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천 없으면서 판만 바꾼다고 될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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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수 / "지역자치의 중앙종속, 특정정당 독점...'기초 정당공천' 때문인가"

<평화뉴스>는 2010년 지방선거와 관련한 쟁점과 정책, 이슈를 <2010 대구>라는 기획으로 연재합니다.
첫 순서로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제' 유지.폐지 논란에 대한 찬.반 의견을 싣습니다. 또한, 이 논란을 비롯한 여러 이슈에 대한 독자들의 다양한 주장과 의견을 싣고자 합니다. 원고는 연락처와 함께 pnnews@pn.or.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평화뉴스


진보신당은 기초선거 정당공천 존폐에 대한 확정적인 당론이 없다. 따라서 이 글은 진보신당의 확정적인 당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필자 개인의 생각임을 밝힌다. 덧붙여 진보신당 당원들 중에는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당원이 있음도 밝힌다.

장태수(진보신당)
장태수(진보신당)
기초의원, 나아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이 거세다. 이 주장은 정당공천에 따른 현실의 부조리를 개선하려는 의지와 주권자이자 정치서비스의 수요자인 유권자의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즉, 정당공천 폐지 주장이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부조리한 현실의 개선과 유권자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귀결할 수 있을지 비판적으로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기초 정당공천' 폐지...지역자치 강화에 도움이 되는가?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분들은 정당공천의 부조리를 크게 3가지로 제시하는데, ▲중앙정치에 종속되는 지역자치, ▲공천헌금을 비롯한 공천비리, ▲유권자의 이익을 쫓지 않고 국회의원과 정당에만 충성하는 지방의원이 바로 그것이다.

반문해보자. 중앙정치에 종속되는 지역자치가 기초선거의 정당공천 때문인가? 정말 그런가. 중앙정치의 종속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던 이른바 민주정부 10년의 역사적 사실에서 지역자치 강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으로 나타났던가를 돌아보자. 그것은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을 확충하기 위한 재정정책의 변화로 나타났다. 지역의 주요한 문제에 대해 주민들이 직접 개입하고,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주민발의, 주민투표, 주민감사 등의 자치역량 강화로 나타났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 아닌가! 이러한 사실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가 지역자치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까.

또 이 주장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사실을 따지기 어렵고, 그래서 옳다 그르다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도 방해하고 있다. 무슨 말이냐? 예를 들어 지방의원들이 당론에 따라 지역의 어떤 문제를 처리한다고 치자. 이 때 지방의원들은 지역의 이익에 반하여, 혹은 자신의 견해와 다르게 선택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지방의원들은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있고, 그것은 자신의 지향과 당론이 대체로 비슷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들의 결정이 지역자치에 반하거나 지역의 이익을 수렴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정당공천제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지향과 가치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진실로 정당공천이 지역자치를 방해하고 중앙정치의 종속화를 부추긴다면, 지역자치의 영역에서 그 권한과 영향력이 훨씬 큰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을 정당공천에서 풀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풀뿌리 자치행정 또한 지역의 자원을 어떻게 모으고, 그것을 어디에 얼마나 사용할지 결정하는 정치적 가치판단에 근거하고 있음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정당공천을 폐지한다면 공천헌금 등 공천비리는 많이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에는 동의한다.

"특정정당 독점해체와 다양한 정치세력 진출?...의욕의 과잉일 뿐"

마지막으로 유권자의 이익과 반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이것은 특정지역에서 나타나는 일당독점의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일당독점은 보다 나은 정치서비스를 제공하려는 경쟁을 방해하므로 결과적으로 정치서비스 수요자인 유권자들은 보다 나은 정치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므로 유권자의 이익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따지고 보면 최종적으로는 유권자의 선택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특정지역에서 특정정당이 높은 지지율로 독점적인 체제를 갖는다는 것은 그 지역 유권자들의 기대가 그 정당에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 유권자의 민심을 반영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필요하다. 선거제도 개정을 논의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제기되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도입이 바로 이런 주장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차치하고, 지금 논의하는 기초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면 특정지역의 특정정당 독점체제가 해체될 수 있을까. 필자는 부정적이다. 정당공천이 도입된 2006년 지방선거 이전에 당선된 기초의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라. 영남과 호남에서 특정정당과 관계없는 지역토호들이 과연 몇인지. 필자가 기초의원으로 당선되었던 2002년 지방선거에서 서구의원 당선자 17명 중 13명이 후보자 당시 특정정당의 당직자이거나 당원이었고, 그나마 민주노동당 소속이었던 필자를 제외한 3명도 과거 특정정당의 당직자이거나 당원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또한 정당공천만 폐지되면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진출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아니면 의욕의 과잉일 뿐이다. 심하게 말하면 겸손하지 않은 태도이다. 정당공천이 배제된다고 해서 진보정당을 비롯한 야당 후보자나 시민사회의 훌륭한 활동가들이 주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기초선거가 진행되는 마을단위에서 축적된 활동의 경험, 주민들의 욕구에 근거한 비전의 탐구와 제안, 힘의 역관계를 반영하는 선거에서 반드시 필요한 주민조직 등 지역사회와 유권자들의 과거·미래·현재를 위해 진보정당을 비롯한 야당과 시민사회는 전략적인 밑천을 갖고 있는가 말이다. 밑천은 없으면서 판만 바꾼다고 그 판이 우리 것이 되는 게 아니다.

정당공천을 폐지하자는 주장의 합리적인 핵심을 현실정치에서 반영하기 위해서는 정당공천 폐지라는 협소한 주장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미 필자가 대경민교협 열린토론에서 제안했듯이 선출인원의 일부만 공천하는 공천제한을 비롯해서 비례대표의 전면적 확대, 비례대표 당선자 진입장벽 완화, 4인 선거구의 확대 등 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을 주장해야한다. 무엇보다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과 함께 대안정치세력으로 유권자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전략적 사고와 실천의 혁신이 필요하다.

장태수 / 진보신당 서구당원협의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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