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맞서 학내에서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대학생들.
경찰은 이들을 체포영장 없이 강제로 끌고 가 폭행했고, 군대로 강제 징집시켜 감시와 사상 전향을 강요했다.
계명대학교 무역학과 84학번인 김기태(60)씨는 3학년이었던 1986년 10월 서울아시안게임반대와 전두환 군부독재 정권 타도를 요구하는 학내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끌려갔다.
이어지는 추석 연휴에 집에서 제사를 준비하던 김씨를 대구남부경찰서 형사들이 경찰서 지하실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건장한 형사들 4명에게 각목으로 맞으며 폭행을 당했다. 고문을 당하며 형사들에게 "학내 시위의 주모자"라는 소리를 들었고, 1주일 동안 매일 폭행당한 끝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씌었다.
하지만 당시 남부경찰서 정보과장이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선배였고, 김씨의 부모님을 불러 "선도를 해서 군대에 입대시키는 것으로 하겠다"며 "병무청에서 훈련소 소집일을 통고할테니 군대에 가라"고 해 11월 말 군대에 강제 징집됐다.
그렇게 끌려간 군대에서도 1주일 동안 보안사에서 수사를 받았다. 김씨가 휴가나 외출을 나갔다 돌아온 뒤에는 만난 사람과 장소 등을 빼곡하게 적어 내야만 했다. 보안사에서 "대구 각 대학의 학생운동 정보를 수집해달라"고 회유했으나, 김씨는 이를 거부했다. 2년 7개월 군생활 동안 수시로 구타를 당했다.
현재 아파트 경비원 일을 하는 그는 당시 구타로 허리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매달 3번씩 침을 맞으러 가고 약을 먹는다. 김씨는 "당시 경찰과 군대에서 많이 맞아 일상 생활할 때도 허리를 꼿꼿이 펴기 힘들다"며 "국가가 자행한 위법적인 폭력에 대한 정당한 배상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정기철(63.서울대 인류학과 81학번)씨도 1983년 학내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시위를 하다 경찰에 붙잡혀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열흘간 조사를 받았다. 고문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영장 없이 체포돼 열흘 동안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고 난 뒤 경찰서에서 바로 머리카락을 모두 밀고 입영 전 신체검사 없이 바로 강원도 철원 전방부대로 배치됐다. 정씨도 마찬가지로 보안사에서 학교생활과 교우관계, 서클(동아리) 조직 관계 등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학교는 미등록 제적됐으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고 민주화운동 제적생 복교 조치로 입학 15년 만인 1996년 겨우 졸업했다.
정씨는 "군사 정권이 저지른 불법 행위들에 대해 법적으로 따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가, 강제징집 피해자들 모임에 나가면서 자각하게 됐다"면서 "국가 차원의 공식 사과가 필요하다"고 했다.
45년 전 전두환 정권의 독재에 맞서 대학에서 "민주화"를 외치다 경찰에 체포돼 군대로 끌려간 대구지역 '강제징집' 피해자들이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는 24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기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대학생·청년을 경찰에 끌고 간 뒤 고문을 일삼고, 군대로 강제 징집해 피해를 입혔다"며 "국가는 공식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하라"며 1인 시위를 진행했다.
1인 시위는 대구를 포함해 서울과 부산, 인천 등 전국 19개 시.군에서 동시에 진행됐다. 이날부터 매월 넷째 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5시~6시에 피켓팅을 한다.
피해자들은 ▲강제징집, 프락치 강요 공작 피해자 전수조사 ▲관련 문서 전면 공개 ▲가해자 조사와 처벌 ▲국가와 관련 기관의 공식 사과 ▲피해자 권리와 의료, 생활 안전의 법적·제도적 보장을 담은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변대근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경상강원지부 사무국장은 "피해자들은 체포영장 없이 경찰에 끌려가고, 강제로 군에 동원되는 등 위법한 조치를 많이 당했다"면서 "제대한 뒤에도 낙인으로 인해 사회 진출도 제대로 못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상당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면서 "특별법 제정으로 피해자들의 치료 등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박선영)'에 따르면,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시기인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를 요구하며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을 탄압하기 위해 강제로 군대에 끌고 가 고문·협박·회유를 통해 전향시킨 뒤 프락치(정보원)로 활용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대학생들은 경찰에 불법 체포·감금돼 가혹행위를 당하고, 대학에 휴학계나 입대지원서를 쓰게 한 후 입영됐다. 군 복무 중에도 사상 전양과 양심에 반하는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했다.
진화위가 파악한 피해자는 모두 2,921명이다. 대구경북지역은 모두 117명으로, ▲경북대 53명 ▲계명대 32명 ▲영남대 14명 ▲대구대 9명 ▲안동대 5명 ▲계명전문대·대구전문대·포항실업전문대·경주실업전문대 각각 1명이다. 진화위는 지난 2022년 해당 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하며 "국가 사과와 피해 회복"을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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