 장기간 일해야 하는데도 현장에는 최소한의 그늘막조차 없었다"며 "폭염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을 이주노동자들에게 떠넘겼다"고 규탄했다.
이어 "이번 재해는 폭염 안전을 위한 사업주의 의무 사항이 단 한 가지도 지켜지지 않았다"며 "야외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포항시와 산림조합, 시행 업체 중 누군가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구미에 이어 포항까지 폭염 속 연이은 이주노동자들의 죽음은 노동부와 경북도가 방조한 결과로밖에 볼 수 없다"면서 "가장 힘들고 위험한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이주노동정책을 고수하며 산업재해와 참사를 멈추게 할 실질적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 것은 이주노동자를 인간이 아니라 도구로만 생각하는 무책임하고 차별적인 제도가 만든 구조적 폭력"이라고 꼬집었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동자노조 위원장은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상태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고 있지만, 차별적인 법제도와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고, 다치고, 병들고 있다"면서 "이번 사망 사고는 자연재해 문제가 아니라 노동부의 소홀한 관리감독, 사업주의 안전 수칙 미준수, 기본적인 인권 보호 장치가 없는 구조적 문제에서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폭염 관련 교육과 안내서 배포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포항지청 산재예방지도과 관계자는 "현재 현장은 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며 "현행법에는 폭염 경보가 내리면 작업중지를 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지만, 체감온도 33도 이상이면 2시간 근무에 20분 이상 휴식이라는 것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관련 교육이나 각국 언어로 된 안내서 등을 배포하고 있다"면서 "현재 온열질환 추정일 뿐,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 절차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평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