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명함은 저 혼자만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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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본 6.2지방선거] 유병철 / "주민운동 20년, '풀뿌리' 주민들에게 평가받자"



대구시 북구 '라'선거구 유병철(48) 당선자는 대구시민단체 인사들이 만든 <풀뿌리대구연대>의 '좋은 후보'로 추천을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해 5명 가운데 2위로 당선됐습니다.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난 유 당선자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북구 대현동의 <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 공동대표를 맡은 것을 비롯해 1990년부터 20년동안 주민운동을 해 왔습니다. 특히, '감나무골공부방' 후원회장과 '감나무골탁아방' 운영위원을 맡아 지역복지에 힘썼으며, 대통령 직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풀뿌리대구연대 후보 3명 가운데 유일하게 당선된 그의 소회를 들어봤습니다.


부재자 투표함에 뒤집힌 숨 막히던 순간

6.2지방선거 개표. 날을 넘겨 6월 3일 새벽 2시쯤, 북구 3개동 가운데 대현1동과 산격3동의 투표함이 열렸을 때 2위 후보와 불과 2표 차이로 뒤지고 있었습니다.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대현 2동, 지난 20년동안 주민운동을 해 온 <감나무골 나눔과 섬김의 집>이 있는 동네입니다. 그러나, 2위 후보 역시 대현2동이 텃밭이라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과는? 마지막 투표함을 연 순간, 20표 차이 3위...이렇게 떨어지나...온갖 생각이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순간 그동안 함께 해 준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주민들 얼굴이 스쳐갔습니다. 선거사무실 앞에 나와 줄담배를 태웠습니다. 난생 처음 나선 공직선거.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이 때 개표장에 나가 있던 후배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 부재자 투표함이 남아 있다”. 실낱 같은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400여표의 부재자 투표함을 모두 연 최종 결과는 불과 25표 차 2위. 당선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정말 숨막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역활동을 평가받자"

정당들의 정치 독점의 틀을 벗어나기 위한 전국 차원의 노력이 이곳 대구 북구에서도 결실을 맺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연말부터 뜻있는 많은 분들과 시민단체들이 죽어가는 지방자치의 원래 의미를 되살리게 하기 위해 애를 써왔습니다. ‘풀뿌리대구연대’의 제안을 받고 일 욕심 많은 제가 지역 활동의 연장이라 생각하고 쉽게 결정을 했습니다. 다행히 지역의 많은 분들이 저를 추천해주셨고요.

5년 전 지역복지센터 <감나무골 나섬의 집>이 후배 활동가들의 힘으로 잘 운영되던 즈음에 공동체 내에서는 기초의회 진출을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당공천제가 실시되더군요. 현실적인 벽을 넘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포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부끄러운 기간이었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가 살아 온 지역에서의 활동들을 평가받자. 그리고 더 열심히 지역에서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자. 그렇게 마음을 모았습니다. 나섬의 집 복지센터 자원봉사자들과 공동체 식구들, 아내가 운영하는 재가복지센터의 요양보호사 어머니들, 그리고 감나무골 생명가게를 중심으로 한 성당의 젊은 어머니들이 이루어낸 소중한 성과였습니다. 저를 비롯한 선거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주민들이 인정을 하신 것이지요.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이루어낸 쾌거였습니다.

축제 같은 선거...그러나 '색깔론'과 '음해'

저를 비롯한 선거운동본부의 참모들, 선거사무원으로 운동을 해준 어머니들, 모두 선거에 관련해서는 생소했었지요. 정말 봉사활동을 하는 것처럼 즐겁게 했습니다. 비가 와도 30명 정도가 우의를 입고 유세를 나갔으며, 안경에 명함을 끼우고 다니며 지지연설에 호응을 하고, 무소속 9번 후보를 상징하는 로고송인 은하철도 구구구와 구구단을 외자는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등 축제처럼 선거를 즐겼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색깔론’과 ‘음해’도 있었습니다. 투표일이 다가오면서 저에 대해 ‘운동권’이라는 말들이 주민들 사이에 나돌았습니다. 들어보니, 열세를 의식한 상대 후보쪽에서 나온 말들이라고 합니다. 20년 주민운동이 ‘운동권’이라는 한 마디로 묻힐까 정말 걱정됐습니다. 천안함 사태와 정부의 조사결과 발표도 이런 색깔론에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저와 관련한 너무도 터무니없는 음해도 떠돌았습니다. 정말 ‘선거판이 이런가’ 싶었습니다. 그래도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그련 색깔론이나 음해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20년 주민운동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우리의 정책과 공약이 옳다는 믿음이었습니다.

"9번 아저씨 찍어야 도서관 생겨요"

정책선거가 영향력을 발휘한 동네 선거였습니다.
공약 명함은 저 혼자만 돌렸는데, 젊은 엄마들과 아이들의 호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어제 당선인사를 하며 대동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선자와 꼭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시더군요. 이틀을 꼬박 어머니 아버지를 설득하더랍니다. 9번 아저씨를 찍어야 작은 도서관이 생기고 동생들을 위한 장난감 도서관도 생긴다고.

산격동에 살고 있는 7살 욱진이의 지지연설도 있었습니다. 9번 아저씨가 좋아서 말을 하고 싶다고 마이크를 달래요. 로고송을 부르고 나더니  대뜸 자기는 9번 유병철을 지지한대요. 정말 행복했습니다. 

일요일 까지 당선인사를 다녔습니다. 많은 분들에게 격려를 받았고, 공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지난 20년 가까이 활동한 것처럼 주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는 과정에 멍석을 깔고 사람을 모으고, 마음을 모으고, 시간을 나누는 활동들을 멋지게 펼쳐가겠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 공약부터 지역의 젊은 엄마, 아빠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전형을 만들어 가겠습니다.

정말 '주민이 행복한' 우리 동네를

유병철(48) 북구의원 당선자
유병철(48) 북구의원 당선자
주민참여제도를 개선하는 여러 공약들은 풀뿌리 네트워크의 협조를 받아 차근차근 준비하겠습니다. 의정활동의 과정과 성과물을 공유하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 하겠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메일로, 어르신들에게는 찾아가서 공유를 해야겠지요. '풀뿌리'의 가치를 꼭 지켜가겠습니다.

이제 선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7월부터 ‘북구 구의원’으로 새로운 길에 나섭니다. 선거 내내 듣고 느낀 주민들의 이야기와 기대들,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주민이 행복한" 우리 동네를 만들기 위해 온 마음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 20년간 외쳐온 '나눔과 섬김'. 그 소중한 가치로 "주민과 나누고 주민을 섬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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