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품'을 팔아 '씨앗'을 저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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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 경제활동 '희망품앗이'...이태숙, "노력 깃든 씨앗 통장으로 희망 나무 키워요"

대구 희망 품앗이 회원들이 씨앗장터에서 물물교환을 하고 있다(2009.1.31 대구여성노동자회 사무실 / 사진제공.대구여성노동자회)
대구 희망 품앗이 회원들이 씨앗장터에서 물물교환을 하고 있다(2009.1.31 대구여성노동자회 사무실 / 사진제공.대구여성노동자회)

대구지역에 대안화폐로 물품과 자신의 능력을 교환을 하는 '지역 품앗이' 운동이 일고 있다. '가상화폐 운동'으로 '희망 품앗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대구여성노동자회'가 운영하는 '희망 품앗이'는 '씨앗'이라는 대안화폐(지역화폐)로 노동(품)을 주고 받는 일종의 대안 경제활동이다. 지난 해 7월 26일 발대식을 갖고 처음 일어난 지역 품앗이 운동은 현재 110여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회원 대부분은 40~60대 여성이 대부분이다.

'가상 화폐'를 매개로 한 '지역 품앗이' 운동

이태숙 지부장(사진.남승렬 기자)
이태숙 지부장(사진.남승렬 기자)
희망 품앗이를 운영하는 대구여성노동자회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이태숙 대구지부장(53.여)은 "가사 노동과 청소 도우미를 비롯한 '돌봄 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빈곤을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가상화폐를 매개로 한 지역 품앗이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면서 "이 운동이 활성화되면 기존 시장 거래에서 나타난 병폐들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희망 품앗이는 현재 통용되는 '원화화폐'로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씨앗'이라는 가상의 화폐를 가지고 '씨앗통장' 계좌를 통해 거래가 이뤄진다. 때문에, 씨앗은 눈에 보이는 화폐가 아니라 통장 상에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김치 2포기를 500씨앗에 샀다면 산 사람의 씨앗통장에는 마이너스(-) 500씨앗이 기재되고, 김치를 만들어 판 사람의 통장에는 플러스(+) 500씨앗이 기재된다. 거래가 이뤄졌지만 결과적으로 오간 것은 통장의 기록이다. 자신이 노력을 기울인 품에 대한 대가를 씨앗이라는 가상화폐로 돌려 받아 적립된 씨앗으로는 또다른 물건을 살 수도 있다.

'품'의 대가로 '씨앗'

씨앗통장에서는 플러스(+), 마이너스(-)는 중요하지 않다. 사람과 사람이 신뢰를 바탕으로 노력이 깃든 품과 정을 교환하기 때문에 거래한 내용과 거기에 깃든 삶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이태숙 지부장은 "희망 품앗이의 근본 취지는 메말라 버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복원하고 공동체 의식을 활성화시키는 데 있다"면서 "통장의 기록은 공동체 삶의 주고 받음을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계좌에 마이너스가 쌓였다면 앞으로 자신이 봉사할 기회가 그만큼 주어졌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무 농사를 지은 사람이 무를 내놓고 또 다른 사람이 그것을 가지고 동치미를 만들어 상품으로 내놨다면, 무를 제공한 사람과 동치미를 만든 사람의 품값을 합쳐 가격이 결정됩니다. 두 사람은 동치미가 판매된 후 씨앗을 나눠갖게 됩니다. 또, 동치미를 운반해 준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 역시 운반에 든 품의 대가로 씨앗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동치미 판매를 예를 들어 말한 이 지부장은 "이 모든 과정 속에 공동체 삶의 이야기가 녹아있다"고 설명했다.

매월 '씨앗장터'..."막상 해보니 거래가 이뤄진다"

희망 품앗이 회원들은 중.남구와 수성구를 비롯한 대구 각 지역별로 구역을 나눠 모임도 꾸려간다. 품과 물건이 필요한 사람을 미리 파악해 씨앗통장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다. 씨앗통장에 씨앗이 어느 정도 적립될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는 '씨앗장터'를 열어 그동안 모은 씨앗으로 물물교환을 한다.

지금까지 7차례의 장터가 열렸다. 물건 재료비에 물건을 만든 사람의 품값이 합쳐져 몇 씨앗인지 결정된다. 물건을 내놓지 않아도 품을 팔았다면 그 품값으로 받은 씨앗으로 물건을 살 수도 있다. 씨앗으로 물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재능과 능력을 살 수도 있다.

이 지부장은 "처음에는 1씨앗을 어느 정도의 가치로 결정해야 할지 회원들 모두 혼란스러워 했으나 이제는 서로 의견을 나눠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면서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재미있다', '기존 원화화폐에 익숙해 처음에는 헷갈렸는데 막상 해보니 거래가 이뤄진다'는 말을 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희망품앗이 온라인 카페...회원들은 카페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물물교환을 한다
대구희망품앗이 온라인 카페...회원들은 카페를 통해 소식을 전하고 물물교환을 한다

씨앗은 장터 뿐 아니라 온라인 카페를 통해서도 거래된다. 회원들은 포털사이트 '다음'에 '대구희망품앗이'(http://cafe.daum.net/dgssiat)라는 카페를 개설해 물건과 품을 사고 팔고 있다. 또, 카페를 통해 수강자를 모집한 뒤 이들을 대상으로 컴퓨터.한문교육과 천연화장품 만들기, 요리 교실을 비롯한 배움터를 운영하고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 모두 씨앗을 통해 해결되며 강좌 1시간에 1000씨앗이 소요된다.

'가맹점' 모집해 지역 전체의 운동으로..

대구여성노동자회는 앞으로 지역사회와 연계해 희망 품앗이를 벌일 계획이다. 특히, 씨앗을 취급하는 '희망 품앗이 가맹점'을 모집해 실제 경제생활에서도 씨앗이 통용되도록 하는데 힘을 쏟기로 했다. 가맹점으로 지정된 슈퍼마켓과 식당, 빵집, 약국 등에서 씨앗으로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단체의 계획이다.

이태숙 지부장은 "지역사회와의 네트워크를 통해 시민들에게 대안경제의 가치를 알려주고 싶다"면서 "우리들만의 잔치가 아닌 지역 전체의 운동으로 희망 품앗이를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태숙 지부장과의 일문일답. 이 지부장은 1986년 '대구가톨릭노동사목'을 창립한 뒤 그동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권리 찾기 활동과 그들을 대상으로 한 노동상담, 노조지원 활동 등을 해왔다.

- 희망 품앗이?
= 전통 품앗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상화폐와 계좌를 통해 돈이 없어도 물건과 서비스를 주고 받을 수 있는 대안경제 활동으로 물물교환의 현대적 모습으로 이해하면 된다. 은행의 예금계좌와 비슷하나 이자가 없고 거래내역을 회원에게 모두 공개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적어도 하나의 능력은 갖고 있고 이 능력을 발휘하면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

- 장점을 꼽자면?
= 현행 법정화폐가 빼앗아 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가져올 수 있으며, 자신의 재능으로 남을 돕고 씨앗이란 가상화폐를 모아 물품도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이 활동을 통해 이웃을 알게 되고 정도 쌓여 무너진 지역공동체를 복원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 가상화폐 명칭이 왜 '씨앗'인가?
= 작은 씨앗이 훗날 아름드리 나무로 성장하듯이 우리의 정성과 노력을 씨앗에 비유했다. 우리의 노력으로 희망의 나무를 키우자는 뜻에서 씨앗이라 지었다.

- 희망 품앗이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은?
= 씨앗을 매개로 무엇인가를 배우려는 회원들을 볼 때다. 자신이 모은 씨앗으로 컴퓨터를 배우는 60대 한 여성회원이 실력이 늘어 카페에 글을 남긴 것을 봤는데 참 뿌듯했다. 회원들이 역량을 개발하는 모습, 내재된 자신의 능력을 끄집어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 올해 계획은?
= 씨앗을 취급하는 가맹점을 많이 모집하고, 지역사회와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외연을 넓힐 계획이다. 회원 대부분이 40~60대 주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등인데 올해는 이들의 가족과 자녀들도 회원으로 만들어 희망 품앗이를 널리 알리고 싶다.

-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희망 품앗이는 사람과 사람이 정으로 물품과 능력을 나눠 갖는 것이다. 희망 품앗이를 통해, 비록 적게 벌지라도 우리의 품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모두가 행복한 삶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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